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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의 눈

김시민

콧물이 나고 코가 막혀서
코를 풀고 화장지를 마구 버렸더니
방바닥에 하얀 눈처럼 쌓였어.

동생이 보면 
겨울 왕국 안나가 되어
눈사람 만들자! 하겠지.

생각만 해도 즐거운 겨울 왕국에서
깔깔거리며 놀다 보니
화장지 한 통을 다 뽑아 눈처럼 뿌렸어.

엄마 아빠가 보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하겠지

눈꽃 세상 속에서
뛰고 구르고 뒹굴다가
눈을 이불처럼 덮고 눈 천사를 만드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니, 이게 무슨 꼴이래!
엄마 아빠의 눈이 동그랬졌어.

 

△김시민 1994년 부산MBC 아동문학 대상. 2012서덕출 문학상 수상. 2020아르코창작기금 수혜. 동시집 '아빠 얼굴이 더 빨갛다' '자동차 아래 고양이' '별표 다섯개''공부 뷔페''엄마를 딱 마주쳤다''금메달이 뜬다'

 

방에 쌓인 휴지 더미가 눈이라니, 아이의 상상은 어디까지 일까? 눈은 자꾸만 쌓이고 신난 행복한 동심은 겨울왕국 안나를 부르고 코도 삐뚤, 입도 삐뚤한 눈사람을 만들려고 한다. 아마도 동생과 신나게 눈위를 뒹굴었으리라. 그 사이 눈은 하염없이 오고 화장지 한통이 비어 하늘에선 펄펄 눈이 내리고. 동심이 풀어놓은 시간은 금세 눈이 하얗게 덮은 세상이 되었겠지. '엄마 아빠가 보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하겠지'라는 신선한 상상이 재미있다. 이미 방안은 휴지로 엉망인데, 시인의 시선은 아이를 즐거운 시간으로 끌고 간다. 동심은 더 없이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아이의 신나는 시간을 멈추게 하는 엄마 아빠의 등장으로 더 극적인 순간의 놀라움이 동시다운 힘 아닐까. 엄마·아빠 출현에 아이의 눈 놀이는 아마도 끝이 나겠지만 한참 동안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오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어쩜 어른들이 생각할 수 없는 선물을 기다리며 코막힘은 잊고 있지나 않을까. 

 

 그래서 스스로 콧물 같은 것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아이가 되어가는지 모른다. 어른들이 그렇게 커 왔던 것처럼. 그러나 결코 어른들의 상상은 휴지가 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12월, 눈을 기다린다.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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