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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안감

박정옥

자매는 무너진 성벽 아래서 분홍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꽃말은 위험, 그리고 강한 독성을 지녔대요
협죽도라고도 하죠
꽃은 안감 겉감처럼 두 개의 이름과 의미를 가졌다

그날도 세 번째 그 언덕을 오르내렸다
남아있는 총탄 자국과 충돌하는 풍경
이 도시 어디서나 여백을 채우고 있는 꽃
숙소에서 가까운 리바거리를 걸었다
낡삭은 목재 유리문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옥양목에 그려진 꼬레아 풍의 꽃무늬를
복사꽃으로 읽을 뻔 했다

자다르에서 스플릿까지 오는 동안 
나는 내내 꽃의 안감을 읽어 내는 중인데
창을 통과한 네모나고 화사한 햇볕은 
평생 묻어둔 꽃의 시간으로 넘겨졌을까
그 시간 그곳을 지나지 않았다면 
옥양목을 떠도는 꽃에 대한 시차는
또 달랐을 것인가!

유도화,
네가 이룬 꽃말은 어딘가를 통과하려고한 
꽃의 안감을 걸어서 다 걸어서
마른 꽃이 되는 슬픔을 건너는 중이다
마른 꽃은 치명적인 독성으로 과묵하고
발칸의 폐허에서 미어지도록 찬란했다

△박정옥 시인: 경남 거제 출생. 울산대학교 역사 석사과정 수료. 2011년 <애지>로 등단. 2021년 울산문학상 수상. 변방동인. 시집 '거대한 울음' 'lettering'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크로아티아의 라바거리, 자다르, 스플릿, 생소한 단어들 속에 독성처럼 살아있는 붉은 꽃,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협죽도, 어울리지 않을 도시의 여백을 채우고 복사꽃을 닮은 듯 또 다른 이름 유도화. 

 시인이 들었을 자다르의 바다오르간 소리보다 더 강렬하게 일렁거렸을 꽃에 대해 도시를 건너가면서 내내 열중하였단다. 그것도 꽃의 안감을 말이다. 얼마나 시인다운 여행인가. 아드리아해와 접한 리바거리에서도 꽃을 쫓아 눈길이 머문다. 유도화, 협죽도, 옥양목 이국의 나라에서 너무나 정겨운 단어들을 맞는 시인의 발칸 반도 여행이 부럽다. 

 아픈 역사를 지닌 크로아티아에 남은 총탄의 흔적은 오래오래 독립의 진정한 꽃일 수도 있겠다. 그 꽃 안감을 걸어가는 시인의 눈이 아름다운 꽃이 되는.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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