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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부대를 지나 엷은 숲길을 지나면 별안간 나타나는 평원으로 등산객들이 가볍게 나아가고 있다. 탁트인 전경의 시원함이 마골산만의 특징이다.

해발 297m 마골산에는 단풍이 내려오지 않았다.
 아직 저 설악 능선 어디쯤에 걸려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동해남부해안 야산은 농익은 초록이거나 마른 억새로 서걱거린다.
 단풍이 화려함의 정점이라면 초록은 싱그러움의 정점이다. 봄이 초록의 절정이라면 가을은 화려함의 꼭짓점이다. 그러나 계절이 수상해 화려함은 이르고 싱그러움은 버린 지 오래다. 오래 사귄 여인처럼 약간의 권태로움이 자욱하다.
 낙동정맥이 남으로 내리 뻗어 그 한줄기가 경주 토함산을 이루고 남쪽에 동대산맥을 만들며 솟은 곳이 울산 진산인 무룡산(451m)이다. 마골산은 그 기운이 넘쳐 동쪽과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면서 이룬 봉대산과 세바지산, 염포산 봉우리들과 함께하는 병풍 같은 산이다.
 
 

   
▲ 숲을 스친 햇살이 부드러운 마골산 가는 길은 조용한 사색의 길로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에 충분하다.
#완만하고 푸근한 동구의 주산
마골산은 동구의 주산이다. 동구의 다른 산들이 모두 마골산으로부터 뻗어 나갔고 동구 하천의 시작점이다. 천년고찰 동축사도 마골산 동남쪽 기슭에 터를 잡았다. 산은 오래되고 이제 늙어 둥글고 온순하다. 거칠고 급한 것들이 없는 푸근하고 완만한 할머니 품이다.

 마골산은 생소하고 낯선 이름을 가졌다. '마골(麻骨)이라 함은 재립 또는 개립산이라 하는 것인데, 재립은 삼(麻)대를 벗기고 남은 줄기를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재립을 한자로 쓰게 될 때 마골이라 하는 것이다. 마골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산면 모두 흰 돌로 덮여 재립대를 쌓은 것 같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울산문화원 <울산지명사>)

 실제 숲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마골산은 수많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알바위들의 보고라 일컬을 정도로 지천으로 깔려있다. 마골의 이름은 땅의 형세에 기인한다.
 

 

 #아랫율동에서 산에 들다

   
▲ 성불사.

아랫율동에서 마골산으로 올랐다. 초입은 시멘트 포장으로 깨끗하다. 정상부근 공군부대와 성불사가 있어 오래전에 포장된 듯하다. 길 양쪽으로 양정동주민센터에 가꾸는 벚나무들이 도열해, 봄이면 꽃잎 날리는 환한 길이 그려진다. 길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적당한 오르막이다. 공군 관사와 찬물네 약수터를 스치며 약 3km를 오르면 정상과 성불사로 가는 갈림길이다.

 성불사는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으로 추측되나 기록은 없다. 30여 년 전부터 새로 불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조용하고 참하다. 온통 상수리나무로 둘러싸인 아늑함이 기분 좋게 만든다. 대웅전 앞에 늘어진 개 한 마리가 낯선 방문객을 본체만체한다. 법당에는 염불이 한창이고 낮은 가을 햇살아래 꼼꼼한 손길이 닿은 분재들이 축소된 풍경처럼 애처롭다.
 성불사를 되돌아 나와 부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길은 여전히 넓고 평안하나 시멘트 포장을 버렸다. 길옆으로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들이 울창하다. 군데군데 철 이른 단풍이 엑센트처럼 환하다. 공군부대 앞에서 오른쪽 갈래 길을 탄다. 헬기장과 봉대산, 그리고 염포팔각정으로 가는 길이다. 막힌데 없이 모두 통하고 서로 열려있다.
 
#낯선 풍경이 주는 생경함
   
 

공군부대 옆으로 난 길은 생경하다. 햇살이 걸러진 야윈 길옆으로 철조망이 쳐져있고 몇년전 제거된 지뢰안내표식이 선명하다. 지뢰 제거작업은 끝이 났으나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다. 지뢰에 연상되는 것은 전쟁과 북한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한가로운 남쪽 산에서 느끼기엔 너무 멀고 아득하다. 20년전 비무장지대에서 본 붉은 지뢰 표식이 긴장이었다면 지금은 신기하고 낯설다.

 숲이 울창한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 1km정도 나아가면 별안간 환해지면서 숲이 사라진다. 나무들은 흔적도 없이 시야 밖으로 밀려나고 억새와 초지가 펼쳐진다. 마골산 헬기장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난 임도를 따라 등산객들은 한가롭다. 헬기장 근처 간이 정자엔 몇몇의 사람들이 숨을 돌리고 앉았다.
 헬기장에서 보면 울산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쪽으로 울산시가지와 영남알프스의 준령이 물결치고, 남으론 태화강과 울산항 그리고 공단이 시원하다. 북으로 끝없이 이어진 동대산맥의 줄기가 기운차다. 

 헬기장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심청골를 거쳐 동축산으로 연결돼 염포동과 남목으로 이어진다. 동으로 난 길은 두 갈래로 세바지산과 봉대산을 고쳐 주전으로 내려선다.
 봉대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인근 목장에서 조성한 초원이 펼쳐져 눈이 시원해진다. 한때 초록의 시간들은 이젠 황갈색으로 변했다. 서걱거리는 질감의 풀들이 바람 따라 눕고 일어선다. 초원은 비어 있어 매혹적이다. 바람을 삼키고 오랫동안 조용하다. 그 텅 빈 공간에 소나무 한그루 정물처럼 서서 사람을 맞이한다. 확연한 대조에 눈이 먼저 놀란다. 이미지는 결국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바람에 흩어진 얇고 가벼운 생각들이 다시금 부스스 일어선다. 가을이 오기 전 팽팽한 긴장감이 이제 느껴진다. 햇살 끝에도 바람 끝에도 가을이 매달렸다. 아직 온전하지는 못하다. 땅은 조금씩 붉고 노랗게 채워질 것이다. 지금쯤 그 길에 가을이 피었을지도 모르겠다.
  글=김정규기자 kjk@ 사진=김정훈기자 idacoya@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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