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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구정이라 고향 집에 들렀다. 팔순의 어머니는 삼 형제의 모습만 보아도 흐뭇하신지 우리 주위만 어슬렁거린다. 마당을 쓸고 채전에 떨어진 낙엽을 끌어모은다. 영하의 매서운 추위에도 마음은 연신 달뜨서 이것저것 시키신다. 그러다 창고 문을 여니 지난가을 추수하여 쟁여둔 벼 자루가 가득이다. 그런데 쥐가 구멍을 뚫어 낱알이 바닥에 가득 흩어져 있다. 어머니도 무안했던지 아무리 덫을 놓고, 약을 놓아도 소용없단다. 요즘 쥐는 고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웃는다. 바닥을 쓸고 자루를 옮겨 놓았다. 사람에게만 음식이 풍요겠나. 고양이도 먹는 것에 사활을 걸지 않아도 될 만큼 풍족한 세상이 되었으니, 야생의 본능을 잊고 비대해진 탓도 있으리라.


 초나라 상채(上蔡)에 '이사'(李斯 BC 284~ 208)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군의 하급 관리자로 숙소의 변소에 서식하고 있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고 있다가도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놀라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어느 날 군청의 쌀 창고에 들어가니 거기도 물론 쥐들이 있었다. 그런데 거기 쥐들은 사람과 개를 보아도 도망갈 생각조차 않고 여유롭게 있는 것을 보았다. 


 보통의 사람 같으면 두 곳의 쥐를 보아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지만, 이사는 달랐다.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유능하고 못난 것이 마치 쥐들과 같아서 그 처해 있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로구나!"


 이사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순경(荀卿)을 찾아가 제왕의 통치술을 배웠다. 공부를 마친 이사는 서쪽의 진나라로 들어가 여불위의 식객이 되었으며 후일 왕을 만날 기회까지 얻었다. 그는 서슴지 않고 유세를 펼쳤다. 강한 진나라의 국력과 대왕의 현명함으로 지금 천하를 통일하는 일은 아녀자가 부뚜막을 청소하는 것 만큼 쉽다고 설득을 했다. 마침내 그를 객경으로 삼았다. 그러자 진나라의 고관대작들은 이사의 승승장구가 눈엣가시처럼 보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진나라에서 그를 추방하고 싶었다. 자신들의 출셋길을 막는 타국인인 이사가 좋게 보일 리 없기 때문이다. 


 마침, 한나라의 토목기술자가 들어와 간첩 활동을 하다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 기회를 틈타 이사를 추방하라는 축객령이 내려졌다. 이사는 그리 호락호락 당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상소를 올렸다. "신이 듣기에 땅이 넓어야 산출하는 곡식이 많고 나라가 커야 백성이 많으며 군대가 강해야 병사들은 용감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태산이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큰 산이 되었고, 황하는 한 줄기의 실개천 물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왕은 한 명의 백성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덕을 능히 밝힐 수 있어 사방으로 끝이 없는 땅을 영토로 삼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백성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중국의 최고 명문장 하나를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그들은 이사의 "태산불사토양 고 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 능취기심 (泰山不辭土壤 故 能成基大 河海不擇細流 故 能就基深)"를 말한다고 한다. 


 구구절절 명문장의 글은 진왕의 마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진왕은 그를 승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마침내 천하 통일을 이룩한 진나라 왕은 스스로 진나라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로 진시황제(秦始皇帝)로 칭했다. 


 천하에 흩어진 제후국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진왕의 엄청난 야망 뒤에 있었던 이사를 통해 지금의 중국을 만드는 초석을 놓았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사는 군현제,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하고 도로를 정비했으며 그 정책들이 지금도 쓰이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사는 자신이 말한 명문장 속에 온유와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아량은 없었던가 보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해 많은 유학자를 생매장했다는 것은, 그의 야욕 앞에서는 어떤 것도 거침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의 집으로 들어오는 뇌물의 수레가 수천에 달할 정도에 이르자 이사는 탄식했다. "아아! 스승이신 순경께서 사물이 너무 성하게 되는 일을 금하셨는데, 지금 신하 된 자 중에서 나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고, 부귀와 영화는 더 오를 데가 없는 곳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사물의 발전이 극점에 오르게 되면 다시 쇠락하기 마련이라 내가 돌아갈 곳이 어디인 줄 모르겠다!"


 그렇다. 모든 만물은 흥망성쇠가 있는데 그 마지막을 알고도 고치지 않았으니 어쩌랴. 죽음 직전 그가 아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고향 상채로 돌아가 누렁이를 데리고 동문 밖으로 나가 날쌘 토끼를 사냥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구나." 신하로는 최고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가장 평범한 토끼 사냥 한 번 못하고 죽음에 몰린 그의 마지막 말이 참 많은 것을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생이 항상 최고점에 머무를 수 없고, 그 부귀영화가 무구한 줄 알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게 죽음이다. 


 다시 음력 정월 초하루를 맞이한 지금, 스스로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잘 파악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한 줌의 흙과 한 줄기의 물'도 포용하고 넉넉히 품을 줄 아는 심성을 재정비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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