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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전리각석'으로 가는 길목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대현마을 당산마당에 서로 다른 팽나무와 홰나무가 한 나무인양 아랫 부분의 줄기가 합쳐져 자라고 있다. 김정훈기자 idacoya@ulsanpress.net

국보 제147호 '천전리각석'으로 가는 길목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대현마을에는 서로 다른 팽나무와 홰나무가 한 나무인양 아랫 부분의 줄기가 합쳐져 자라고 있다. 울산생명의숲이 지난 2003년 11월에 펴낸 '울산의 노거수' 책에는 그 나무를 합혼수(合婚樹)라고 소개하고 있다. 합혼수라고 하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합혼수라는 나무는 따로 있다. 요즘 산길을 가거나 고택의 정원에서 만날 수 있는 연분홍색 꽃을 피운 자귀나무를 합혼수라고 한다. 합환목(合歡木)이라고도, 또는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라고도 한다. 예부터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우리 선조들은 부부금실을 위해 자귀나무를 심었다. 밤이 되거나 흐린 날에는 잎이 서로 겹쳐지는데, 그 모습이 부부가 마치 합혼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맑은 날에는 잎이 날개를 활짝 펼친 공작과 같아서 민간에서는 부부금실이나 신혼부부를 위해 자귀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자귀나무 잎은 달여 차로 마시기도 하는데, 부부가 늘 마시면 금실이 좋아져 절대 이혼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자귀나무를 애정목(愛情木)이라 부른다. 연분홍색 꽃은 6월이면 피어나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7월에 만발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 위에 소담스런 분홍색 눈이 가득 쌓여 있는 것 같다. 꽃잎이 온통 연분홍으로 물들어 있어서 영어 이름이 비단나무(Silk Tree)다.


대현마을의 팽나무와 홰나무처럼 밑줄기가 하나로 합쳐진 나무를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한다. 연리(連理)란 가까이 있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이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라 한다.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비유해서 사랑나무라고 부른다.
 연리(連理)가 되는 과정은 이렇다. 가까이 있는 두 나무의 줄기나 가지는 자라는 동안 지름이 점점 굵어져 맞닿게 된다. 해마다 각각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로를 심하게 압박한다. 맞닿은 부분의 껍질이 압력을 견디지 못해서 파괴되거나 안쪽으로 밀리면 맨살이 그대로 맞부딪친다.

   
드넓게 퍼져나간 합혼수의 가지가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두 나무간 사랑의 스킨십이 이뤄지면서 물리적인 맞닿음이 아니라 생물학적 결합을 준비한다. 지름생장의 근원인 부름켜가 조금씩 이어지고, 양분을 공급하는 유세포(柔細胞)가 섞인다. 그리고 나머지 보통 세포들이 함께 살아갈 공간을 만들면,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연리의 대장정이 끝난다.
 그러나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종류가 다른 나무는 수백년을 같이 붙어 있어도 그냥 맞대고 있을 따름이지, 결코 연리가 되지 않는다. 세포의 종류나 배열이 서로 달라 부름켜가 연결될 수 없으며, 양분교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나무는 엄밀히 말해서 연리목이 아니다.
 연리란 같은 종(種)의 나무에서만 일어나는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하나가 된 현상이다. 종류가 서로 다른 나무는 물리적으로는 서로 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즉 세포가 서로 붙어 하나가 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연리목이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연리목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연리목이 아니다.
 대현마을의 팽나무와 홰나무도 실질적으로 연리목이라고 일컬을 수가 없음이다. 그게 대수랴. 그같은 과학적인 근거가 수백년을 내려온 주민정서에 상관할 바가 아니다. 명칭이야 합혼수이면 어떻고, 연리목이면 어떠랴. 두 나무가 한 몸인양 오랜 기간을 서로를 보듬어 안고 함께 살갑게 살아왔으면 바로 합혼수요, 연리목이 아닌가.
 대현마을의 팽나무와 홰나무 합혼수를 만나려면 울산에서 언양을 거쳐 밀양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탄다. 언양을 지나 봉계와 경주방면 35번 국도로 바꿔 탄다. 반구대암각화 길목 진현마을을 지나면 오른쪽에 천전리각석 안내판이 나온다. 그곳으로 접어들면 바로 마주치는 마을이 대현마을이다. 천전리각석으로 이어지는 새로 난 포장도로를 타고 500여m 가량 들어가면 경로당을 만난다. 근처에 합혼수와 당산목(堂山木) 서어나무로 이뤄진 당산마당이 있다.

 

   
팽나무와 홰나무가 한 나무인양 아랫 부분의 줄기가 합쳐져 자라고 있다.

 당산마당은 당산목 서어나무 세 그루와 합혼수로 이뤄져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눈에 확 띈다. 마을 한가운데 쯤에 있는데다, 오랜 연륜 탓에 그 나무들을 쫓을만한 키와 몸통을 갖춘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푸르름 또한 마을에 청신한 기운을 감돌게 하고 있다. 요즘 같은 폭염에야 그만한 것을 찾기가 쉽잖다. 쉼터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노인들의 사랑방인 셈이다.
 50여평 남짓한 당산마당 중앙에는 당산목 서어나무가 자라고 있다. 콘크리트로 단을 만들어 경계를 지었다. 합혼수는 서어나무 뒤편 북서쪽에 있다. 울주군이 세운 노거수 안내판에는 서어나무와 합혼수를 구분않고 기록해 놓았다. '노거수 지정일 2000년 5월3일. 수종(樹種) 팽나무·서어나무·홰나무. 수고(樹高) 15~20m. 수령(樹齡) 300~400년. 나무둘레 1~1.4m'로 돼 있다.
당산목 서어나무와 합혼수를 구분하지 않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너무나 무성의하다. 나무의 키와 나이가 어느 나무의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울산의 다른 곳의 노거수 안내판도 내용이 부실하기 짝이 없지만, 울산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합혼수에 대해 별다른 내용이 없는 점이 아쉽다. 노거수도 귀중한 문화재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울주군의 문화재행정이 안타깝다.
 울산생명의숲이 펴낸 '울산의 노거수'에는 합혼수에 대해 '추정수령 100~150년. 수고(樹高) 10m. 수관폭(樹冠幅) 15.6m. 가슴높이 둘레 2.96m. 뿌리부분 둘레 3.94m. 용도 정자나무'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합혼수 키는 최소한 20m는 넘어 보인다. 남동쪽 홰나무와 북서쪽 팽나무가 지표면에서부터 4m까지 마치 한 나무인양 비비 꼬였다. 그곳까지의 나무껍질로도 두 나무가 합쳐져 한몸을 이뤘다는 사실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미리 합혼수라는 사실을 알고 갔는데도 말이다. 서로 다른 나뭇잎을 보고서야 확연하게 알 수가 있었다.
 팽나무는 4m 지점에서 북쪽으로 두 개의 큰 가지를 내놓은 뒤에 여러 개의 작은 가지를 내뻗었다. 옆집 창고 위를 뒤덮고 있다. 팽나무에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홰나무도 역시 같은 지점에서 두 개의 큰 줄기를 내놓은 뒤에 수많은 작은 가지를 뻗었다. 옆집의 슬라브 지붕을 온통 덮었다. 그런데도 바로 곁의 당산목 서어나무쪽으로는 전혀 가지를 뻗지 않고, 곧장 치솟은 것이 신기하다.
 당산마당에서 쉬고 있던 안정이 할머니(86)는 경주 산내에서 20살에 대현마을에 시집왔다고 했다. 벌써 66년 전의 일이다. 당시 팽나무와 홰나무는 어른 팔뚝 굵기 정도에 서로 떨어져 있었다. 서너 해 뒤부터 조금씩 붙기 시작해서 종내에는 한몸인 듯 합쳐져 마을사람들이 결혼해서 함께 사는 나무라고 몹시도 신기하게 여겼다고 했다.
당산목 서어나무는 앞쪽에 남북에 걸쳐 노거수(老巨樹) 두 그루가, 뒤편에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나눠져 있다. 어미 서어나무가 죽고, 그 아래에서 자라던 새끼나무가 커서 노거수로 성장했다고 한다. '울산의 노거수'에는 두 노거수 서어나무에 대해 '추정수령 150-200년. 수고는 각각 10.5m. 수관폭은 각각 19.4m. 가슴높이 둘레 1.05m~1.93m. 뿌리부분 둘레 2.65m와 2.8m'로 적고 있다.
 아무 것도 가로막지 않은 동쪽 정면에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서어나무는 세 나무가 마치 한 나무를 이뤘다. 역(逆)원추형이다. 덩두렷하게 떠오르는 보름달을 연상케 한다. 팽나무와 홰나무 합혼수도 더욱 푸른 모습이다.

 

   
합혼수 옆으로 노거수 안내판이 보인다.


 푸른 그늘에 푸른 바람이 인다. 한낮 땡볕이 비켜서자 당산마당에 마을 노인들이 모여든다. 푸른 그늘이 더욱 짙어진다. 때 되면 무더위쯤이야 물러나게 마련이잖은가. 나그네의 발길이 가볍다. 칠월은 그렇게 저물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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