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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정에 이른 문수산 가을 단풍을 바라본 등산객들이 문수사를 찾아 목을 축이며 산사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린 지난 8월 11일. 울산의 대표 사찰인 문수사에는 100일 기도가 시작됐다. 매년 연례 행사처럼 열리는 이 기도는 수능 시험을 앞둔 수험생 어머니들을 위한 것이다. 올해도 600여명의 신자들이 이 기도에 참가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300여명의 고3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은, 기도를 위해 1km 산행을 마다하지 않고 꼬박꼬박 문수사를 찾는다. 자녀를 위한 모정은 문수산 자락을 곱게 물들인 단풍마저 무심한 듯, 애절하게 포개진 두 손은 문수보살의 지혜를 기원할 뿐이다.
 
   
▲ 수능을 앞 둔 학부모들이 절을 찾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 문수보살 지혜 빌리는 100일 기도

울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문수사에서 수능시험을 위한 100일 기도가 문수사에서 매년 열리는 이유는 지혜를 관장하는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8일 수능을 불과 며칠 남겨두지 않고 있는 최근에는 주말마다 기도를 올리기 위해 문수사를 찾는 수험생 부모들이 부쩍 늘었다.
 문수사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문수산 중턱까지 난 임도를 이용해 차량으로 올라 올 수 있지만 주차장에서 부터 절까지 1km 남짓 산행을 각오해야 한다.

 15분 가량 시간만 소요하면 되는 거리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아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니다. 500여m 흙길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언뜻 뒤돌아 보면 울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문수산 자락을 따라 펼쳐진 능선은 늦가을 울긋불긋 꽃 핀 단풍으로 오색 찬란하다.
 흙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돌계단을 만나게 되는데 깍아지른 듯한 절벽 바위가 병풍처럼 서있다. 20m 높이의 직각 바위는 돌계단 양쪽으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데 마치 문수사 입구를 가리키는 듯 하다. 이름도 그럴듯해 '문바위'다.

 문 바위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바로 문수사 턱 밑이다.
 사찰을 건립하기 위해 기초를 다진 콘크리트 구조물은 다소 흉물스럽다. 절 입구에 자리한 약수터 위치는 절묘하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깔깔한 입속을 시원하게 헹굴 수 있기 때문이다.
  
   
▲ 가을 단풍으로 물든 문수사 입구.


# 주말 1,000여명 통도사의 말사

문수사는 문수산에 있다. 문수산은 함월산,·무룡산과 함께 울산을 대표하는 산이다.
 이렇게 보면 문수사는 울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소재를 두고있는 문수산은 동쪽으로는 울산시 무거동과 접하고 서쪽에는 울주군 삼동면이 그리고 남쪽으로는 웅촌면이 있다. 범서면은 이 산에서 보면 북동쪽에 있다.
 문수사를 찾는 사람은 신자와 등산객을 포함, 주말엔 1,000여명이 넘어선다.
 최근에는 수능 입시를 앞두고 내방객이 부쩍 늘었다.

 문수사는 대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절이 자리한 문수산은 신라와 고려 때는 영취산(靈鷲山) 또는 청량산(淸凉山)이라고도 했다. 인접한 청량면은 바로 청량산에서 유래됐다. 1799년(조선 정조 23)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절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대웅전은 롯데그릅 신격호 회장이 시주해 중창한 것이다. 지난 1982년 신 회장은 고향인 둔기리가 수몰되자 평소 모친이 다니던 문수사의 대웅전 재건립을 지원했다.

 현재 문수사의 건물은 대웅전과 범종각·산신각·종무소·요사채 등이 있다. 산신각 뒤에 화강암으로 제단을 쌓아 모신 대형 불상이 있다.
 문수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극락전이다. 이 건물이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청하스님이 주지로 들어와 이 절이 본격적으로 중창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82년이지만, 극락전은 그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건물은 고풍을 풍기고는 있지만 규모 면에서 주위의 대웅전보다 너무 작아 오히려 초라한 느낌마저 준다.

 극락전 옆에는 자그마한 3층석탑이 있다. 이 탑신의 특징은 1층이 긴데 비해 2, 3층은 짧아 탑이 상승하는 느낌은 있지만 안정감이 다소 떨어지는 모습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지도 모른다. 낙수가 급하고 끝에는 풍경을 달수있는 구멍이 있다. 1,2 층 기단사이에 돌출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도 이 탑의 특징이다.
 극락전을 돌아 오르면 미륵전이 있다. 이곳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병풍 암석에 붙어 있는 돌부처인데, 형체가 너무 파괴되어 그 원형을 유추하는 것마저 힘들 정도이다. 당초 이 돌부처는 청송사탑 인근에 있던 것을 청하스님이 발견해 이곳으로 가져온 것이다.

 돌부처 옆에는 최근 만들어진 약사여래상이 있다. 연꽃 위에 앉아 약병을 들고 점잖게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지만 최근에 만들어져 옛 맛은 없다.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지었다는 대웅전은 모습부터가 아름답다. 1982년에 신축된 대웅전은 밑에 돌을 3단으로 바친 뒤 그 위에 건물을 올려놓았는데 사방 돌계단에 새겨넣은 연꽃 무늬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는데 이 자리는 옛날부터 대웅전이 있었던 자리였다.
 
# 신라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

문수사는 신라 원성왕때(789∼798) 연회국사가 창건했다. 기록에는 문수산 아래 영취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이 절 주위 토굴에서 큰스님이 숨어살면서 보행을 닦고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원성왕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연회스님을 청해 국사로 봉하려고 했다.
 그러자 연회스님은 국사가 되는 것이 싫어 암자를 등지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때 연회 스님은 길을 가다 한 농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연회가 농부에게 자신이 암자를 떠나는 이유를 밝히자 농부는 연회가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고 나무랐다. 연회는 농부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는데 이번에는 처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처녀도 연회가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떠나는 것을 말리는 것이었다.
 이때 연회는 처음 만난 농부가 문수보살임을 깨닫고 가던 길을 돌아서 농부를 처음 만났던 자리에 문수암이라는 암자를 지어 기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처녀를 만났던 곳에는 보현암을 지었다고 한다.
 또 다른 얘기로는 문수사를 지은 스님이 자장율사였다는 설도 있다. 중국을 다녀온 자장율사가 울산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문수산의 모습이 너무 깨끗하고 성스러울 뿐 아니라 스님이 중국에 머물렀던 청량산과 너무 닮아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누구의 의해 창건되었던지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기도 도량임엔 틀림없다.
 오색 단풍을 멀리하고 자녀의 성공 기원에 정진하는 부모의 마음이 문수산자락에 가득한 가을 오후, 햇살은 부드러웠고 바람은 잔잔했다. 글=김지혁기자 usjl@ 사진=이창균기자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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