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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열차

장선희

수천억 물방울 바퀴가 굴러간다/꼬마 아이 신발도 싣고/연푸른 나뭇잎도 싣고/섬진강은 달렸다/자갈 위를 달리고 모래 위를 달리고/굽이굽이 달려도/급정거하는 법이 없다/역마다 바람과 구름을 태우고/신바람이 나면 꼬막과 굴은 무료 승차다/창밖이 물속이고 물속이 창밖인 섬진강/출렁다리 지나 구례역에서 잠시 정차한다/매표소는 산수유나무/가지마다 노란 열차표를 매달고/인심 좋게 두서너 장 나눠 준다
(중략)
레일이 없어도 달릴 수 있는 양털구름/재첩 소쿠리 만들어 보이면/굴렁쇠도 매화 꽃가지에 올라탄다/팔뚝 굵은 섬진강, 특급물고기가 된다
 
△장선희 시인: 2012년 웹진시인광장 등단, 시집'크리스털 사막', 제5회 월명문학상 수상.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오늘은 이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자. 장선희 시인이 돌리는 수천억 물방울 바퀴를 타고 굽이굽이 달려보자. 급정거하는 법 없이 역마다 구름을 태워 가며. 바람을 태워 가며. 올 한해 상처받은 마음들 다 싣고 출렁출렁 달려보자. 나의 유년도 태우고, 당신의 유년도 태우고. 산그늘 성큼성큼 내려앉는 가을 끝자락을 보러 가자. 저물녘 그 강이 잠깐 하염없어진다는 것, 그럴 땐 물소리가 무한히 서늘해진다는 것 몰라도 좋아. 강은 계절을 돌리고 역사를 돌린다. 오늘은 그 물방울 바퀴가 실어 나른 시간은 잠시 잊자. 발아래로 쏙쏙 빠져나가던 젖은 모래를 기억하면 되는 일. 그 속에 숨구멍 열어놓고 살아가던 재첩의 비밀을 간직하면 그뿐. 어디선가 천년학 한 마리 날아오려나.


 기온이 내려간다는 예보에 겨울을 채비하던 마음이 이 시에서 봄을 본다. 따뜻한 차 한 잔 선물 받은 느낌이다. 이 특급열차는 언제나 봄 쪽으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섬진강에서 '섬'은 두꺼비(蟾)를 뜻하고 섬진은 두꺼비 나루라는 뜻이다. 고려 우왕 때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섬진나루에 몰려와 울부짖어 왜구를 물리쳤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은혜 입은 처녀를 폭우로부터 구해준 두꺼비, 무사히 강물을 건너게 해 준 두꺼비 등 두꺼비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강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원래 그 강은 모래가람 다사강(多沙江)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내가 유년에 보고 자란 그 강은 은빛 모래가 정말이지 눈이 부셨다. 세상의 모든 강이 다 그리 아름다운 줄만 알았던 그때를 이 시에서 만나는 아침이다. 왜 "창밖이 물속이고 물속이 창밖인" 강인지 달려보면 안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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