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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숙 수필가
강이숙 수필가

하반기에 진행되는 울문아 2차 답사는 10월의 초입,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든 길목이었다. 더군다나 1박을 하는 일정이었으므로 여행 겸 답사를 할 수 있는 기회라 내심 기다림과 설렘이 컸다.

평소에 유적지를 탐방하며 역사적 지식과 민족의 얼을 되새기고 오늘이 있기까지의 삶을 조명하는 울문아의 학습 철학과 이념정신이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몇 년 전 직장연수 때 서해안 일대를 탐방했는데 이번 코스에 중복되는 곳도 있었지만 기억을 되살려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라 내심 반가웠다,

수덕사, 해미읍성, 삼존마애석불 등은 굳이 양국장님이 배부해 주신 자료집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문화유산의 가치가 무수히 깃들어 있는 곳이었다. 내포라는 지형 자체가 가야산을 중심으로 안면도와 태안반도 등, 한반도의 정기가 분출되어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어서 선진 문물을 들여오는 백제 불교문화의 특구였기 때문이었다.

기억속의 수덕사는 여전히 웅장한 기품을 뽐내고 있었다, 사방으로 포진하고 있는 위엄한 산세는 일순간에 무한의 경지로 몰아넣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시 속세를 잊은 듯 유유자적해 보았다.    

경허와 만공 일엽, 세 스님의 근현대사에 얽힌 일화는 방대했다. 엄마 품이 그리워 찾아왔던 아들의 애절한 절규가 경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아 잠시 숙연했다.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중시하는 스님들의 선풍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양국장님의 해설은 절정에 달하고 저마다의 눈높이로 받아들인 자료들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기에 바빴다. 포토그래퍼들은 나름의 아름다운 흔적들을 담아내느라 분주했다. 다만 이응로 화백의 바위그림이 있는 수덕여관이 공사 중이어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1일차 마지막 코스로 조선 천주교의 가슴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는 해미읍성을 찾은 때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이었다. 양국장님은 먼저 서문에 자리한 자리갯돌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생생한 참상의 현장 사진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처참하게 죽일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끝없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나는 한낱 한 마리 미약한 개미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평화로워 보였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엄습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중앙의 호야나무까지 다가간 우리에게는 또 다른 비극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생매장까지 했다니 그 인원은 무려 1,000여명에 달했다고 했다. 

억울한 천주교인들이 당했던 차별과 서러움, 그리고 고문, 순교까지의 차마 삼키지 못한 울음소리가 막 넘어가기 시작한 해미읍성 서녘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새로운 사상과 문물이 자리 잡기까지 엄청난 이해관계의 충돌과 함께 고통이 따르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는 걸 느끼면서 다 같이 평화롭게, 함께 잘사는 행복한 세상은 요원한 것인가 깊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2일차에 탐방한 보원사지는 다행히도 <내포 가야산 성역화>로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추진위원장인 정범스님은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우리를 법당으로 안내하였다. 표면적으로만 접했던 내용들을 깊이 있게 알려주려 했으나 일정이 바빠 더 자세하게 듣지 못하고 온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스님의 결연한 의지가 빛을 발하여 부디 보원사가 성스럽게 복원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빌고 또 빌며 발길을 돌렸다.

인근에 위치한 서산마애삼존불은 용현계곡을 따라 올라가 가야산 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그 유명한 백제의 미소, 이름 하여 백만 불짜리 미소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시간대별로 다르게 보인다는 신비의 미소를 놓칠세라 정면, 좌우 측면으로 번갈아 옮겨가며 뚫어지게 관찰을 했다. 중국과의 교역로 길목에서 안녕과 평안을 비는 미소가 아니었나하는 학자들의 고증과 연구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무재칠시 중 '화안시'가 떠올랐다.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

예나 지금이나 웃음은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힘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보았다.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사람은 한 송이 꽃이 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나듯이 울문아 식구들이 모두 그런 분들이라 여겨졌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와 문화유산들은 역사적 배경과 관련된 고전 설화, 그리고 어떠한 이야기가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는지 재조명하면서 그 숱한 고통과 희생으로 오늘의 내가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새삼 가슴에 새겨보는 소중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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