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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화 수필가
윤경화 수필가

최근 주변 사람이 누구와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져 말이 날카로운 무기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 그 사람을 보면 내 입은 요지부동이다. 인사도 나오지 않는다. 본래 관대하거나 대범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와 직접 관련 없는 일에 입이 말을 듣지 않아 당황스럽고 난처하다.   

 난감함 속에 며칠을 지내면서 말 부리는 일에 미숙한 나를 생각하자니 인품도 훌륭하고, 말까지 잘하는 사람이 새삼 부럽다. 그런 사람의 입은 주인과 호흡이 얼마나 잘 맞겠는가. 그와 반대로 주인이 허당끼까지 있으면 입도 나긋하기가 쉽지 않다. 말을 담아 세상에 나르는 입장에서 호불호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누구라서 험한 것을 담아 세상에 쏟아놓고 싶을까.  

 나의 입이 무시로 파업하는 것은 말의 무게와 품격이 세상에 나를 만한 가치가 없거나 이런 말에 반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실 거칠다거나 포장을 지나치게 한 말은 피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산만한 생각으로 직조된 말은 엉성하고 거칠어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도 한다. 이런 경우 돌아오는 말은 대개 말 그릇인 입에 대한 핀잔이다. 며칠 전 소동이 나던 날도 어떤 이가 혼잣말로 “입이 거치네."라면서 그 곁을 지나갔다. 누구는 혀를 찼다. 경멸의 어조와 눈길, 그리고 주변의 기운은 냉랭했다. 사건의 본질보다 모두 그녀의 입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때 갑자기 추위라도 온 것처럼 내 입은 굳게 다물어지고 안면 근육마저 뻣뻣해졌다. 심장도 딱딱해진 것만 같았다. 삶은 타자와의 관계성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소통 수단인 말과 입을 무시할 수 없다. 말은 입에 담기 쉬우나 조심스러운 물건이라 매 순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수용하고 이해하면서 난처함은 스스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 노력에 게으른 편인 나는 차라리 눈감고 귀 막으며 무시로 입을 쉬게 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요즘 같이 예민한 시절에는 차라리 개점휴업이 더 나을 듯도 하다.

 나는 어느 날 문득 말 그릇을 쉬게 할 만큼 단순한 사람이다. 그때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의아하고 난망하다. 이처럼 고약한 버릇을 갖게 된 동기는 어린 시절 한때 부모의 품을 떠나 조부모님이 계시는 큰댁에 살면서 생긴 것 같다. 십이 남매의 막내인 아버지의 딸인 나와 큰댁 가족들과의 나이 차는 스무 살이 넘었다. 눈높이가 달라도 너무 다른 가족들과의 대화는 불편하고 어려웠다. 그때 말을 줄이거나 하지 않는 쪽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모두 지난 일이지만 그 버릇이 남았으니 어쩌겠는가. 

 때로는 낡고 상처 난 그릇을 버리지 못하고 정원 귀퉁이에 두고 꽃그릇으로 쓸 때도 있다. 버리고 싶은 버릇도 화두처럼 마음 한구석에 두고 선방처럼 드나든 지 꽤 되었다. 언제 털고 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의 그날 회오리 중심에 섰던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이 무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 나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졌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나도 관계 회복이 걱정된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는 사이에 말을 나르는 그릇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살면서 내 입을 거쳐 사라진 말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디를 향해, 누구에게 또는 무엇이었다가 어떻게 사라졌을까. 말과 입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날것들을 쏟아내던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시절을 청춘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춘은 다소 아쉬움이 남더라도 용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사람의 입은 책임감과 어느 정도의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입은 아직도 조절이 쉽지 않아 방류하듯 두서없이 말을 쏟아버릴 때가 있어 말 한마디 하기가 갈수록 버겁다.

 얼마 전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친구가 찾아왔다. 한 달간 앓았다는데 노인이 돼 있었다. 백련암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 나이에 무슨 기도할 게 있겠노. 나는 딱 한 가지만 부처님께 부탁드린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사람에게 밥 사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그녀는  자신과 만나는 사람에게는 가능하면 밥을 산다고 했다. 쪼그라들어 주름진 그녀의 입이 갑자기 어느 경지에 이른 꽃그릇으로 보였다.

 신기한 것은 사람의 입이 때로는 저주의 그릇이 되기도 한다. 지난주는 우리나라 수도권이 팔십여 년 만의 폭우로 물바다가 되었다. 군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수해 복구 현장에 함께했었다. 그중에 정치인도 있었는데 현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몇 마디 말도 한 모양이다. 물 폭탄을 맞은 사람들 속에서 사진의 현장감을 위해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화근이 되어 며칠째 그의 입은 똥그릇보다 못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도 모두 그의 '입'을 성토했다. 아무튼 물난리통에 여러 정치인의 입은 저주의 그릇이 되고 말았다.

 말이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담아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말과 입이 누구에게 상처도 주지만 진심과 정성을 담아낸다면 위로와 기쁨이 되기도 한다. 나에겐 아직도 '화야'라고 불러주는 구순의 노모가 계신다. 단기 기억이 끊어지기도 하지만 자존심을 유난히 챙기신다. 이따금 “화야!"하고 부르실 때면 노모의 입이 아름다운 꽃그릇으로 보인다. 나도 날마다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고봉으로 담아 노모에게 올리고 싶다. 늙어가는 화야의 입도 꽃그릇으로 보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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