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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도장(粧刀匠·울산광역시 중구 서동 518)은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이다. 지정당시 기능보유자는 임원중(작고)이다. 17세 되던 1946년부터 16년간 사촌형 임인출로부터 장도와 은삼동구리의 제작기술을 전수받아 평생을 이 일에 전념해왔다. 흰백동 바탕에 은은한 순은(純銀)과 오동(烏銅)으로 상감기법의 문양을 넣는 기술이 뛰어났다. 2004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 임동훈(장도장 기능전수조교)이 가업을 이어받았다.
 울산은 예로부터 수공업이 발달했다. 삼한시대부터 유명한 철의 생산지요, 조선시대에는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이 있어 무기 등 군수품 생산이 활발했다. 때문에 우수한 금속장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은장도의 경우 병영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조선시대 군대가 주둔했던 관계로 병영에는 많은 무기가 소요되었고 자연스럽게 무기를 만드는 금속공업이 발달하였던 것이다. 그 후 병영이 파하면서 금속공업에 종사하던 사람과 할일이 줄어들었다. 그 틈새에서 시작한 것이 담뱃대와 은장도의 제작이었다. 덕분에 병영은 담뱃대와 은장도의 본고장이라 할 만큼 명산지가 되었다.
 장도는 장식용으로 평복에 차는 노리개의 일종이다. 남녀가 장도를 차는 풍습은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한 뒤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널리 일반화 되었다. 여인에게 있어 장도는 장식용뿐만 아니라 호신용으로 사용되었다.
 장도의 명칭은 칼집의 재료와 형태 및 장식에 따라 붙여졌다. 칼자루와  칼집의 표면을 은으로 장식한 것은 은장도, 산호를 이용하면 산호은장도라 불렀다. 일반적으로 먹감나무, 대추나무, 화류목 등 목재를 쓰며 소뼈를 쓰기도 한다. 장식으로는 대체로 백동이나 은을 썼다.
 장도의 종류는 외적형태에 따라 칼자루와 칼집이 네모진 것은 '사모장도', 그 양단을 직각으로 끊어 하메기 장식을 붙이거나 젓가락을 부착한 것은 '첨사도', 원통의 칼자루와 칼집의 양단을 둥글게 깍은 것은 '평맞배기', 그 양단에 혹을 대칭으로 붙여 을자(乙字) 모양을 한 것은 '을자맞배기', 여덟모로 깍은 것은 '모재비칼', 을자(乙字)에 갖은 장식을 붙이면 '갖은을자도'라 부르고 있다. 김 덕 균(전 울산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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