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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승병을 훈련시켰던 절로 알려진 신흥사는 울산 유일의 호국사찰로 절의 위치에서 부터 천혜의 요새임을 알수 있다.

 

 겨울 산의 매력과 겨울 바다의 낭만,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역사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울산 북구 강동일대가 그렇다. 그중에서 요즘 나는 하늘에 닿은 높은 산 위에 있는 절을 찾아가기를 좋아한다. 절에서 바라보는 시야가 그야말로 일망무제고 주위 모든 것들이 이 절을 향해 고개 숙인 듯한 그런 풍경 보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마냥 그런 절만을 찾아다닐 수만은 없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탁 트인 시야는 아니더라도 높은 곳에 위치해 세속과는 동떨어진 듯하고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는 그런 절을 좋아한다.

 

   #산을 넘든지 바다를 거쳐 오르든지


 

 운 좋게도 울산 근교에 그런 곳이 있다. 바로 울산 북구에 있는 신흥사가 그렇다.
 그런데 신흥사로 가는 길에 꼭 들릴 곳이 있다. 정자바다와 정자항이다. 우리에게 바다는 언제나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다. 그 바다를 보기위해 무룡산을 넘는다. 정자항에 들어서면 선착장의 어선, 줄지어 늘어선 횟집, 어느 항구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추운 날씨속에 옷깃을 여미며 만끽하는 겨울바다의 낭만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까? 바다를 감상하며 줄줄이 늘어선 카페들을 지나면 정자바다의 해안선을 감상할 수 있는 신명휴게소. 휴게소 테라스에 서면 정자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나누며 내려다보는 정자 겨울바다는 일품이다.


 이제 신흥사로 가기 위해 차를 돌려 신명 군부대 앞 다리에서 신흥사 표지판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 황금색으로 물들어 고개 숙인 논들이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을 연출한다.

 곳곳에 보이는 신흥사 표지판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면 산사의 정취가 조금씩 느껴진다. 길 좌우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길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 추운 날씨속에 작은 흔들림도 없이 얼어붙은 듯하다.
 산 중턱까지 올라가면 산사의 입구가 나타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사 쪽을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가파른 봉우리가 우뚝 솟았다.
 신흥사가 자리한 산은 함월산이다. 경주 기림사가 있는 곳이 함월산인데 그곳과 산이름이 같다. 달을 머금었다는 산, 그 산의 정상 아래에 신흥사가 있다. 높은 곳이지만 시야는 탁 트인 게 아니라 산의 능선이 휘돌아 절을 에워싸고 있다.

 

   #임진왜란때 울산 유일 승군 동원


 

 신라시대 때 창건된 신흥사는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신흥사는 635년(선덕왕 4) 3월에 명랑조사가 창건했는데 처음엔 건흥사(建興寺)라고 불렸다. 명랑조사는 중국의 당나라가 신라를 공격하려할 때 그 위기를 넘기며 679년에 경주에 사천왕사를 창건한 분이다. 아마도 그런 호국적 성향이 이 신흥사에도 이어져 신라가 678년 만리성을 쌓는 동안 승병 100여명이 이 절에 머물면서 무술을 닦았다는 이야기나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도 울산지역에선 유일하게 승군을 동원한 사실로 나타났으리라.
 실제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울산이 함락되었을 때 지운스님을 비롯한 승병 100여명이 기박산성의 의병과 합세했는데, 이때 절에서 군량미 300석을 제공했다. 그런 의승군의 활약이 신흥사의 힘이다. 산사로 들어서기 전 수백년 역사의 아픔을 잠시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도 좋을 듯하다.


 주차장에서 신흥사로 올라가는 계단이 급상승한다. 올라가면서 차분히 계단 수를 헤아려보니 72개다. 오를 때보다 내려설 때가 더 위험해 보인다. 정신을 가다듬지 않고서는 다치기 십상이다. 계단을 올라서니 루가 나온다. 만세루다. 정면에 '함월산신흥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그리고 정면 3칸인데 오른쪽 한 칸은 기념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루 밑을 통과하니 최근에 지어진 대웅전이 나온다. 양쪽으로 적묵당과 종무소가 있다. 절의 분위기는 대웅전처럼 깔끔하다.
 경내 한켠에 있는 샘터에는 쉬지 않고 샘물이 흘러내린다. 그 샘물을 떠서 잠시 바라보다 한 모금 적시면 가슴깊이 묻어 두었던 시름까지 한숨에 씻어 내릴 듯 맑고 시원하다.
 우선은 급한 대로 목을 축이고 예불이 한창 진행 중인 대웅전을 피해 응진전으로 간다. 대웅전 옆 응진전은 원래 신흥사의 대웅전으로 사용하던 전각이다. 1646년 경상좌병마절도사 이급(李伋)에 의해 나라의 도움을 받아 중창했다고 한다.

 

   #기박산성의 전설은 덤으로


 

 다시 대웅전을 지나 대웅전 오른쪽 대나무 숲 사이 계단을 오른다. 삼성각으로 가는 길, 길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숲으로 인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이 계단길 만한 크기로 보인다. 삼성각도 숲에 에워싸였다. 건물밖에 사람이 설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다.
 신흥사는 1686년에도 화재로 소실됐는데 부산의 범어사처럼 사찰계를 조직해 절의 중창을 도모하곤 했다고 하는데 1904년에는 지장계원의 도움으로 후불탱을 조성했다고 한다.
 신흥사에서 내려서는 길, 계단이 더욱 가파른데 정신은 오히려 맑고 마음은 한결 가볍다. 신흥사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듯 푸름이 느껴지는데, 그 산사 가득한 푸름이 내안에도 들어선 듯 하다.


 다시 차에 올라 산사의 전경을 감상하며 돌아서면 운치 있는 조그마한 다리를 만난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 보이는 이 다리를 지나면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진다. 다리를 건너 10여분 올라서면 기령이다. 기령의 옛 이름은 기박제인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깃발이 바람에 날려 와 이곳에 꽂혔다 해 '기박'이라 하고 이를 신성하게 생각해 산성을 쌓았다고 한다. 이곳에 산성이 있었던 이유는 동해바다와 태화강이 한눈에 들어와 왜적의 침입을 빨리 파악할 수 있고 경주로 통하는 관문성과 맞닿아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갈 때는 기박산성에 얽힌 전설 같은 재미있는 얘기를 알고 간다면 교육적으로도 좋을 듯하다.


 기박제에서 내려다보는 울산의 시가지 전경 또한 일품이다. 돌아가는 길에 노을이 지는 순간을 만난다면 그것은 보너스다.
 신흥사는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고즈넉함과 청명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바다가 그리운 사람과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조용히 찾아와 심신을 쉬게 할 수 있는 곳이다. 글=최재필기자 uscjp@ 사진=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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