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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정 글·그림 '옥춘당'
고순정 글·그림 '옥춘당'

고자동 씨와 김순임 씨는 전쟁고아였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린 손녀이자 작가, 고정순의 회상을 통해 오랜 기억 속 사탕을 떠올리게 한다. 나 역시 아버지 제삿날만 볼 수 있었던 알록달록한 사탕을 기억한다. 자꾸 먹고 싶게 만들던 꽃처럼 예쁘고 둥글납작한 옥춘당.

손녀는 두 손을 꼭 잡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린다. 방학 때마다 만화영화 주제곡을 불러주기도 하고, 손톱 위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던 다정한 모습까지. 떠올려보면 할아버지는 소외된 이웃을 품어주던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반면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던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낯을 많이 가렸다. 그런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남편이자 유일한 친구였다.

"순임아 눈 감아 봐. 아~"

제삿날마다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며 할머니의 입안에 옥춘당을 넣어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그 모습을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럽게 그렸는지… 아마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은 잡을 수 없고 누구에게든 마지막 순간은 찾아온다. 예외는 없다. 언제나 곁에 머무를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그리하여 다정하고 따뜻한 남편이자 아빠의 삶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힘든 투병 중에도 혼자 남을 할머니 걱정에 자꾸만 잔소리가 많아진다. 

"공구 상자는 신발장에 있어. 형광등은 혼자 갈아 끼우지 말고. 난방비 아낀다고 겨울에 춥게 있지 말아. 휴지 아낀다고 궁상떨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애들한테 사 달라고 해. 왜 대답이 없어?"
"…"

결국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가족들의 곁을 떠나게 된다. 홀로 남은 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추억만을 붙잡은 체 하루하루 조용히 무너져 내린다. 한 사람의 몸에서 시간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할아버지가 떠난 후 홀로 요양원에서 하루 종일 땅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아마 할머니가 그렸던 그 동그라미는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담겨있는 옥춘당이 아니었을까? 자식들은 빠르게 지쳐갔고 할머니 역시 삶의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가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사람들 말에 오직 한 사람을 떠올렸다는 손녀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는다. 언젠가의 내 모습을 보는 듯 해서... 

그리고 그토록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자." 할머니는 천천히 남편인 고자동 씨 곁으로 걸어간다.

그 해, 김순임 씨가 남긴 건 220㎜ 실내화와 사랑이었다.

이수진 아동문학가
이수진 아동문학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느라 조용해지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나이를 산다. 그럼에도 그림책 '옥춘당'을 읽으며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죄스러움과 앞으로의 걱정에 또다시 눈물을 쏟는다. 딱히 그것이 어느 지점인지를 찾지 못한다. 그저 글을 읽다가, 그림을 따라가다가 왜 이렇게 마음이 쿵쾅거리는지 자꾸만 옆에 있는 남편을 돌아보게 된다. 그림책 '옥춘당'은 지금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소중한 무엇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엄마, 아빠도 하늘에서 다정하게 지내고 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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