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 학성동 가구거리

 

예로부터 우리 어르신들은 집 안에 가구를 들일 때 '손 없는 날'을 잡아서 하란 말씀을 하셨다.
 '손 없는 날'이란 악귀가 없는 날이란 뜻으로, 귀신이나 악귀가 돌아다니지 않아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길한 날을 의미한다. 주로 '손 없는 날'은 이사 또는 혼례, 장사 등의 개업하는 날 등 중요한 행사 날짜를 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가구를 들이는 날도 손 없는 날로 정한 것에서 우리에게 가구는 단순히 그냥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가구를 구매하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아직도 울산사람들이 '가구를 들인다'고 결정하면 자연스레 '학성동 가구거리'를 떠올리게 된다.

'학성동 가구거리'는 현재 중구 학성동 190번지 일원, 즉 가구삼거리에서 학성공원교차로에 이르는 300여미터에 조성돼 있다.
 왕복 4차선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일직선 상에 70여개의 가구점이 빼곡히 들어서 장관을 이룬다.
 타 지역에 있는 가구거리에는 중간 중간에 가구와는 상관 없는 점포가 하나, 둘 끼여있는 것과 달리 학성동에는 오로지 가구점만 있어 '가구거리'라는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학성동 가구거리'는 25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국내외 유명브랜드를 취급하는 가구점이 총집합 되어 있는 울산 최대의 가구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넓은 매장과 기호에 따라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이 구비돼 있어 한 곳에서 많은 제품을 비교분석해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이점으로 작용해 울산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원래 울산지역의 가구점은 지난 1960년대 중구 옥교·성남동시장 일원에 많이 들어서 있었다.
 그러다 1970년대에 중구 학산동 역전시장 일대에 가구점이 밀집해 있다가 1980년대 들어 지금의 학성공원 앞으로 하나 둘 이전을 해 지금의 가구거리가 만들어졌다.
 가구점이라는 것이 대규모의 매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보다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한 상인이 학성동에 이전한 것을 계기로 중구 학산동에서 학성동으로 가구점들이 옮겨오기 시작, 60여곳의 가구점이 이 일대에 들어서게 됐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조성된 가구거리는 90년대 중반 건설산업의 호황으로 주택과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며 번성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 이 거리 가구점 업주들은 가구거리협회를 구성해 상권활성화를 더욱 도모했고, 매월 첫 째주와 셋 째주를 휴일로 정해 가구거리에 있는 상점 전체가 쉬기도 하고 자체 행사나 상인들의 단합을 도모하며 공생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도 애썼다.

 가구거리가 번화하자 손님들의 차로 인한 주차난이 점점 심각해졌다. 주변에 변변한 주차장 시설이 없어 손님이 가구 매장을 둘러보고 계약을 맺으려는 동안 주차단속 차량이 차를 견인해 가 계약이 무산되기도 하고 차량견인비를 물게된 손님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상인들은 해결책을 모색했다.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가구거리협회가 나서 지난 2001년 개구리주차장을 조성해 줄 것을 중구청에 건의했지만 무산됐다. 그러나 상인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개구리주차장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조용수 중구청장이 2002년 취임하면서 가구거리에 개구리주차장이 만들어졌다.
 늘 호황을 누릴 것 같았던 학성동 가구거리도 지난 2002년 남구 삼산동에 가구거리가 형성되고 상인들이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계속된 부동산업계의 침체는 가구점을 더욱 힘들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인협회를 세워 가구점 업주들을 이끌어 가던 초대 회장이 부도로 학성동을 뜨며 공석이 되고, 협회 간부가 바뀌며 협회는 서서히 와해됐다.
 불황을 맞게 된 가구거리 상인들은 상인협회 와해 후 다시 협회 구성을 하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타개할 머리와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다 영업부진 등으로 업주가 바뀌고 상점이 하루에 하나 걸러 바뀌며 가구거리는 시장으로의 등록도, 상인회 구성도 하지 못하고 있다.
 
상권이 분리되며 예전만 못하다지만 여전히 학성동 가구거리에는 70여개의 가구점이 빼곡히 들어서 영업 중이다.
 이들 가구점은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삼산 가구거리와 차별을 두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울산시민들은 가구 마련을 위해 학성동 가구거리를 찾고 있다.

 하지만 25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학성동 가구거리'가 울산 최대의 가구시장으로 남으려면 상인들의 상생을 위한 협력과 관계 구청의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중구청은 구청 홈페이지에 몇 줄의 설명을 달아 특화거리로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울산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학성동 가구거리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상품 아닌 인연…가구거리 제2의 부흥 꿈꿔"
[보루네오 대표 엄봉섭(51)씨]

 

"가구는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연이 닿아야만 주인과 가구가 맺어집니다"
 올해로 20년째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학성동 가구거리 터줏대감 엄봉섭(50)씨.
 그는 예부터 어른들이 귀중하게 여긴 가구는 '인연'이 있어야만 주인을 찾아간다고 말한다.

 그는 조그만 아이를 업고 왔던 손님이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의 가구를 사러 다시 가게를 찾았을 때를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제 가게에서 가구를 산 손님이 또 들려 '전에 산 가구 아직도 잘 쓰고 있어요'라는 말을 할 때 가장 뿌듯해요. 그런 말을 듣기 위해 최선을 다 하지요"

 그는 학성동 가구거리가 형성되면서 부흥을 이루고, 다시 퇴색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터줏대감 답게 가구거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2000년도에 가구거리협회가 결성되면서 저도 총무로서 활동을 했어요. 그 때는 첫째 주와 셋째 주를 휴일로 정해 가구거리에 있는 가게가 한 꺼번에 쉬기도 하고, 족구대회도 하고, 공생할 방안을 머릴 맞대고 고민하면서 단합이 잘 됐어요"

 가구거리 활성화를 위해 개구리 주차장 조성까지 추진했던 엄씨는 상권이 분리되고 거리가 퇴색 일로에 들자 아쉬운 마음과 고민이 깊어만 간다.
 "학성동 가구거리는 오랜 기간 울산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아직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요. 직접 보고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곳의 큰 장점입니다. 앞으로 상인들과 중구청이 힘을 합친다면 옛 명성을 되찾는 것도 얼마남지 않은 게 아닐까요"  
글=이보람기자 usybr@ 사진= 유은경기자 usyek@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