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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도사·영축산 속한 신평마을
   통도문화관광마을추진위 조직
   석탄일 열흘간 1천 연등 불밝혀
   소망 기원·관광객 볼거리 제공

 

 12일 오후 7시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신평마을에 있는 한 전통찻집 마당.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하나 둘 씩 모여든다. 잔치가 벌어질 모양이다. 해는 이미 서산너머로 지고, 하늘에는 어둠이 스며든다. 찻집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과 마당에는 더욱 빛이 난다. 빛은 바람에 흔들리나 꺼지지 않는다. '등(燈)'이 불빛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등 하나하나에는 마을사람들 개개인의 바람이 담겼다. 사람들의 바람은 제각기 다르지만 불빛으로 뭉쳐져 어느새 마을을 밝힌다.


 일상을 살아가며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기원'으로 응축돼 등불로 타오른다.

 하북면 순지리 신평마을은 우리나라 최고의 사찰인 통도사가 있는 곳이다. 오는 21일 석가탄신일을 일주일 앞두고 전국이 거리 곳곳의 '연등(燃燈)'으로 밝게 빛난다. 연등의 모양은 대개 불교의 상징인 연꽃 봉오리를 연상케 한다. 석가탄신일이 되면 일렬로 줄지어진 연등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것을 단지 종교적인 상징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연등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활성화하기 이전인 삼국시대부터 매년 정월 보름에 국가적 차원으로 열린 행사였다. 전사자들을 위로하거나 국가의 번영과 태평성대, 가정의 평안을 기원했다.


 신평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11일부터 올해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통도사 뿐 아니라 마을 전체를 연등으로 밝히기로 했다. 주민들은 통도사와 영축산을 끼고 있는 신평마을을 문화관광지구로 만들고자 '통도문화관광마을추진위원회'를 조직했다. 이곳이 고향인 김진동(49) 위원장은 "6개월 전부터 뜻있는 마을 주민 160여명과 함께 나무와 닥종이를 이용해 연등 1,000개를 만들었다"며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행사라 미흡한 점이 많지만 마을 주민들과 협력해 신평을, 좀 더 넓게는 하북면 전체를 문화관광지구로 만드는 첫 걸음을 뗐다"고 말한다.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 집 모양, 큰 정사각형 모양 등. 나무로 만든 등의 모습은 제각기 다양하다. 종이에는 촛불의 빛을 노래한 시,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와 같은 개인의 소망, '내 사랑 신평'과 같은 고향사랑 등이 붓글씨로 적혀 있다. 등은 지난 12일부터 21일 석가탄신일까지 열흘 간 저녁시간(해질 무렵부터 자정까지) 때마다 켜둘 예정이다. 등은 잔치가 열리는 찻집 돌담 너머 마을 인도를 따라 통도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등을 입구에 걸어 놓은 점포도 있다. 경인년을 맞아 정사각형 판 모양처럼 생긴 등에 호랑이 그림을 그려놓은 것도 있다. 등은 개인의 소망을 담은 상징과 동시에 통도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하나의 볼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일곱 살 난 딸과 함께 이번 연등행사에 참여한 한 마을 주민은 "석가탄신일이라 이맘때쯤이면 통도사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데 절 뿐 아니라 마을까지 연등으로 꾸며 볼 거리를 하나라도 더 주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그의 딸 현지 양은 종이에 반사 돼 비치는 불빛에 뭐가 그리 좋은지 나무 등을 쓰다듬으며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등의 몸체를 만들고 닥종이 위에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등에 초를 고정시키고 불을 붙인다. 촛불이 등불이 되는 순간, 내 앞만 비추던 빛은 어느 새 모두를 비추고 있다. 이처럼 신평마을의 연등들도 마을 주민들 각자의 것이자 모두를 밝히는 하나의 불덩어리다.


 김 위원장은 "연등회는 원래 가가호호(家家戶戶)"라고 말한다. 형광등과 네온사인이 없던 과거에는 밤이 되면 '집집마다' 등불을 켰다. 안으로는 우리 집 마당을 밝혀주고 밖으로는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을 위함이었다. 이제는 기념일이나 행사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등불을 신평마을에서는 다시 집 앞에다 걸고자 한다. 앞으로 이곳 사람들은 매년 돌아오는 석가탄신일 열흘 전부터 마을의 밤을 등불로 밝힐 계획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말한다. 그 어느 때보다 가족, 부모, 스승 등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좀 더 돌아보고 아껴주고 챙겨줄 수 있는 '기념일'이 많기 때문이다. 버튼 하나 까딱하면 불이 켜지고 꺼지는 오늘날이다. 가끔씩 어둠 속에서 초 하나를 종이컵에 끼워 성냥불을 붙여 팔을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자. 모두를 환히 비추는 등불은 다름 아닌 '나' 한 사람이니까.  글=윤수은기자 usyse@ 사진=유은경기자 usy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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