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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구명자
 
허리 수술 후 허공에만 사는 아버지
직립의 기억은 잊었다

뒤집힌 사막거북이처럼 허우적거릴 뿐
차라리 껍데기 벗고 새가 되고 싶었다
 
해종일 창가를 맴도는 새 떼
아버지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밥을 줄이고 근육을 줄이고 말수를 줄이고
아버지는 겨드랑이가 가렵다고 말했다
 
가랑잎처럼 가벼워져간 아버지
눈치 빠른 새 떼 아.버.지 목청을 떠메고 갔다
 
질기고 질긴 껍데기만 놔두고
 
△구명자: 경기 파주 출생. 2019년 '사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울산작가회의 회원. 하나문학회 회원. 시집 '하늘물고기'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우리의 아버지는 젊은 날 건강한 모습보다 아픈 몸으로 쇠약한 늙음이 되었을 때 왜인지 모르지만 진정한 아버지로 다가 선다. 젊은 날의 아버지는 아마도 우리의 기억에서 스스로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척척 했던 것에 안심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젊은 아버지는 늘 우리의 기억에서 도망 가버리고 언제나 힘없고 늙은 모습에서 자식은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버지로 오래 살아가는 여러 위안을 주기에 그렇게 추억하게 하고 그리워하게 된다. 시인에게도 비록 아픈 몸으로 긴 시간 곁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냈을 지라도 그 시간들을 살면서 자꾸 끄집어내게 하는지도.

'직립의 기억'이란 아버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신감일 수도 있는데 허공에만 살 뿐인 처지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심정을 첫 행부터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이다. 순간순간 기억의 터널에서 만나는 아버지의 삶과 추억에게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단단함은 '뒤집힌 사막거북이처럼 허우적'으로 보였으니까. 시인은 새를 불러들어 상상력을 확장하여 아버지에게 나는 법을 배우게 한다. 더 많이 날기 위해 '밥을 줄이고 근육을 줄이고 말수를 줄이고' , 아버지의 깊어가는 병환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시의 장치를 빌리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중이었고 새들은 아버지 더 가까이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아 슬프다.

담담하게 죽음을 풀어 놓는다. 그동안 많은 것이 한꺼번에 매듭처럼 정리가 되는 것 중에 죽음은 깔끔한 이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에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아픈 아버지를 보내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질기고 질긴 껍데기만 놔두고' 떠난 아버지, 건강한 아버지보다 아픈 아버지를 통해 얻은 많은 것들이 시인에게는 떨쳐버릴 수 없는 통점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어쩜 날아 갈 것 같은 가벼운 몸으로 버티는 아버지에게 끝내 하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이 가슴에 막막한 통점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쓸쓸한 여운처럼 가을이 저 만치에서 깊어가는 아버지 같은.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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