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혼의 크기

김대호

도로에 작은 새가 누워 있다
외상은 없었으나 무엇인가 빠져나간 뒤였다
새를 풀섶에 버리려고 손바닥 위에 얹었다
손바닥보다 작았다
아플 때마다 생각하는 죽음은 우주만큼 큰 것이었다
내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우주만큼 아득했다
새와 내 몸의 체적은 다르지만 새와 내 영혼의 크기는 같을 수 있다
몸을 빠져나간 영혼은 크기가 사라지기 때문
크기가 사라져야 어디든 갈 수 있잖은가
크기가 사라져야 서로 섞일 수 있잖은가
영혼은 이목구비가 없을 테니 섞여야 서로를 확인할 수 있잖은가
죽음은 몸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가져가는 일
새를 풀섶에 버리고 나는 다시 생활로 돌아간다
집 울타리를 손봐야 하고 생두를 주문해야 한다
틈이 나면 고개를 숙이고 꺼이꺼이 울 것이다
내 중간의 생을 훔쳐본
새는 석류나무에 잠시 앉았다가 뒷산으로 날아간다       
 
△김대호 시인 : 경북 김천 출생 2012년 '시산맥' 등단. 수주문학상. 천강문학상.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시인은 생각한다. 손바닥 보다 작은 몸을 가진 것들에 대해서. 그대로 차체에 부딪혀 로드킬 당한 새는 차의 속도에 저항 못하고 나가  떨어진 것이리라. 개미 날벌레 쥐 고양이 같은 작은 짐승들의 죽음을 자주 목도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어떤 이유와 함께 어처구니없는 죽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여기 시인의 감각으로 보잘 것 없는 죽음을 통해, 커다란 세계를 당겨보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풍경은 우리 영혼의 상태이다.' 앙리 프레드릭 아미엘은 말한다. 같은 풍경일지라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굴절되고 반영되는 풍경이 다를 수 있다는 해석이 아닐까. 보편적으로 그렇다고 본다. 그러면 영혼이 도대체 있기는 한가. 


 메사추세스의 어떤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실험하였다. 정밀한 저울에 환자를 올려두고 죽는 순간 저울의 바늘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공통적으로 21g이 줄어 영혼이 질량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개 15마리에게도 같은 실험을 했으나 변화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 영혼을 중시하여 육체보다는 영혼의 무게를 늘리는 것이 더 숭고한 삶이라는 가정이 성립될 수도 있겠다. 생명체를 죽이면 영혼은 찢어지고 작아지며 살인은 영혼을 조각내어 파충류가 되고 점점 작아진다는 터무니없는 말에도 완강하게 부정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된다.


 시인이 말한다. 영혼에 대해서, 크기가 사라져야 어디든 갈 수 있고 크기가 사라져야 서로 섞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영혼의 세계는 파동으로서 존재하고 비슷한 파동끼리 서로 모이게 된다는 것은 죽음도 일상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겠다. 이런 발견으로 올 가을 더 깊어지고 영혼이 가벼워지기를. 박정옥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