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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출신 서덕출 선생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아동문학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서덕출 문학상이 올해로 16회째를 맞았다. 서덕출 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말까지 방간된 동시 동화 등 아동문학을 대상으로 공모을 시작했으며, 전국에서 모두 30여편의 작품이 응모됐다. 이후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제16회 서덕출 문학상 수상자로 김준현 작 '토마토기준'을 확정했다. 올해의 심사평과 당선 소감, 주요작품을 소개한다. 편집자

 

제16회 서덕출문학상 심사위원회가 지난 23일 본사 회의실에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16회 서덕출문학상 심사위원회가 지난 23일 본사 회의실에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 심사평

울산이 낳은 빼어난 아동문학가 서덕출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전국의 역량 있는 아동문학가에게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서덕출 문학상이 올해로 16회를 맞이했습니다.


 올해도 전국의 아동문학가와 출판사에서 우수한 작품을 많이 응모했습니다. 서덕출 문학상 운영위원회는 김영주, 소래섭, 송선미, 심상우, 이시향(이름 가나다 순서) 등 5명에게 응모된 작품의 심사를 의뢰했으며 1차로 심사위원마다 세 편의 작품을 선별해, 지난 11월 23일 최종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올해는 전체적으로 동시가 동화보다 많이 응모됐습니다. 우선 심사위원 다섯 분의 심사 소감을 듣고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전체적인 소감은 동화 작품보다 동시 작품의 수준이 높고 깊다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최종 심사로 세 작가의 동시집을 최종심에 올려놓았습니다. 박승우 동시집 '힘내라 달팽이', 박혜선 동시집 '나는 내가 꽤 마음에 들어', 김준현 동시집 '토마토 기준'을 놓고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이들 세 작품집은 어느 것을 뽑더라도 아동문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재미, 교육적 성과를 잘 드러냈으며, 특히 우리말 표현의 아름다움과 문학적, 미학적 완결성을 높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 작품집을 다 뽑을 수는 없는 가혹한 규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한 작품집을,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의결로 김준현 시인의 '토마토 기준'을 제16회 서덕출 문학상 수상작으로 뽑았습니다.
 수상작 '토마토 기준'은 동시 작품이 지니고 있어야 할 모든 요소와 미덕을 갖춘 참신함과 실험적 동시들로 한국 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제친 작품집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수록된 46편의 동시들 가운데 어느 작품을 고르더라도 시적 재미와 참신한 표현으로 시의 맛과 멋이 철철 넘칩니다.


 공들여 쓴 우수한 작품을 응모해준 동시인과 동화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을 심사를 명목으로 만난 것에 대해, 심사위원들 모두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준 것에 특별한 감사를 표합니다.


 끝으로, 제16회 서덕출 문학상 수상 시인 김준현 님에게 다정한 축하의 말씀을 보냅니다. 심상우 심사위원장

 


 

 

제16회 서덕출 문학상 수상자 김준현 시인.
제16회 서덕출 문학상 수상자 김준현 시인.

■ 수상소감

"건강한 단어로 웃게 만드는 것 좋아…지치는 현실에 힘 내라는 마음"

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 이렇게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단어를 좋아합니다. 그저 토마토를 끝없이 말하고 있을 뿐인데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재밌어하고 좋아합니다. 누구를 바보로 만들지 않아도, 희화화하지 않아도, 토마토처럼 건강한 단어로 모두를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토마토 기준'에 웃음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한숨도 있고 자꾸만 마음을 지치게 하는 현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힘을 낼 수 있다는 게 이 동시집에 담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서덕출 선생님의 삶을 되짚어 보면, 불편하신 몸으로도 짧은 삶의 한 가운데에서 아름답고 건강한 동시를 남겨주신 마음 역시 이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합니다. 읽고 쓸 힘을 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축복 같은 딸 태린이, 늘 제 삶을 보살펴주신 우리 가족들-포항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충주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언제나 환한 미소처럼 동시의 길을 밝혀주시는, 존경하는 이안 선생님과 동시마중, 강 건너에서 사랑의 시를 쓰는 내 유일한 문우 고명재 시인, 제 시의 처음을 밝혀주신, 사랑하는 김문주 교수님, 그리고 아름다운 책을 함께 만들어주신 송선옥 선생님과 문학동네 편집자 선생님들, 무엇보다 이토록 크고 멋진 환대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울산신문과 여러 동시인 선생님들-공들여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서덕출 선생님께 읽어드리고 싶은 동시가 있습니다. 지금의 어른들, 누구보다도 어린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 한 편의 동시를 끝으로 수상소감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리코더로 들어가 소리가 되었어

두더지 땅굴 속에서 어둠이 빛을 찾아 나가듯

열 손가락으로 ㅇ 같은 구멍들 하나하나 막을수록
도, 시, 라, 솔, 파, 미, 레,

키가 줄어들어도
빛이 들어오는 모든 구멍이 막혀 있어도
끝에는 언제나 도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슬퍼도
괜찮아 그래도

막다른 곳에서도
힘을 내는 도가 있어
아직도 

 

■ 김준현 시인 약력

-1987년 포항 출생.
-영남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15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 수상.
-제5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2020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평론 부문 수상.
-2022 화이트 레이븐스,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토마토 기준' '나는 법' 시집 '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 '흰 글씨로 쓰는 것' 청소년시집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등 펴냄.

 


 

토마토 기준 표지
토마토 기준 표지

■ 수상자 주요 작품

 

토마토 기준

여섯 개에 사천 원

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
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
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마토

한가득 쌓인 곳에서
엄마가 토마토를 이것저것 들었다 놓았다


토마토도 집어 보고 마도 집어 본다

앞으로 봐도 토마토
뒤로 봐도 토마토
내 눈에는 전부 그게 그거 같은데

빛에 비춰 보며
이리저리 굴려 보며
꼼꼼히 고르고 있다

 

늘로우모션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졸린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잠이 든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잠이 깬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배가 고픈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고개 옆의 나뭇잎을 본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고개를 돌린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고개 옆의 나뭇잎을 뜯은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잎을 한 번 씹은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잎을 두 번 씹은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잎을 세 번 씹은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배가 부ㅡ른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더 할 게 없는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이틀 후의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일 년 후의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는걸 계속 읽다가 지겨워진 네가 책장을 넘겨도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고 계속 쓰던 내가 지겨워서 이제 그만 쓰고 싶어도
너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붙어있다

 

떨림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뛰었다

제자리멀리뛰기로 남은 두 발자국은 
아직도 두근두근 숨 쉬는
흙의 허파

개구리가 왜 그렇게 숨을 크게 쉬는지
알 것 같았다 

 

가을 냄새 
 
킁킁 밑에는
콧구멍 두 개가 있어

여름내
크크 웃기만 하던 그 아이
가을이 되자
말없이
킁킁, 냄새를 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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