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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향 시인
심수향 시인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낯설지 않은, 몸과 마음이 평온하게 대상을 대할 수 있을 때 '익숙하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젊은 시절을 다 지나올 때까지 내겐 도저히 수긍할 수 없고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 몇 있었다. 그 중 물이 달고 공기가 달다는 것이 있다. 

 청년기까지 고향에 부모님이 계셨다. 그때 집 안에 우물이 있었는데, 물맛이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이 집에 오시면 우물에서 길어온 물 한 사발을 먼저 대접했다. 특히 한여름에 오시는 손님은 대청에 오르기도 전에 물부터 찾았다. 우리는 우물로 달려가서 두레박 소리가 온 집 안을 울릴 만치 잽싸게 찬물을 길러 와 드렸다. 그러면 어른들은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어, 그 물 참 달다' 하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하지만 그때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물맛이 좋다, 달다, 맛있다는 것이었다. 가끔 어른들이 마시다 남긴 물을 혹시 싶어 슬쩍 마셔본 기억도 있다.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단맛이란 것, 맛이 좋다는 그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또 친구들과 등산 다니던 학창 시절 땀을 뻘뻘 흘린 후 산정에 서면 친구들은 두 팔 벌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아, 달다' 하고 탄성을 질렀다. 물론 나도 두 팔 벌리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즐거워했다. 시원하고 상쾌한 것까지는 공감하는데, 그 달다는 말에는 도저히 수긍이 되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쪽으로 유난히 무디었던 것 같다.

 세월은 그런 내게도 물맛이며 공기 맛을 가르쳤다. 비록 더디고 터득이 느렸지만, 오히려 늦게 익힌 그 맛은 깊은 애정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물맛 공기 맛 타령이다. 뿐만 아니라 맛의 영역이 엄청 넓어져서 웬만한 맛으로 표현되는 말에는 절대 공감한다.

 그 외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가장 익숙해지기 힘든 이것은 몸과 마음이 받는 충격과 그 충격으로부터 오는 아픔이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소식은 지인들의 아픈 이야기와 주변의 부음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숨이 가빠진다. 내 피붙이거나 절친한 친구일 땐 더욱 전신이 떨리고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런 내게, 어느 하루 젊은 후배가 나이가 들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익숙해져야 되지 않느냐고 당연한 말인 듯 내게 던졌다. 
 이번 여름 끝자락, 함께 머리 맞대고 킬킬거리며 공부하던 동인 한 사람을 잃었다. 갑작스런 부음은 동인 모두를 충격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여름 아침 한 동인이 흐느끼며 알려온 부음은 지금도 귀에 쟁쟁 떠돈다.
 그는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 모임에 균형을 이루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늘 부족한 내게 힘을 실어주던 셋째 동생 같은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땐 그의 착하고 순수한 심성과 어려운 사람과 사물에 쏟는 무조건적 애정이 다소 낯설었다. 가끔은 외면 받는 이들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봉사에 쏟는 진정성을 의심한 적도 있었다. 허나 오래 겪으면서 계산 없이 직진하는 그의 자세가 일편 놀랍기도 하고 일편 걱정도 되었다. 도무지 지금 세상에는 맞지 않는 우직할 정도의 직심을 가진 투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 험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가 입은 상처가 어디 한 둘이며 어디 몸뿐이었으랴.

 그의 시는 그 자신만큼 투명했다. 시 속에는 부모 형제 아내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사물에 대한 사유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평이 젤리피시처럼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의 시는 시류에 편승하거나 유행하는 표현, 진정성 결여된 시구나 작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의 또 하나의 전공이 시평이었으니 문학의 흐름이나 유행에 기대 작품을 꾸미는 스킬을 몰라 외면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남다른 열정과 끝없이 베푸는 그를 안 세상은 한도초과까지 그를 사용했다. 거절을 모르는 그는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밤샘작업까지 기꺼이 감당해냈다. 동인들 주고받는 방에 새벽 두세 시에 들어오는 문자가 그걸 증명한다. 일을 하다 보니 늦었다는 변명과 함께. 우리는 아니 울산은 그의 선행을 너무 늦게 알았고, 그를 잃고 난 후에야 또렷해진 그의 가치를 확인하고는 그를 아는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익살스레 '캄사합니다' '사탕합니다'라는 문자로 마음을 보내곤 하던 시인이자 비평가인 안성길. 그의 장난스런 말들이 익숙해질 무렵 그는 몸과 마음을 받쳐 복무하던 울산을 훌훌 버리고 저쪽 세상으로 이사 가버렸다. 이런 그와의 이별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 아픔이 익숙해질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그 후배에게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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