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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피나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울산시 남구 옥동 옥현마을의 청동기유적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한다. 얼토당토않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굴피나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주택공사가 지난 98년 옥현마을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기 위해 택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기원전 7-6세기 경의 청동기시대의 수혈주거지와 환호(環濠)와 수전(水田), 즉 논을 비롯한 갖가지 유적과 유물이 쏟아졌다.
 당시 발굴된 수전(논)은 일본이 주장하던 '일본 도작(稻作) 기원설'을 완전히 뒤집는 중요한 유적으로 판명됐다. 일본은 그동안 판부(板付)에 기원전 5-4세기 경의 수전(논)이 있었다면서 일본에서 벼가 맨 먼저 재배됐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하지만 옥현유적지에서 무려 200년이나 앞서는 논이 대량으로 확인됨으로써 일본 도작 기원설이 더 이상 설득력을 잃었다. 그처럼 중요한 옥현유적지의 주거지에서 굴피나무 목편이 나왔다. 옥현유적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 배경이다.

굴피나무, 생태계 변화에 요즘 보기 힘들어
목재·열매·잎, 성냥개비·염료·약재로 쓰여
큰 외과수술 속 살아남은 지역 유일 보호수
郡, 중요성 감안 실질적 보호정책 마련해야

굴피나무는 일찌감치 석기시대부터 한반도의 중부 이남지역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청동기시대의  옥현유적지에서 목편이 나온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수천년 전에는 우리 나라의 많은 곳에서 지금의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흔하게 자랐다는 사실은 다른 발굴현장에서도 발견됨으로써 확인되고 있다. 일산신도시와 경북 칠곡의 아파트 공사장 등지에서도 굴피나무 목편이 잇따라 나왔다고 한다. 완도에서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지을 때 굴피나무로 목책을 세웠다고 하며, 고려 초에는 화물선의 선박용재로 썼다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굴피나무로 지은 너와집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처럼 오랜 옛날부터 우리 땅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해오던 굴피나무는 지금은 잘 자라지 못해 찾아 보기가 힘들다. 양치식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급격한 생태계의 변화 탓이다. 고사리와 석송같은 양치식물이 3억4천만년 전에는 키가 수십m나 되는 거대한 식물이었지만, 지금은 작은 초본류로 변한 것처럼 굴피나무도 예전에는 굵기가 보통 어른 두세 아름이나 되던 것이 잘 자라지 못하여 찾아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가운데 굴피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울산에서도 노거수 280여 그루 가운데 굴피나무 노거수는 한 그루밖에 없을 정도다. 노거수 굴피나무는 귀한 나무가 됐다.

 굴피나무는 가래나무과의 낙엽성 키 큰 나무로 통상 5-20m까지 자란다. 지역에 따라 굴태나무나 굴황피나무, 꾸정나무로 불린다. 한자말로는 화향수(花香樹)와 화과수(花果樹)라고 한다. 잎은 홀수겹잎이며, 잎자루가 없는 7-19개의 작은 잎으로 이뤄진다. 잎은 달걀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골이 깊은 톱니가 있다. 양면에 흰 털이 있다가 나중에 없어진다. 5-6월에 노란빛을 띤 녹색 꽃이 핀다. 수꽃이삭은 5-8cm, 암꽃이삭은 2-4cm. 성숙한 암꽃은 솔방울 모양이다. 열매는 날개를 가진 견과로 9-10월에 익는다.

 굴피나무는 쓰임새가 많다. 목재는 성냥개비의 재료로 쓰인다. 열매는 황갈색 염료의 재료로, 나무껍질은 흑갈색 염료의 재료로 사용된다. 그 염료는 독성이 있어서 고기잡이에 유용하다고 하여 어망을 물들이는 데에 쓰인다. 조선시대에는 굴피나무 목재로 임금의 관을 만든 기록도 있다. 한방에서는 열매와 뿌리를 약재로 쓴다. 열매를 화향수과(化香樹果)라고 하며 진통이나 소종(消腫), 거풍(祛風) 등에 효능이 있어 근육통과 복통, 치통, 습진, 종창 등의 치료에 사용한다. 잎도 말려서 약용한다.

 

 

   
 

 굴피나무의 유사종인 중국굴피나무는 중국의 추운 곳에서 자라는 나무로 1920년대에 우리 나라에 들여왔다. 우리의 굴피나무보다 압도적인 30m 높이로 자라며, 1년에만도 1-2m씩 자라나는 등 생육속도가 다른 나무에 비해 빠르고 번식력도 몹시 강하다. 그러므로 중국굴피나무는 10m 이상의 높이에서 그늘을 만들어 다른 나무의 생육을 방해한다. 하천변의 나무는 유속을 감소시켜 토사를 퇴적시키고 하천지형을 변화시켜 물 흐름을 바꿔 범람의 원인이 되고도 있다. 산림당국이 퇴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울산 유일의 노거수 굴피나무는 울주군 두서면 전읍리 양지마을 경로당 앞 마당에 있다. 울주군이 지난 82년에 보호수로 지정했다. 울주군이 세워 놓은 보호수 표지판에는 고유번호가 12-15-9-16-1이라고 돼있다. 다섯 단계로 나눠서 번호를 길게 적어놓았는데,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그 다음에 '지정일자 1982년 11월 10일. 수종 굴피나무. 수고(키) 15m. 수령 300년. 나무둘레 3.8m. 관리자 양지마을'로 기록해 놓았다.
 울산생명의숲은 '추정수령 300-350년. 수고(키) 9.5m. 수관폭 12.6m. 가슴높이 둘레 3.2m. 뿌리부분 둘레 3.61m. 용도 마을나무'라고 밝히고 있다. 굴피나무의 키와 가슴둘레 등은 울산생명의숲이 밝힌 것이 맞는 것 같다. 수치를 정확하게 기록했으면 한다. 노거수 보호정책은 표지판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됨을 깨달았으면 한다.

 굴피나무가 있는 경로당 마당은 아래쪽 논보다는 3-4m 가량 높은 언덕을 이루고 있다. 언덕 아래 동쪽에는 드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그 너머는 2차로 아스팔트 찻길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또 그 너머 동쪽에는 10여군데의 공장이 가동 중인 두서농공단지가 들어서 있다. 굴피나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시야가 탁 틔었다. 조망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다.
 굴피나무는 지난 97년에 몸통의 거의가 썩어 큰 외과수술을 받았다. 그 때 몸통의 서쪽 절반이 잘려나가고 반만 살아 남아 새로 태어났다. 뒤편 서쪽 경로당 마당에서 나무를 살펴봤다. 너비가 1.3m쯤 되는 우람한 몸통은 온통 시멘트로 발라 놓은 것 같은 외과수술한 흔적 뿐이다. 높이라야 3m가 조금 넘는 몸통에서 가느다란 네 개의 줄기가 앙상한 부챗살처럼 솟았다. 그 줄기에서 많은 가지와 잎들이 나와 제법 반원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

 몸통 맨 오른쪽에 15도 가량 남서쪽으로 기운 채 줄기 한 개가 뻗었다. 맨 왼쪽에도 역시 줄기 한 개가 나왔다. 남쪽으로 조금 치우친 가운데에도 줄기 한 개가 나온 뒤에 곧 바로 두 개로 나뉘었다. 한 개는 북동쪽으로, 다른 것은 수평을 유지한 채 70Cm 가량 남동쪽으로 향하다가 남쪽으로 솟았다. 세 개의 줄기 가운데 남쪽 것이 가장 굵고 가지와 잎도 무성하다. 몸통이 온통 썩은 상태에서 큰 수술을 받고 살아 남았으면서도 줄기와 가지를 내뻗고 잎도 무성하게 자라난 모습에서 뜨거운 삶의 의지를 읽을 수가 있다.
 반대편 동쪽에서 보면 우람한 몸통의 껍질이 울퉁불퉁하다. 너댓 군데에 살을 파내고 수술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도 수술 흔적 뿐인 서쪽 부분에 비하면 다행한 일이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가 힘든 듯 가운데에 있는 두 개 줄기의 남동쪽 것에 받침대를 세워 놓았다.

 

 

 

 

   
 

 30여평에 불과한 경로당 마당에는 굴피나무 외에도 네 그루의 나무가 더 자라고 있다. 좌우에는 잎이 울긋불긋 물든 느티나무와 벚나무가 있다. 느티나무 뒤쪽에는 나란히 푸른 잎을 매단 서어나무와 곱게 단풍잎으로 갈아 입은 또 다른 느티나무가 서있다. 굴피나무를 비롯한 다섯 그루의 나무는 작은 경로당 마당을 온통 뒤덮고 있다. 한여름철에는 짙은 그늘을 만들어서 그만한 쉼터도 없었으리라. 나무 아래에 평상 두 개가 놓여 있다. 그제나 이제나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래 전에는 굴피나무가 자라고 있는 언덕이 갖가지 나무로 뒤덮인 숲이었다고 한다. 시야가 트인 마을 입구 언덕에 자리잡아 마을에 들고나는 사람들을 쉽게 지켜볼 수도 있고, 겨울철 찬바람도 막아주어 주민들이 신성시한 비보림이자 방풍림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자연스레 당산숲 역할도 했으리라. 가장 나이가 많은 굴피나무는 오랜 기간 당산나무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제는 그 무거운 당산나무의 소임에서는 벗어났지만, 양지마을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정자나무다.

 굴피나무의 노거수는 흔치 않아 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단 한 그루도 없다. 울산 전체의 노거수 가운데에서도 굴피나무 노거수는 양지마을 굴피나무 뿐이다. 양지마을의 노거수 굴피나무를 잘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울주군은 보호수로 지정하면서 양지마을 주민을 관리자로 정해놓았다. 너무나 형식적이다. 굴피나무의 중요성을 감안해서라도 울주군이 보다 실질적인 보호정책을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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