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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

산 아래 아파트에서 살아서인지 가끔 곤충이 집으로 찾아온다. 여름엔 베란다 방충망에 매미가 매달려 한나절 울다 가고, 아파트 복도에 풍뎅이가 뒤집혀 있거나 창틀에서 노린재나 딱정벌레가 발견되기도 한다. 가까운 산속의 수액이나 꽃을 놔두고 이 곤충들은 왜 한사코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오려는 걸까. 불빛으로 몰려드는 오징어처럼 인가의 불빛은 이들에게 치명적인 유혹인가 보다.
 
몇 해 전엔 아파트 옥상 캐노피 아래 커다란 말벌 집이 있어서 인부를 고용해 떼어내기도 했다. 마침 우리 집 부근이라 베란다 창으로 말벌 집을 제거하는 걸 지켜보았다. 먼저 소방호스로 고압 물줄기를 쏘아 말벌을 흩어지게 한 다음 장대 같은 걸로 벌집을 떼어냈다. 집을 잃은 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지만, 몇 마리는 대참사가 믿기지 않은 듯 근처를 오래도록 날아다녔다.
 
어렸을 때는 풍뎅이가 좋은 장난감이었다. 풍뎅이 두 마리를 잡아다 씨름을 시켰는데, 씨름은 장수풍뎅이가 제격이지만 쉬이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어느 풍뎅이든 잡아다 둘이 붙여놓으면 서로 버르적거리다 어느 한 편이 배를 뒤집고 넘어진다. 그러면 다음 차례로 풍뎅이의 다리를 떼어내고 뒤집어서 바닥에 놓는다. 뒤집힌 풍뎅이는 제자리를 빙빙 돌며 붕붕 바람을 일으켰지만 우리는 안타까운 그 몸짓을 모른 체하고 오히려 더 빨리 돌라고 바닥을 두드리곤 했다. 
 
풍뎅이 중에는 초록이나 파란색 날개를 가진 예쁜 종류도 있다. 그런 풍뎅이를 잡으면 날개를 들여다본다. 반들반들한 갑충의 날개는 햇빛을 받아 무지개처럼 빛났고, 홀로그램 같은 그 빛이 너무나 오묘하고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그러면 풍뎅이는 방심한 틈을 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우리 초등학교 때는 방학 숙제로 식물채집이나 곤충채집 같은 게 있었다. 나는 식물이든 곤충이든 다 좋아하는 편이라, 여름방학이 되면 집 근처 밭둑에 나가 바랭이, 달개비, 방동사니 같은 것을 조심스럽게 캐다가 흙을 털어내고 신문지 사이에 끼운 다음 무거운 책을 올려놓고 말렸다. 식물이 마르는 사이엔 잠자리며 나비를 잡기 위해 포충망을 둘러메고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 
 
육학년 때 겨울이던가, 방학 숙제로 곤충의 겨울나기를 조사하는 게 있었다. 내가 숙제라고 조르자, 아버지는 나무를 하러 가신 김에 고치가 붙은 나뭇가지들을 꺾어 오셨다. 연두색 항아리 같은 유리산누에나방의 고치, 진흙으로 조그맣게 빚은 호리병벌 집, 얼룩진 작은 새알 같은 노랑쐐기나방 고치, 스펀지처럼 북슬북슬한 느낌을 주는 사마귀 알집 등, 이런 갖가지 곤충의 알이나 고치를 와이셔츠 상자에 담아 테이프로 붙이고 뚜껑을 닫아 책상 위에 두었다. 
 
방학이 끝나가는 어느 날 친구가 놀러 왔길래 자랑도 할 겸 상자 뚜껑을 열었는데, 맙소사, 방안이 따뜻해서인지 애벌레들이 고치를 뚫고 나와 상자 가득 꿈틀꿈틀 기어 다니는 게 아닌가. 소리를 지르며 아궁이에 던져넣으려던 상자를 친구가 가져가서 애벌레를 털어내고 숙제로 냈고, 친구는 그걸로 상을 받았다. 그때 잠시 상자 준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작고 까만 것들이 꿈틀대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한 느낌이 들곤 한다.
 

그 뒤로 자연보호 의식이 널리 퍼지면서 이런 채집 종류의 숙제는 없어졌다. 그러니 사실, 풍뎅이 다리를 떼어내고 나뭇가지에 거미줄을 감아 작은 곤충을 잡고 잠자리 꼬리에 밀집을 꽂아 날리고, 이렇게 곤충을 장난감 삼아 놀았던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이젠 집안에서 곤충을 발견하면 그것이 해충이든 익충이든, 모기를 제외하곤 살그머니 잡아, 창문을 열고 내보낸다. 며칠 전엔 소파 밑에서 난데없이 귀뚜라미가 튀어나왔다. 처음엔 바퀴벌레인 줄 알고 깜짝 놀랐고, 바퀴벌레가 아닌 걸 확인한 다음엔 곱등인가 하고 잡아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틀림없는 귀뚜라미였다. 역시 창문을 열고 풀어주었는데 며칠 뒤 밤에 어디선가 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내가 풀어준 귀뚜라미일까. 잠시 궁금했는데,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니 무언가 가을밤의 정취 같은 게 느껴졌다.
 
그날은 마침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보낼 병사를 모집하는 동원령을 내린 날이다. 사면초가. 해하 전투에서 항우의 군대를 포위한 한신은 포로를 시켜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하는데, 그걸 듣고 고향을 그리워하던 초나라 군사는 전의를 상실하고 다투어 달아났다고 한다. 귀뚜라미 소리는 가을의 고독과 우수,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러시아 군사들이 이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다면 전쟁이 좀 더 빨리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뚜라미 소리조차 순수하게 듣지 못하는 이즘 세태가 문득 서글퍼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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