일흔 일곱 굽이굽이 죽을 고비 넘기며 넘나들던 고갯길
일흔 일곱 굽이굽이 죽을 고비 넘기며 넘나들던 고갯길
  • 진희영
  • 2022.09.07 20:27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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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전설따라] 9. 천황산 '도래재'
도래재는 영남알프스의 남쪽 산군인 천황산에서 약간 벗어난 밀양 정승봉 사이에 있는 길로 일명 가래나무 골에서 단장면 구천마을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을 말한다. 멀리 영남알프스의 남쪽 향로봉이 보인다.
도래재는 영남알프스의 남쪽 산군인 천황산에서 약간 벗어난 밀양 정승봉 사이에 있는 길로 일명 가래나무 골에서 단장면 구천마을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을 말한다. 멀리 영남알프스의 남쪽 향로봉이 보인다.

도래재는 영남알프스의 남쪽 산군인 천황산에서 약간 벗어난 밀양 정승봉 사이에 있는 길로 일명 가래나무 골에서 단장면 구천마을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을 말한다. 예로부터 고개가 너무 높고 기상 상태가 수시로 변덕스러워 고갯길을 넘어가다가도 위험해서 다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이어서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뜻으로 도랫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주 오랜 옛날 밀양 단장면에 사는 한 농부의 딸이 산내면 시례골에 사는 화전민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양가 부모들의 뜻에 따라 자식들은 마땅히 따라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멀쩡한 처녀를 일본군 강제위안부로 잡아간다는 소문에 서둘러야 했던 혼사, 총각 심성이 곱다는 부모님의 말씀만 듣고 그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아침 첫닭이 울 때쯤 집을 나서서 일흔일곱 꼬부랑길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해가 서산에 기울 때쯤 도착한 시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였다. 집이라곤 기어서 들어가고 기어서 나오는 움막 같은 곳이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또한 층층시하(層層侍下) 시부모를 봉양하며 시동생들을 거두며, 살아가기란 너무나 힘이 들었다.

가래나무골~단장면 구천마을 삼거리
옛부터 산세가 높고 날씨 변덕스러워
오르다 오르다 다시 돌아오던 험한길
화전민 아들과 농부 딸 이야기로 남아
지금은 차로 10분…캠핑명소 관문으로
 

# 시집간지 한 달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신부
시집온 지 한 달쯤 지난날 새벽, 첫닭이 울자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는 핑계로 몰래 집을 나온 처녀는 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직 먼동이 트려면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하고, 사방은 온통 산으로 에워싸여 깜깜하고 하늘엔 별빛만 초롱초롱했다. 친정으로 돌아간다지만 부모님을 대할 생각을 하니 불현듯 눈물이 앞을 가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겨우 옮겼다. 가끔 짐승들의 울음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죽을 각오를 하고 미친 듯이 고개를 넘어 친정에 도착한  때는 친정 부모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할 무렵이었다. 시집간 딸이 친정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란 부모는 딸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뒤, 마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시댁으로 돌아가라"라고 하며 꾸짖었다. 당시 한번 시집을 가면 죽어도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풍습이 있었고 이웃 사람들은 아무개집 딸이 시집을 갔다가 소박맞고 쫓겨 왔다고 손가락질 하기 일쑤였다. 

한편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엌에 있거나 집 안에 있어야 할 부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아침 밥상을 손수 차려주고 부인이 갈 만한 곳을 샅샅이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자 부인이 가난과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해 아마 친정으로 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길로 남편은 도래재로 향해 걸어갔다. 근 사흘간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않고 부인을 애타게 찾으러 다녔던지라 남편은 기진맥진하며 아내를 애타게 불렀다. 

밀양시 단장면과 산내면의 관문 모습.
밀양시 단장면과 산내면의 관문 모습.

# 가난한 시댁으로 되돌아 가기로 한 아내
친정집에서 하루를 보낸 부인은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나이 많은 시부모와 시동생들, 애타게 찾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형편이 조금 나은 친정집 따뜻한 밥도 목이 메 넘어가지 않았고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이튿날 부인은 부모님께 말씀드려 집에서 종자로 보관하고 있던 각종 씨앗 등을 챙겨 머리에 이고 봇짐을 챙겨 다시 시댁을 향해 길을 나섰다. 집을 나와 비탈길을 오르고 또 올라서 겨우 고갯마루에 도착할 무렵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갔고, 사방에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산길이란 사람이 겨우 비켜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비좁은 길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실루엣처럼 사라져 버리고, 곳곳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짐승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무서움이 온몸을 엄습해올 무렵 무엇인가 발길에 차이는 느낌이 들었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 내려 보니 숨이 곧 끊어질 듯 자신을 애타게 부르며 땅바닥에 쓰려져 있는 것은 분명 남편이었다. 남편의 목소리가 가냘프게 들리는 것이었다. 아내가 없어진 후 마을 곳곳을 찾아봤지만 보이질 않자 위험하고 무서운 이 고개에 와서 기약 없이 기다린 것이었다. 

도래재 별빛마을 입구.
도래재 별빛마을 입구.

 

 # 고갯마루서 재회한 부부 해로 다짐
재회한 부부는 서로 얼싸안고 한없이 울었다. 정신을 차린 부부는 서로 부축하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친정에서 가지고 온 씨앗을 뿌리고 화전도 더 많이 일구며 "아무리 시집살이가 고달파도 그 집으로 시집을 간 이상 그 가문에서 끝을 봐라"라는 친정 부모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다시는 돌아가지 않고 죽어도 이 집의 귀신이 되겠다고 이를 악물며 열심히 노력해서 넉넉한 농부가 되었다. 
 또한, 부부 금실이 좋아 많은 후손을 두었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은 계속해서 번성하여 학문을 숭상하는 가문으로도 이어졌다고 하는데, 시례골이라는 이름은 시와 예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으로 시시(詩)자와 예절례(禮)자로 즉 시와 예가 있는 마을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금은 차로 이 고개를 넘으면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이지만 당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넘나들었던 고갯마루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밀양사람 이재금(1941~1997)시인이 쓴 도래재 시(詩)를 소개한다.        
 
 도래재/이재금 
 
 언양 땅 넘어가면 석남 고개
 밀양 땅 넘어오면 도래재 고개 
 일흔 일곱 굽이굽이
 소쩍새 울어 
 
 실안개 피는 자락
 눈물 맺힌다. 
 돌아서서 가신 님
 돌아오는 고개
 
이재금: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88년 시집 '부끄러움을 팝니다'를 출간하며 활동 시작. 시집 '부끄러움을 팝니다'(1988) '말똥 굴러가는 날'(1994) '나는 어디 있는가'(1993·유고시집)이 있다.

진희영 산악인
진희영 산악인

※이 이야기는 필자가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에 살았던 고(故) 박말수씨 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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