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울주군에서 사육 중이던 곰이 주인 부부를 습격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뜻밖의 사건을 언론은 앞다퉈 보도했고, 그 과정에서 '불법·학대 등' 온갖 추측과 루머성 이야기가 난무했다. 인터넷 댓글에는 곰을 사육한 행위에 대한 맹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동안 울산지역을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질 무렵 우연찮게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담담하게 들려준 '곰 이야기'는 세간에 떠돌았던 풍문과는 사뭇 달랐다. 편집자 |
# 사육장 운영 지인 "문제없다"며 어미 잃고 시름시름 앓던 세 마리 부탁
고인이 된 이규진 씨가 반달곰 새끼 3마리를 집으로 데려온 시기는 2018년 7월이었다.
곰 사육장을 운영하던 지인의 간곡한 부탁에서였다. 어미 곰이 새끼들을 낳고 곧바로 죽어 시름시름 앓고 있던 아기곰 3마리였다. 당시 이 씨는 곰을 데려다 키우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물었지만, 지인은 "문제가 전혀 없다"고 자신했다.
# 직접 씻기고 먹이고 잠도 침대에서 함께 자는 등 지극정성
처음에는 아파트로 데려왔다. 이름은 '삼손이(2마리의 이름은 유족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였다.
직접 씻기고 안아서 우유병을 물렸다. 돼지 농장을 직접 운영하고 조랑말과 닭, 염소 등을 키우던 이 씨는 항생제 주사를 손수 놓기도 했다. 곰들은 이 씨의 침대에서 함께 잠들고, 깨어나면서 건강을 되찾고 무럭무럭 자랐다.
# 새 보금자리 10만평 방목장서 나무 오르고 뛰놀며 자유로운 생활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는 몸집이 되자 곰들은 이 씨의 농장으로 옮겨졌다.
전기 목책이 둘러쳐진 10만평 규모의 염소 방목장이 곰들의 새로운 보금자리, 놀이터가 됐다. 삼손이 곰 형제는 농장의 마스코트였다. 방목장을 뛰어다니며 나무에 오르고, 땅굴을 파고, 개·염소와 힘 자랑을 했다.
유족이 제공한 동영상을 보면, 삼손이는 유난히 사람을 좋아해 졸졸 따라다니고 다리를 끌어안는다. 관련 사실을 종합하면 이규진 씨는 곰들을 키우면서 웅담이나 쓸개즙을 채취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 첫 탈출 후 격리시설 없는 점 등 불법사육장 문제 결국 법정에
평화로웠던 이규진 씨의 덕원농장은 2021년 5월 어느 날 호기심이 충만해진 곰들이 전기 목책을 끊고 첫 '가출'을 감행하면서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농장을 탈출해 인근 농가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주민이 신고했고, 울산은 울주군 야산에 반달곰이 출몰했다는 사실로 발칵 뒤집혔다.
당시 각 언론사 사진기자들도 총출동했는데 당시 현장에서 곰들을 만난 한 사진기자는 "곰들이 마치 강아지처럼 사람을 쫓아다니고, 귀여웠다"는 분위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다행히 마취총을 맞고 다시 농장으로 돌려보내졌지만 그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지는 않았다.
이 씨가 불법으로 곰을 사육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원이 야생생물보호및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구형한 것이었다. 국제 멸종위기종을 사육하려면 적정한 사육시설을 갖추고 환경부장관에게 등록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 씨의 염소 방목장은 곰 형제들에게 최적의 서식 환경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등록을 하지 않은 엄연한 불법이었다. 관련법의 '적정한 사육시설'은 전기목책이 둘러쳐진 10만평의 염소 방목장 대신 충분한 격리가 가능한 사육장을 의미했다.
# 판결일에도 먹이 챙겨주려다 갇힌 채 스트레스 높아진 곰에 참변
3년 가까이 풀어 키운 곰들을 가둬야 했던 이 씨는 항소했다. 방목장을 사육시설로 등록할 테니 곰들을 방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취지를 포함한 항소였다.
자신이 아픈 새끼 곰을 데려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자연과 닮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한 점을 호소했다.
애초에 곰을 맡긴 지인에게 곰들을 다시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연락을 취해봤지만, 지인은 구속된 상태였다.
2022년 12월 8일 법원은 이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사육장에 가둬진 채 배가 고플 곰들에게 먹이를 갖다주려다 참변을 당한 그날이었다. 연락이 끊긴 이 씨를 찾아 농장을 찾은 그의 부인도 참변을 피하지 못했다. 설사가 멈추지 않았던 아픈 곰 형제를 돌본 이 씨의 사연은 결국 비극이 됐다.
# 가족 "법 몰랐던 점 잘못이라지만 상황도 고려않고 가두라고만 해"
기자와 만난 이 씨의 가족은 "저희 부모님은 평생 동물을 사랑하셨고, 동물이 행복한 환경을 위해 해당 농장에서는 자연방목으로만 동물을 사육하셨다"고 전했다.
"곰에 대한 법률이나 행정규제를 모르고 데려온 것은 잘못이라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법 잣대를 들이대며 웅담과 쓸개 채취업자와 동일하게 처벌하고, 곰을 가두라고만 해 우리에 갇힌 곰이 스트레스로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서도 담담한 심정을 풀어냈다.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며 아버지가 사랑하며 키운 곰 사진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직접 살리고 키운 곰에게 공격당해 죽음을 맞은 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합당한 대책도 없이 무조건 가두라고만 명령한 관련 부처의 잘못은 아닌지…" 김지혁기자 uskjh@·사진= 이규진 씨 가족 제공
※기사와 관련해 故 이규진 씨의 불법적 행위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으며, 유족의 증언과 판결문 등 관련 서류, 사진과 동영상을 토대로 작성된 기사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