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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명 호계중학교 교사
조한명 호계중학교 교사

며칠 전, 졸업한 제자 한 명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잘 지내는지를 묻는 의례적인 안부 인사 후 2학기 중간고사에 관련된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인즉슨, '저망했어요. 모든게 숲으로돌아갔어요'이었다. 

 띄어쓰기는 제자 아이가 예전부터 그랬었다 치고 '숲으로 돌아갔다'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새로운 언어인가 보다라고 머리를 갸우뚱하다가 고민 끝에, 마음을 먹은 일이 잘되지 않을 때 '숲'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어떤 좌절을 뜻하거나 혹은 자기만의 동굴 따위의 비유나 상징일 거로 생각했다. 

 대충 문맥을 이해는 했으니, 제자에게 괜찮다고 다음에 또 잘할 수 있다는 격려와 응원의 문자를 보내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문득 그 숲 문자가 생각이 났는데, 그 숲이 내가 생각한 숲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여 집에 도착하자마자 '숲으로 돌아가다'를 검색했더니 바로 연관검색어로 '수포로 돌아가다'가 떴다. 

 설마 했던 나의 생각이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게 참 많이 웃기기도 하고 동시에 슬프기도 했다. 

 일단 내 제자이니 제대로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자에게 '수포로 돌아갔다'가 맞는 표현이며, '숲으로 돌아갔다'와는 어떤 연관도 없는 말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제자는 내 문자를 받고 당황해하며 놀라면서도 나에게 알려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표했다. 이제 앞으로 그런 실수는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몇 달 전쯤이었을까, '쌍시옷' 받침을 써야 하는 곳에 '시옷' 받침을 쓰는 걸 보고 나는 적잖이 놀라고 그 사람에게 실망한 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이건 지적해야 하는 맞춤법 오류가 아니라 문장을 쓰는 사람의 개성인 마냥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인정해야 하는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교사의 직업병인지 몰라도,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리고 지적해서 고쳐주고 싶지만, 이건 몰라서 쓰는 게 아니라 알고도 쓰는 거니 지적하면 꼰대 소리 밖에 듣지 못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최근에는 주변의 20대 선생님이 그렇게 쓰는 걸 보고 용기 내어 왜 그렇게 쓰는지를 물어보았는데 '쌍시옷'이 귀찮고 '쌍시옷' 받침을 쓰는 곳에 '시옷' 받침을 쓰는 게 유행인 거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10월 9일 제576돌 한글날이 다가오며, 나는 이런 맞춤법에 관련된 일화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혹자는 한글날과 이런 맞춤법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냐며, 맞춤법은 한국어 사용의 문제이며 맞춤법은 한글날과 상관없이 따로 정비되는 것이며, 한글날은 오로지 세종대왕이 만드는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기리는 날이니, 한글날 맞춤법 운운하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평소 맞춤법을 지적하고 제대로 알려주면 꼰대 소리나 듣는 나에게, 한글날이라도 좀 더 편하게 제대로 된 우리말을 어법에 맞게 사용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앞서 말했던 두 가지 사례 모두 문제이지만, 나는 사실 '숲으로 돌아가다'보다 '쌍시옷' 받침 대신 '시옷' 받침을 사용하는 게 더 걱정된다. 몰라서 쓰는 거면 배우고 알아 잘 사용하면 되지만, 알고도 그렇게 역으로 틀린 맞춤법을 사용하면 진짜로 그렇게 될까 봐 두려운 느낌이 된다. 습관이란 삶에 서서히 스며드는 건데, 이런 맞지 않는 말들이 언어 습관이 되어 진짜처럼 굳어질까 봐 겁이 난다.    

 맞춤법에 맞추어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 우수한 이유는 전 세계 유일하게 과학적 원리로 만들어진 문자여서이고, 그래서 그 과학적 원리를 파악하기만 하면 단 며칠 만에도 한글을 깨우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쌍시옷' 받침의 사용만 봐도 그렇듯이, 틀린 맞춤법 습관들은 그 위대한 한글의 과학적 원리를 어그러뜨리는 것과 같다. 

 오늘부터라도 한글을 아는 만큼이라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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