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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태 수필가
임일태 수필가

나는 어려서 새를 무척 좋아했다. 새는 하늘을 높이 날아 달이나 별에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늘을 마음껏 날며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존재가 새라고 여겼다. 그것이 내가 새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 환상은 새를 잡아다 키우고 관심을 가지고부터 조금씩 깨어졌다

새나 사람이나 어미가 되면 자식을 키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어미 새는 일 년 중 사 분의 삼을 고생해서 새끼를 키운다. 가을이 되면 새끼를 키워 떠나보내고 봄이 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다시 새끼를 키우는 일을 반복한다. 그것이 모든 생명체가 가진 종족 보존 본능이라지만 새는 특히 심하다.

봄이 시작되면 암수가 짝짓기하고 집을 짓는다. 사람은 안락한 삶을 위해 집을 짓지만 새는 새끼를 키우기 위해 집을 짓는다. 새끼를 키우지 않는다면 집이 필요 없다. 새의 둥지는 산실이고, 육아시설일 뿐이다. 다 자란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 잠을 자지 둥지에서 편히 누워서 자는 것이 아니다. 집을 지을 때는 암수가 쉴 새 없이 작은 나뭇가지나 지푸라기로 집을 짓고 부드러운 깃털로 실내장식을 한다.

집이 완성되면 암놈은 알을 낳아 날개로 알을 품는다. 가끔 먹이를 먹을 때는 수놈이 교대한다. 알을 품지 않는 놈도 편히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으로부터 안전을 위해 경비를 선다.

새끼가 부화하면 어미 새는 더없이 바쁘다. 암수가 새끼를 키우기 위해 쉴 새 없이 먹이를 잡아 새끼의 입에 넣어준다. 새끼들은 늘 배가 고프다고 어미의 소리만 들리면 입이 째지도록 벌린다. 대여섯 마리의 새끼가 몸피가 커질수록 어머 새는 더욱 바쁘다.

새끼가 둥지에 똥을 누면 어미 새는 똥을 물어다 멀리 버린다.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청소와 먹이 사냥을 동시에 하는 행동은 참 합리적고 영리한 행동이다.

새끼가 커갈수록 먹는 양은 많아지고 먹이를 구하는 일은 녹록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새끼도 생긴다. 먹이가 귀할 때면 새끼들은 저들 중에서 약한 놈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어 죽게 만든다. 그래야 자기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미 새는 떨어져 죽은 새끼에게 애정을 갖지 않는다. 냉정하게 처신한다. 모두를 잃는 것 보다는 일부라도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안다.

새끼의 날개가 생기고 꽁지가 생기면 독립할 준비를 한다. 날 시기가 되면 어미 새는 먹이를 물고 둥지 앞에서 새끼가 둥지 밖으로 나오도록 유인한다. 배가 고픈 새끼는 둥지를 떠날 용기를 낸다. 둥지를 떠난 새끼는 독립하여 먹이를 잡는 법을 배우고 어미로부터 독립한다. 일단 독립하면 남남이 된다. 그때부터 서로는 생존경쟁을 위해 먹이를 다투는 경쟁자가 된다.

모든 새의 종류가 새끼를 키우는 방법이 같은 것은 아니다. 주로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새는 일부일처제에 공동육아를 한다. 그러나 주로 나무 열매나 곡식을 먹고 사는 닭이나 오리 꿩은 다르다. 일부다처제로 새끼를 키우는 일은 암놈이 독박을 쓴다. 많은 새끼를 암놈이 혼자서 키우지만, 새끼 사랑은 다른 새에 못지않다. 또 뻐꾸기처럼 남 둥지에 알을 낳아 육아도 하지 않는 새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새의 공통점은 일단 새끼가 커서 어미가 되면 완전히 남남이 되고, 바로 생존경쟁의 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닭을 키웠다. 어미 닭은 땅을 긁어 먹이를 찾아내고, 병아리에게 먹으라고 알려준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이면 날개 밑에 넣어 새끼를 보호한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새끼에게 접근하는 개나 독수리와도 일전불사의 정신으로 대항한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이랬던 닭도 병아리가 꽁지가 나고 날개가 생기면 하루아침에 어미는 돌변한다. 어미 닭은 어제까지 보호하던 새끼와 먹이를 다투고 쪼아 멀리 쫓아낸다. 물론 새끼 닭도 어미를 경쟁자로 대할 뿐 효도 같은 것은 기대할 필요도 없다.

이런 것을 보면서 내가 새라면 새끼를 키우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편히 쉬면서 노래나 부르고 놀면서 행복을 즐길 것이다. 매년 고생해서 키운 새끼는 먹이 쟁탈전의 경쟁자가 될 뿐인데 구태여 경쟁자를 위해서 죽을 고생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머리가 나쁘면 새대가리라고 하는가 보다.

새보다 머리가 좋다고 자부하는 나는 왜 자식 걱정을 하고 사는지. 따로 사는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나의 머리는 새대가리보다 좋은가. 자식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전세 원룸은 춥지는 않은지,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나는 새보다 더 머리가 나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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