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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얇은 그물 하나로 가로막혀 있는 신탄리역 철길. 동두천에서 출발한 통근열차가 신탄리역에서 북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져 있다. 작열하는 8월의 태양 아래서 그물 너머 열차를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은 흐린 날 보다 더 처연하게 다가온다.

 

기차여행은 추억과 설렘이다.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 전해오는 덜컹거림은 각 세포를 통해 심장 깊숙히 파고들어 잊고 있었던 추억을 되살린다. 어린시절 부모님 손잡고 시골 큰 댁에 가던 그 기차의 덜컹거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넉넉한 웃음이 배어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던 그 기차의 덜컹거림에는 장난꾸러기 친구녀석들의 함박웃음이 스며있고, 대학시절 동아리 MT를 떠나던 그 기차의 덜컹거림에는 그야말로 7080의 통키타 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2010년 8월의 중순 어느 날, 철도 중단역인 신탄리역을 찾는다는 생각은 '우리나라 최북단 역'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설렘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신탄리역을 향하는 기차는 또 어떤 추억을 남겨줄까하는 설렘이다.

 

산에서 당일코스로 신탄리역을 다녀온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서둘러 부산역으로 갔다. 오전 9시 부산발 서울행 KTX에 발을 올렸다. 덜컹거림으로 남아있던 추억이 덜컹거림과 오버랩되며 설렘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기적소리 대신 안내방송과 함께 기차는 출발했다. 순간 기대했던 설렘은 찾아오지 않았다. 최첨단의 KTX는 덜컹거림의 설렘을 선사하지 않았다. 어린시절 큰 댁에 가던 기차가 아니었고, 수학여행과 MT를 떠나던 그 기차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씩 산과 들녁을 지날 때마다 들어오는 창밖의 여름날의 풍경은 풍성한 가을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적당한 때마다 군것질거리를 가득 싣고 지나가는 판매 승무원의 "음료수 있어요~"는 소리의 크기가 줄었지만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했다. 마침내 기차여행을 하고 있음이 실감났다.
 3시간이 지나자 서울역에 도착했다. 목적지 신탄리역에 가기 위해서는 소요산행 지하철 1호선을 타고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동두천역에서 갈아타야 한다.

 

   
▲ 고즈넉한 풍경을 간직한 신탄리역. 조그만 간이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이 역사에 가득하다.

동두천~신탄리 잇는 통근열차 1시간 마다 출발

 동두천역에서 신탄리역까지는 한시간에 한번씩 통근열차가 운행된다. 매시각 50분에 동두천발 신탄리행이 출발하고, 매시각 정각에는 신탄리에서 동두천으로 향한다.
 이 노선이 경원선(京元線)이다. 서울과 강원도 원산시를 잇는 길이 223.7km의 경원선은 1914년 개통됐다. 이 철도는 동해안 북부의 풍부한 자원의 개척과 동·서 두 지역의 연락을 목적으로 부설한 것이지만 오늘날 국토 분단으로 용산~신탄리 사이의 89km만 운행되고 있다.


 10년전 8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 경원선 복원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다. 경원선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모스크바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와 연결된다. 또한 경의선과 연결되면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품이 쉽게 수송돼 운송시간은 1/3로 단축되고 물류비는 20∼30%가 절감된다고 한다. 아쉽게도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현재로서는 재논의조차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2시50분, 신탄리행 통근열차가 북쪽으로 출발했다. 기대했던 바다. 통근열차는 기분이 좋을만큼만 덜컹거리며 추억과 설렘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동두천을 출발해 북쪽으로는 기차의 창밖은 온통 산이고, 들에는 추수를 기대하고 있는 파란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1914년 개통된 경원선…분단으로 89㎞만 운행

 통근열차는 이름 그대로 역마다 정차했다. 정차하는 역마다 한폭의 그림이었다. 간이역 풍경. 고즈넉한 모습을 가진 식당에서, 때론 인터넷을 검색하며 보았던 적이 있던 정겨운 간이역이 그대로 드러났다. 소요산역, 초성리역, 한탄강역을 지났다.


 그리고 어느 강 위 철교를 지나기 직전 창밖으로 낯익은 푯말 하나가 스쳐갔다. 한탄강. 강원도 철원군·평강군과 경기도 연천군을 흐르는 강으로 임진강의 지류다. 한탄강은 본래 큰 여울(大灘)에서 이름지어졌지만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여서인지 한(恨) 많고, 탄(歎) 많이 품은 강으로만 느껴진다. 한참을 지났지만 한탄(恨歎) 강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 드라마 속의 처절했던 참상이 겹쳐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도 군부대가 많았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보이는 군인들도 60년이 지나간 전쟁의 화약냄새가 나는듯 했다.


 그리고 통근열차는 계속 달렸다. 전곡역, 연천역, 신망리역, 대광리역을 지났다. 각 역마다 잠깐이라도 머물고 싶은 욕구가 솟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역시 간이역 풍경이다.

 

   
▲ 플랫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돌탑 한 쌍. 쌓아올린 조각돌 하나하나에 하루라도 빨리 북으로 가고 싶은 누군가의 염원이 가득 쌓여 있다.

통일 향한 염원 쌓고 쌓은 '돌탑' 숙연한 마음

 45분여가 지나자 마침내 신탄리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자 마자 보이는 돌탑에 시선이 멈췄다. 3m는 족히 보이는 돌탑 한쌍. 어느 누군가는 저렇게 많은 돌을 쌓으면서 뭔가를 염원했으리라. 북으로 가고 싶은 그들의 소망과 함께 TV를 통해서 보았던 이산가족의 상봉장면이 눈가를 스친다. '이제는 그들도 이 기차를 타고 그들의 가족을 만나야 할텐데. 그날이 빨리 왔으면···.' 자연스레 기원하게 됐다.


랫폼은 정갈하다. 우리나라 최북단 역을 보러온 관광객들은 대부분 역내 이곳저곳을 서성인다.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정돈된 화분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 플랫폼의 이정표 안내판에는 조금전 지나온 '대광리' 방향만 적혀져 있다. 더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왠지 모를 허전함을 안고 플랫폼을 빠져나와 끊어진 철길을 걸었다. 천천히 걸었다. 이 철길을 조금만 걸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모습이 내 눈앞에 나타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5분 정도 걸으니 '철도중단점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적혀있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 더이상 열차가 달리지 않는 철길에 잡초가 무성하다. '철도중단점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적힌 표지판 아래 노부부가 앉아 북녘을 바라보고 있다.

더이상 갈 길 없는 '철도중단점' 아픔 고스란히

 '철도중단점…'이라 써져 있던 그 표지판이 얄밉게 보였다. 그 표지판이 마치 열차길을 막고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표지판 아래에는 '신탄리-원산 131.7km'가 바랜 글씨로 적혀있었다. 분명 길이 있는데도 더이상은 갈수 없다고 되새겨 주고 있었다.
 뒤돌아 나오는 길에 어느 노부부가 철길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북쪽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노부부는 실향민일까?' 국토분단의 현실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내 죽기 전 이 길을 건널 수 있을지 모르겠어. 허허···."
 깊은 눈망울을 간직한 할아버지가 옆을 지나는 젊은이에게 던진 말은 아니었다. 그저 혼잣말을 내뱉었는데 젊은이가 들었을 뿐이다. 함께 자리를 지키던 할머니는 젊은이에게 옥수수를 건넸다.
 옥수수를 받아들고 신탄리역 플랫폼으로 돌아왔다. 할머니가 주신 옥수수를 먹으면 왠지 통일이 빨리 찾아올 것만 같았다. 글·사진=박송근기자 song@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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