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지원 수필가
이지원 수필가

울산 장생포에 가면 고래 고기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곳에 고래박물관도 있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한 시절 고래를 잡았던 포경선 '제6 진양호'가 전시돼 있으며 실내에는 날마다 돌고래 쇼가 펼쳐진다. 또한 울산 앞바다에 출몰하는 고래를 관광객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고래바다 여행선'을 운항한다. 해마다 고래 축제가 열리는데 행사의 취지가 애매모호하다. 포경을 금지해 놓고 버젓이 고래 고기를 파는 것을 보면 고래를 보호하자는 것인지, 포경 금지를 해제하여 고래를 다시 잡자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상업적 포경이 금지된 지도 사십 년이 다 돼 간다. 그사이 개체 수가 많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연간 1,000마리 이상의 고래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또한 각종 선박에 충돌하고 어망에 걸리는 등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고래를 식용으로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 몇 나라 되지 않는다. 그것도 소수의 미식가들만 먹는다. 대중적인 음식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고래 고기를 꼭 먹어야 하는 것인가 한 번쯤 고민해 보고 싶어진다.

 기후 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온실가스라는 사실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온실가스는 온실 효과를 유발하는 물질들을 말하는데 이산화탄소, 메탄 등등의 물질들을 총칭한다. 이런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나무를 많이 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고 있지만 나무보다 더 강력한 생물이 있다. 바로 바다에 사는 고래다.

 기후 위기를 막아 줄 수 있는 고래의 비밀을 알아보자. 고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몸속에 저장한다. 고래의 몸은 많은 지방과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고래는 숨을 쉴 때마다 탄소를 몸속에 저장한다. 고래의 몸이 곧 탄소 저장소인 것이다. 고래의 수명이 60년 이상임을 감안할 때, 고래는 평생 33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고 한다. 나무 한 그루가 일 년에 22kg 정도를 흡수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라 할 수 있다. 평생 그렇게 많은 탄소를 흡수하고 삶을 마감하게 된 고래는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탄소를 몸속에 품고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가 수백 년간 이산화탄소를 가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산화탄소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포집하면 되지 않을까 싶겠지만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바다 깊이 묻는 것은 복잡한 기술과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래는 존재 자체로 지구에 이로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래가 숨을 쉬거나 이동을 하기 위해 물 위로 올라올 때, 고래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필요로 하는 질소와 철분 등을 뿜어낸다. 고래의 배설물에는 질소, 인, 철분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성분들이 모두 미생물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고래 덕분에 잘 성장한 식물성 플랑크톤은 식물처럼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그 양이 아마존 열대 우림의 4배 이상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식물성 플랑크톤은 고래와 마찬가지로 기후 위기를 막는데 큰 역할을 한다. 또한 식물성 플랑크톤은 지구 대기 중 산소를 약 50% 이상 공급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품고 산소를 내주는 정말 고마운 생물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먹이 역할까지 하고 있는데 동물성 플랑크톤은 또다시 수많은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되기에 바다의 생태계가 풍부해진다. 그러니까 식물성 플랑크톤의 증가를 돕는 고래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구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고래들은 현재 위험에 처해 있다. 1986년 상업적인 포경이 금지되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목숨을 잃고 있다. 고래는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만약 포경을 하지 않고 모든 고래들이 그대로 있었다면 고래들은 연간 17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었을 것이라 한다.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기후 위기도 더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 모두 고래의 역할에 감사하며 고래 포획을 금지하고, 고래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몇 달 전에 종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에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고래가 등장한다.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찰나, 고래가 나타난다. 이상하게도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에 고래의 역할과 이 드라마가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드라마에 과몰입한 탓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멸종 위기종 코끼리가 보호되어야 하듯, 바다의 고래도 보호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