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노동자들과 울산시민의 사랑을 받은 중구 구 교통 목살거리. 장춘로 개설과 재개발 구역 지정으로 지정되면서 옛날의 명성이 많이 퇴색했지만 그 전통과 명성은 여전하다.

 

울산의 '먹을거리'하면 '고래고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교동 목살거리'도 전국적으로 꽤 알려져있다. 인터넷의 맛집 추천 사이트에서도 울산에 가면 '목살거리'에 가보라는 글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전통과 명성을 가진 '거리'다.
 중구 성남동 국민은행에서 북쪽으로 도로를 타고 조금 들어가면 넓은 도로 양편에 돼지목살구이 간판을 단 음식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노동자들과 울산 시민의 사랑을 받은 교동 목살거리는 장춘로가 생기고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옛날의 명성이 많이 퇴색했다.

교동 목살거리는 지난 1984년 '원조 목살구이(현 참숯화로 본가 위치)'와 '교동 목살구이'가 생기면서 만들어졌다.
 지난 1970년 지금은 작고한 박 모씨(원조 목살구이 대표)가 우정동에 있던 소바우 우시장 도축장에 근무를 하며 돼지고기 도축 후 버려지던 내장, '간받이(갈매기살)' 등을 중앙시장 할머니들에게 납품을 했다.
 그러나 점차 시장 내 식품위생분야 단속반의 활동이 강화되면서 납품을 하지 못하게 됐고, 납품을 하지 못해 가져온 고기를 이웃과 연탄 화덕에 구워먹었더니 반응이 좋아 식당을 운영하게 됐다.
 교동 목살구이를 운영했던 박이석(현 태화루숯불목살구이 대표)씨는 당시 도축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연탄 화덕에 석쇠를 얹어 간받이살을 왕소금에 구워 즐기는 것을 눈여겨 봤다가 지난 1985년 가게를 열고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간받이살이 버려지던 부위였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손님들에게 내놓았고, 울산 시민들은 퇴근 길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한 점 소주 한 잔에 그날의 피로를 풀었다.
 이들 두 가게가 울산 전역에 입소문을 타면서 개업 5~6개월 만에 주변에 '목살'이라는 상호를 단 업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1987년에는 '수정목살구이', '언양목살구이', '우정목살구이집'이 들어섰고, 이듬해에는 '왕십리목살구이집', '만수목살구이', '강남목살구이', '강정목살구이', '서울목살구이' 등이 차례차례 생겼다.

 지난 1994년 교동 목살구이 2호점인 '태화루숯불목살구이'가 들어서면서 총 19개의 가게가 성업을 했다.
 당시 중앙시장의 '곰장어골목'과 함께 인근 타 지역까지 소문이 났던 '목살거리'는 곰장어골목보다 후발 주자였음에도 오히려 더 널리 알려졌다.
 교동 목살거리라는 이름에서 사람들은 돼지고기 중 '목살'을 주로 취급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거리에 있는 가게들은 '간받이(갈매기살)'로 불리는 횡경막에 붙어있는 고기를 주 메뉴로 하고 있다.
 

▲ 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정갈한 밑반찬과 함께 부드럽고 구수한 소금구이, 양념구이를 맛볼 수 있는 중구 교동 목살골목.

 그럼에도 '목살구이'라는 상호에 '목살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처음에 목살과 갈매기살을 같이 취급하던 가게에서 버려지던 부위인 갈매기살을 세세히 손님에게 설명하기도 힘들어 목살로 통칭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탄 화덕에 고기를 굽다 개량된 숯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숯불구이로 점차 바뀌어 갔는데, 하루 영업을 마치고 나면 주인이나 종업원 모두가 얼굴에 그을음으로 화장을 해 야간 침투 훈련병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는 자리가 없어 손님을 받지 못할 정도였으며, 계속해서 지펴지는 숯불 때문에 코를 풀면 까만색이 묻어났다.
 1999년 울산 고래고기 특화지역이었던 장생포가 포경이 금지되고, 그 의미가 희석되어 가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 '교동 목살거리'가 10여년이 넘도록 울산 시민과 타 지역민에게도 사랑을 받아 대표음식으로 알려지자 교동 목살거리 번영회는 울산시에 특화거리 지정을 건의했다.

 이러한 번영회의 의견이 받아들여서 이듬해인 2000년 '교동 목살전문거리'라는 특화음식거리 입간판을 설치했다.
 지난 2006년 번영로와 명륜로를 잇는 간선도로인 '장춘로'가 생기고 교동·우정동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교동 목살거리'도 위기를 맞았다.
 울산의 중심지였던 중앙동과 교동으로 연결되는 동선이 장춘로로 인해 단절되고, 재개발 구역 지정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업주나 인구가 점차 늘었기 때문이다.

 목살거리의 명성을 만들어냈던 세입자가 떠나고 건물주나 새로운 영업주가 그 자리를 대신하다보니 그 맛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해 위기가 가속화됐다.
 26년이 넘는 전통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상인회와 중구청은 고기 굽는 방법이나 영업장 단장, 거리 구성, 테마화 등의 여러 가지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재개발사업의 향방에 목살거리의 미래도 달려있어 과거의 명성을 찾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내 가족 음식처럼 정성껏 조리…26년 명성 이어지길"
[박이석 태화루숯불목살구이 대표]

 

"26년이 넘는 '교동 목살거리'의 명성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교동 목살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에 태화루숯불목살구이 대표 박이석(83·사진)씨가 있다.
 박씨는 80년대 초반 도축장 작업자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도축장을 찾았다 연탄불에 구운 '간받이(갈매기살)' 구이를 맛보게 됐다.

 그 맛이 기존에 맛보던 고기맛보다 부드럽고 훨씬 좋아 부탁하려 했던 이야기는 뒤로 하고 버려지던 갈매기살 주문이 가능한 지 알아본 뒤 '교동 목살구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다.
 2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교동 목살거리의 터줏대감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에게는 철칙이 있다.
 바로 '손님 상에 나가는 음식을 내 가족이 먹는 것 같이' 조리하는 것이다.

  "손님 먹는 음식 따로, 주인 먹는 음식 따로면 안 되지요. 재료를 아끼지 않고 정직하게 조리해서 내놓아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손님이 '잘 먹고 갑니다'라는 인사하고 가는 게 제일 기쁩니다. 그 말을 듣기 위해 계속 노력하지요."
 그의 이러한 신념 때문일까. 직접 양념한 콩잎 등 밑반찬이 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정갈하다. 음식에 신경을 많이 쓰는 덕에 서울로 이사를 간 손님도 출장을 오면 꼭 가게에 들릴 정도라고 한다.

 "목살거리에서 소금구이는 맛이 비슷할 지 몰라도 양념구이는 맛이 제각각 입니다. 그게 노하우이지요. 아직도 양념은 제 부인이 직접합니다. 화학조미료를 절대 넣지 않고 재료를 아끼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이 계속해서 찾는 게 아닐까요"
 그는 다같이 잘 되기 위해서 주위 상인들에게도 양념이나 음식에 신경을 쓰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터줏대감답게 도로가 생기고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목살거리의 위기가 가속화되자 그의 고민도 날로 커간다.
 "재개발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간 것은 물론이고 모양새를 새로 갖추고 싶어도 투자를 하지 않게 됩니다. 상인들이나 중구청과 함께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는 있는데 재개발이라는 난제가 있어 해결이 쉽지 않네요. 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26년이 넘는 '교동 목살거리'의 명성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글=이보람기자 usybr@ 사진=유은경기자 usyek@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