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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달력 / 김선진 지음
농부 달력 / 김선진 지음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그림책 '농부 달력'은 이 사려 깊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앞표지는 그림 달력으로 마늘과 양파가 '농부 달력'이라는 제목을 지킨다. 그 아래 42장의 작은 그림이 사계절의 변화와 24절기의 흐름을 모두 담고 있다. 엄동설한에도 푸른 채소가 나오고 삼복더위지만 에어컨을 켜면 서늘해지는 도시의 사람들에게 '농부 달력'은 잃어버린, 그래서 잊힌 것들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마치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자연의 달력은 지금도 차곡차곡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림책의 첫 장을 펼치면 겨울의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짧은 대화로 농부의 달력은 시작된다. 


 "밥 먹고 읍내에 다녀옵시다", "그러세." 눈을 치우고 난 뒤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둥근 밥상에 앉은 노부부의 대화는 구수하다. 창고에서는 기름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은행나무 가지에는 아직 겨울이 걸려있다. 하지만 오늘은 읍내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니까, 슬슬 날도 풀리니 미용실에도 가야 한다. 할머니는 "안 풀리게 아주 씨게" 말아 달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사이, 할아버지는 제일 고운 꽃무늬 몸뻬 바지를 한 장을 산다. 


 봄이 오려나 보다. 흙 속의 벌레가 깨어나는 날씨가 되자 창고를 연다. 종자들을 골라주고 모종판에는 씨앗을 뿌린다. 냉이, 쑥, 방풍나물, 원추리, 봄동 등 봄나물을 뜯어다 저녁거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달력에 맞춰 농사일을 준비한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는다. 농사라는 것이 심어주기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농부 달력이 필요한 것이다. 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밭고랑과 작물 사이를 부지런히 긁어 준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발소리를 들으며 때가 되면 꽃이 피고 꽃이 진다. 뜨거운 여름 햇볕은 쨍하게 내리쬐고 열매는 그 아래에서 묵묵하게 익어 간다. 


 읽는 동안 시기에 맞춰 할 일에 분주한 농부 할머니와 할아버지 곁을 조르르 따라다니며 두런두런 농사 얘기를 듣는 듯 재미있다. 쑥대가 올라오면 뻣뻣해서 먹지 못한다는 것도 배운다. 노린재가 깨 윗머리를 뜯어먹으면 열매가 열리지 않아 참깨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장맛비 내리는 날에는 전을 부쳐먹기도 하고, 한여름엔 등목도 한다. 얼음 물에 동동 띄운 과일을 먹기도 하면서 더운 여름을 보내고 어느새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해가 지는 게 조금씩 빨라지면 겨울을 위한 씨를 심어야 한다. 또 이슬이 내리기 전에 작물들을 거둬들이며 올 한해 농사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결코 끝은 아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 남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움직여 가꾼 작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골라 자식 네로 보내야 한다. 그야말로 허리 펼 날이 없는, 끝이 결코 끝이 아닌 농부의 달력이다. 


 그림책 '농부 달력'은 "수고했네.", "수고했소." 더 고생하고 덜 고생한 것이 없는 것처럼 더 누리고 덜 누릴 것도 없는 한 해가 함박눈과 함께 비로소 끝이 난다.

이수진 아동문학가
이수진 아동문학가

 살면서 여러 가지 달력을 보았고 다이어리를 잘 쓰는 법에 대해서 찾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 이 달력에 마음을 맡기기로 했다. 과속의 나날을 내려놓고 그림책 속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정속 주행의 비결을 배워야겠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본래의 감각을 지녀야만 비로소 건강과 행복이 깃들 수 있을 것 같다. 


 '농부 달력'은 "심고 가꾸고 거둬들이는 데는 다 각자의 때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처럼 자연과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농부의 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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