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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 고래마을의 전경. 김동균기자 justgo999@
장생포 고래마을의 전경. 김동균기자 justgo999@

차로 갓길에 이어지는 쪽 곧은 11자들. 사이드미러에 들어 점점 좁아지는 나무둥치들. 함함한 가로수들 11이 전봇대와 가로등 11을 속속 당겨오고 밀어낸다. 뒷걸음으로 멀어지는 그들의 소실점에 눈길 붙들리며 11월의 한가운데를 달리는 중이다. 덤프트럭이 은행나무 가지를 흔들 때마다 노랑나비들이 날개를 펄럭인다. 멀찌감치 차를 세워두고 나도 11자 발걸음으로 걸어볼걸, 후회막급이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오호호…." FM 라디오를 켜니 까마귀 날자 홍시 떨어지는 음률에 입이 짝 벌어진다.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으로 향하는 액셀러레이트와 브레이크의 걸음이 흥겹다.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어허허…."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불러주던 큰오빠의 젊은 날도 스쳐 지난다.


 고래연구소 담장 가까이에 차를 댄다. 연보라 해국 무리가 활짝 갯내를 뿜어내고, 시월의 고래축제 여흥이 볕살에 실려 다닌다. 매표소에서 해피관광카드를 추천해 준다. 장생포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울산함, 고래문화마을(장생포옛마을, 5D입체영상관), 태화강동굴피아를 포함해 7,200원. 정가에서 40% 할인된 가격이다. 박물관 2층 계단에서 마주한 길이 12.41m, 체중 14.6t의 브라이드고래 골격에 놀라면서도, 그 지느러미에 붙어 바다를 유영하는 상상에 빠져든다. 1m가 넘는 참고래 수염이 신비스럽다.

 

자개장이 번듯한 선장네
고래이빨 썰매 타는 아이들
동네 개들도 털이 반지르르
화려했던 장생포 시대로
시간 여행 떠나본다

 

남구 장생포항 귀신고래 분수대.
남구 장생포항 귀신고래 분수대.

# 귀신고래 떠났지만 파도치는 장생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고래박물관에 나타났다! 
 "우리가 17층에서 일을 하고 지하 1층에서 점심을 먹을 때 고래는 울산 앞바다에서 먹이를 먹고 일본 서해안에서 잠을 잡니다. 고래한테는 울산 앞바다가 주방이고 일본 서해안이 침실인 셈이죠." 


 3층 전망대휴게실에 그녀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울린다. 창밖에는 모노레일이 지나간다. 1970년 중반까지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으러 이동한 울산 앞바다를 경유하며. 울산이 선사시대부터 포경업의 근거지였음은 익히 알려져 왔다. 장생포가 고래잡이의 주 무대가 된 때는 1899년. 러시아가 태평양 연안에서 잡은 고래의 해체지로 지정한 이후부터다. 1970년대 말이 전성기로 포경선이 20여 척이었다. 생명은 유한한 존재. 무분별한 포획으로 고래의 멸종 신호가 왔다. 국제포경위원회의 상업포경금지 조치로 화려했던 장생포 시대는 1986년에 막을 내린다.


 바다 건너 고래 해체장엔 해국을 떠도는 바람이나 쉬어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래고기를 먹을 수 있는 연유가 뭘까. 고래문화광장 지킴이로, 장생포 출신 가수 윤수일의 두 해 선배라는 김혜숙 안내원은 "그물에 걸린 고래를 입찰하여 식당으로 갑니더. 몰래 잡아 팔던 이들은 다 수감 중이라요. 고래고기에 돌고래고기를 섞어 파는 이들도 있나 봄니더. 비린내도 심하고, 그런 건 먹으면 안 돼요. 이곳엔 그런 일은 절대 없고요. 예전엔 엄청 큰 고래들이 잡혔지요. 우리 집에 세 든 아재가 고래 해체 전문가여서 고래 잡는 날은 배불뚝이가 됐심니더. 고기가 흔해 지나가는 사람도 얻어가고, 동네 개들도 털이 반지르르했지예. 뒷동산에서 고래 이빨로 썰매를 타면서 이빨에 붙은 살을 떼어 먹으면 얼매나 꼬솜하던지…. 5년 전인가, 밍크고래를 본 이후론 고래가 안 오더라꼬요.""지난번 고래축제요? 아이고야, 말도 마소. 장생포서 70년을 살았는데 사람 구경을 그마이 하기도 처음 아닌교. 사람사태가 났다카이까네요. 식당은 고기가 모지라서 못 팔았고요."


 개발 이전엔 산이어서 소풍 장소였다는 '고래문화마을'로 간다. 도로변에서 3백미터 거리. '고래바다여행선' 앞을 서성이는 이들이 돌고래 군무를 볼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 있다. 망망한 바다를 트로트 가락에나 묻혀온 몇 년 전 기억이 난다. 오늘 그들의 운항이 내 노래처럼 우연히 들어맞기를! 갓길에 몰린 낙엽이 바삭거린다. 원조 고래빵집과 영진호 선주집, 인어공주에 반한 고래 벽화를 지나, 고래꼬리의자에 앉았다가 장생옛길을 걸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이 무서워져 '고래 만나는 길'로 걸음을 서둘렀다. 오솔길에 펼쳐진'장생이와 엄마고래 이야기'를 눈으로 들으며 고래를 찾아간다. '고래조각공원'에서 실물 크기의 고래들이 밑바닥을 헤엄친다. 더는 작살 맞을 일 없는 그나마 안심 공간이다. 혹등고래, 범고래, 향고래, 밍크고래, 귀신고래, 대왕고래의 저 어마어마한 자태라니.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몸길이 30미터, 몸무게 200톤의 대왕고래 입속에 절로 빨려든다. 제페토 할아버지와 피노키오가 헤엄친 상어 뱃속이 이랬을까. 다행히 대왕고래는 옆새우 종류를 먹으니, 나는 고래뱃속을 떠다니다가 안도의 한숨으로 토해졌다. 

고래를 찾아 나선 망망대해를 누비던 진양호의 선체의 모습.
고래를 찾아 나선 망망대해를 누비던 진양호의 선체의 모습.

# 가을 입은 오솔길 톺다 만나는 옛마을
오색수국도 라벤더도 떠난 오솔길을 톺다가 '장생포옛마을'로 들었다. 국수 공장 옆 빈터가 시끌벅적하다. 한 무리의 참새떼가 향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리다가, 기와지붕에 점선을 긋다가, 포르르르 귀여움을 떤다. 옛날국수, 옛날짜장면, 추억도시락 등 안 파는 메뉴가 없는'고래막집'엔 신메뉴가 추가되었다. 우영우 김밥 2,500원. 똥글똥글한 눈빛 맛이 날 것 같다. 가게 앞의 고래조형물에 드러누운 개구쟁이 눈빛이 김밥 속 같다. 동네점빵에서 달고나 만드는 흉내를 내 본다. 장생포국민학교의 2인용 푸른 책상에도 앉아보고. 


 한국계 귀신고래를 세계만방에 알린 탐험가이며 고고학자인 앤드류스 씨 집도 어슬렁거리고. 자개장이 번듯한 선장 집. 조기수 집과 기관사 집. 해부원 집과 포수의 집. 1961년부터 1985년까지 사용한 고래해체장과 고래착유장. 없는 곳이 없는 장생포옛마을은 일반적인 60~70년대의 마을과는 또 다른 기억을 풀어놓는다.
 상영시간이 30분 간격인'5D 입체영상관'은 머잖아 손주를 보면 들러야겠다. 고래의 하루가 어두워지기 전에 고래생태체험관으로 간다. 늦가을 해는 한순간에 문수산을 넘어가니. 벚나무 잎 흩날리는 길가 나무테이블에서 아기가 울음보를 터뜨린다. 


 "조기 고양이가 무서워서 이래 안 우는교! 허허.""아가야, 고양이 떼찌 떼찌!"할머니 품에 안긴 아기의 눈이 똥그래진다. 해저터널에 들어서는 순간, 유리를 스치는 돌고래 두 마리가 얼굴에 닿을 듯하다. 계단을 올라가니 수조 안의 큰돌고래가 물 위로 뛰어오른다. 공을 물어 던지고, 내달리고, 지느러미로 공을 차고, 뒤집고, 소리를 내지른다. 드넓은 바다의 기억을 네 마리 돌고래가 돌고 돌고, 돈다. 사이가 거의 없는, 규칙적이고 또록또록한 우영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가면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가 아기 돌고래들과 헤엄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수족관에 붙잡혀 돌고래쇼를 하다가 대법원 판결에 의해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들입니다. 언젠가는 꼭 보러 갈 겁니다."
 
 

고래 해체장을 재현한 모습.
고래 해체장을 재현한 모습.

# 노을지는 바다…꽃 피는 공단 야경까지
방치된 선체를 복원한 진양 5호 포경선 위로 모노레일이 지난다. 34년간 우리 영해를 수호하다 퇴역한, 대한민국 최초의 2,000t급 호위함'울산함 951호'로 가는 길. 군함은 전쟁영화에서나 보았는데. 울산함 안팎 구석구석에 밴 분단의 바다가 파도를 마구 몰아오는 것 같다. 


 복지회관을 지나 장생포문화창고로 향하는 도로변은 낮고 낡은 집들이 조밀하다. 개발과 미개발이 한 줄로 엮여 낙엽을 날린다.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문화창고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에 묻어나는 문화 향기. 아이든 어른이든 창작의욕이 발현되는 장소다. 어린이 그림놀이터, 갤러리, 소극장, 창작자 공간, 공연연습실 등등. 6층의 지관서가 북카페와 별계단에 이어지는 옥상정원은, 놀이 지는 바다와 꽃 피는 공단 야경을 보는 최적의 공간이다. 북카페 창가에서 시집을 펼치며 에스프레소 잔을 기울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곳에 들면, 바다와 어우러진 독서 풍경에 노을 낯빛이 되는 당신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목젖이 칼칼하고 궁금한 날은 장생포에 가야지/ 언덕 위에 빈 벤치가 놓여 있는 그림을 배경으로/ 이따금 물줄기를 뿜어대는 고래 만나러 가야지
어린것을 업고 있던 어미 고래 안부도 물어보고/ 인심이 후한 참고래 집 아지매도 만나보고/ 혹등고래 귀신고래 밍크고래 모두모두 수소문하여/ 오래 안 보이는 사정이나 들을 수 있으려는지   
 -강세화 '고래를 찾아서' 부분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섬 아닌 섬 장생포. 귀신고래가 떠난 후로 대리기사도 안 들어오는 장생포. 그래도 장생포는 파도의 언어로 귀신고래 회유해면에 끊임없이 말을 건다. 먼바다를 주유하는 고래의 소식을 쉼 없이 전한다. 고래의 파장이 백만을 지나 천만의 육지인을 불러들인다. 벤치에 내려앉은 가을 햇발처럼 안온한 음파로, 자장가를 토닥이는 어미의 목소리로. 고래의 기억도 장생포구도 어두워진 지 한참이다. 당신도, 오늘의 기억을 어둠 속에 부려놓으며 내일의 고래를 만나러 갈 즈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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