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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세탁소 / 홍민정 글·김도아 그림
걱정 세탁소 / 홍민정 글·김도아 그림

걱정이란 녀석은 참 고약하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나를 꾹꾹 누릅니다. 귀찮게 쫓아오는 동생은 날쌔게 도망가서 떼 버리면 되고, 배고파서 힘이 없을 땐 엄마가 해주신 반찬에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으면 힘이 나지만 걱정은 계속 나를 무겁게 누릅니다. 
 걱정꾸러기 재은이 앞에 걱정 세탁소가 나타납니다. 

 

 '걱정을 세탁해 준다고? 어떻게? 설마…….'
 ……(중략) 가게 안에는 일하는 사람도 세탁 기계도 보이지 않았어요. 세탁소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옷 한 벌 걸려 있지 않았고요.


 재은이는 한 발짝 떨어져 간판을 다시 올려다봤어요. '가상현실'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순간, 며칠 전에 삼촌이랑 갔던 VR 카페가 떠올랐어요. 잠수부 안경처럼 생긴 크고 무거운 VR 고글을 머리에 쓰자, 재은이 몸이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 붕 떠 있었어요. 눈앞에는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땅의 모습이 펼쳐졌고요. 그제야 걱정 세탁소에 세탁기가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재은이는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안내방송을 듣습니다. "걱정 세탁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무인으로 운영되는 VR 세탁소입니다."


 재은이는 걱정 세탁소 사용법에 적힌 대로 고글을 쓰고 걱정을 세탁합니다. 걱정이 탈수된 시간은 1시간, 12시간, 30일인데 재은이는 처음으로 해보는 세탁이라 1시간을 선택했습니다. 깨끗하게 세탁한 옷처럼 머릿속이 맑아진 재은이는, 욕심을 내어 12시간을 선택해 걱정 없이 보냅니다. 걱정꾸러기 별명은 전생의 별명이었고, 재은이는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초긍정 아이가 됩니다.


 "무슨 문제집을 그렇게 열심히 푸니? 수능 보는 줄 알겠다."
 승민이는 고개를 한쪽으로 꺾고 재은이를 째려보았어요. "너 지금 나 공부 못한다고 놀리는 거지? 이게!" 
 재은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어요. "에이, 놀리는 거 아니야. 다 배운 데서 보는 건데 뭐가 걱정이니? 그냥 자신감을 갖고 봐. 시험 좀 못 보면 어때? 공부가 전부는 아니잖아."

 

조희양 아동문학가
조희양 아동문학가

 너무도 긍정적인 재은이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가 구급차를 실려 병원으로 가는데도 고요했던 재은이. 걱정이 필요한 시간임을 인지한 재은이는 걱정 세탁소 사용법의 마지막 문구였던 "비상시 STOP 버튼을 누르면 기능이 멈춥니다."를 떠올립니다. 지금이 그 비상시임을 깨닫고 할머니를 걱정하기 위해 걱정 세탁소로 달려가 비상시 버튼을 누릅니다. 버튼을 누르기 전 다시 읽어본 사용법에 '중간에 멈추면 세탁 기능은 다시 사용할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재은이는 이렇게 자신에게 말합니다. "괜찮아! 지금 나한테는 걱정하는 마음이 필요해."


 작가는 걱정꾸러기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걱정 때문에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되기도 해. 시험 걱정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은 그 사람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해. 걱정만 하고 노력하지 않는 건 문제지만,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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