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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晩秋)다. 장엄을 이룬 만산홍엽이 줄줄이 떨어져 가을바람에 끝없이 휘날리고 있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고 있음이다. 낙하에서 우수의 쓸쓸함과 사라지는 아픔을 느낀다고들 말하지만, 자연순환의 이치를 좇는 순백의 마음을 본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낀다. 기쁨이 따로 없다. 순백의 마음과 순백의 아름다움이 희열의 절정에 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 무덥던 지난 여름날을 검푸르게 장식하던 느릅나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름답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는 그 속성이 어딜 가랴. 이제는 샛노란 잎을 하나씩 둘씩 떨구고 섰다. 우수수 떨어져 쌓이는 그 노란 낙엽이 사각사각 마찰음을 일으키며 밟히는 맛이 유별나다. 이제 다시 새 생명을 잉태키 위하여 제 몸을 사위고 있지만, 해마다 이른 봄이면 그 어느 나무보다도 먼저 생각케 한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만난 박목월(朴木月)의 시 '청노루' 때문이다.

약·식용·재목·광택제 등 다양한 쓰임새에 '수난'
불타고 껍질 벗겨져…큰 외과수술에도 새생명 잉태
울산 280여 노거수 중 유일…살아 숨쉬는 문화재 인식

 

   
▲ 느릅나무

시인은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 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이라고 봄눈이 녹자마자 청노루의 맑디 맑은 눈에 투영된 청순한 느릅나무가 그 깊은 속살을 살살 간지럼 태워 새잎을 피우는 정경을 묘사했다. 티없이 아름답고 깔끔한 느릅나무의 속성에 저절로 감탄케 한다.
 느릅나무는 그 깔끔한 외모에 못잖게 사람에게 유용한 나무다. 약(藥)나무의 대명사다.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한 사람이 산에 올랐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엉덩이 살이 한 움큼 찢겨나가 뼈가 드러나는 등 온몸에 상처가 심하게 났다. 며칠동안 집에서 치료를 하며 기운을 차리기는 했으나, 엉덩이 상처가 곪기 시작하여 피고름이 나고 열이 심하게 났다. 여러 가지 약을 썼으나 갈수록 심해져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꿈에 노인이 나타나 마당에 있는 느릅나무를 가리키면서 뿌리를 찧어서 붙이면 나을 것이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나 느릅나무 뿌리를 캐서 찧어 붙였더니 열이 내리고 고름이 빠져나오면서 새 살이 돋아나 두달 쯤 뒤에 깨끗하게 나았다고 한다.> 그 뒤부터 느릅나무 뿌리는 종기와 종창, 곪은 상처를 치료하는 약으로 알려지게 됐다. 비슷한 이야기는 서양에도 있다.
 느릅나무는 넓은잎 큰키나무로 키는 20m, 지름은 1m 쯤까지 자란다. 더러는 키가 1-2m 쯤 밖에 안되는 난장이 느릅나무나 5-10m 가량 자라는 중간키나무도 있다. 느티나무를 닮았으며 산속 물가나 계곡 근처에서 잘 자란다. 한자로는 춘유(春楡) 또는 가유(家楡)라고 하며, 겉껍질은 유피(楡皮), 뿌리껍질은 유근피(楡根皮)라고 한다. 소춤나무와 누룽나무 등의 별칭도 있다.
 겉껍질은 회갈색이며 잎은 어긋나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타원형 모양이다. 앞면은 거칠고 뒷면에는 짧고 거센 털이 나 있다. 잎자루의 길이는 3-7mm. 꽃은 3월에 암수가 함께 잎보다 먼저 핀다. 잎겨드랑이에 7-15개가 달리며, 화관은 종 모양이다. 열매는 5-6월에 익으며 길이는 10-15mm이고, 날개가 있다.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거나 타원형이다.

 

   

▲ 느릅나무(오른쪽)와 팽나무.

 

느릅나무는 약(藥)나무의 대명사다. 6월 경에 뿌리껍질을 벗겨낸 뒤에 그늘에서 말려 약재로 썼다. 플라보노이드와 사포닌, 탄신질 외에도 치료성분이 다량 포함된 점액질이 함유돼 있어서 종기나 종창에 약효가 있다. 위염이나 위궤양의 치료제로도 썼다. 열매와 잔가지는 위암치료에도 큰 효과가 있다.
 식용으로도 쓰였다. 봄에 돋아나는 어린 잎은 나물이나 국으로 끓여먹었다. 불면증을 치료하는 데에 큰 효과가 있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천연수면제인 셈이다. 열매는 옛날 엽전을 닮았다고 하여 유전(楡錢)이라고 불렸다. 톡 쏘는 매운 맛이 있어서 옛날에는 겨자 대신에 생선회를 먹을 때 양념으로 썼다.
 그 밖에도 쓰임새가 많다. 물 속에서 잘 썩지 않기 때문에 다리나 배를 만들 때 썼다. 영국의 워털루다리는 느릅나무로 만들어져 120년간 물 속에 있었으면서도 거의 썩지 않고 온전한 상태였다고 한다. 껍질은 몹시 질겨서 옛날에는 껍질을 꼬아서 밧줄이나 옷을 만드는데 썼다. 진액은 도자기의 광택을 내는 데에 쓰이고, 피부에 바르면 뽀얗게 만들어 준다고 알려져 있다. 재목은 건축재와 가구재, 세공재 등으로 쓰인다.
 느릅나무는 이처럼 약재로서, 또 다른 용도로서도 그 쓰임새가 다양하기 때문에 큰 수난을 당했다. 살아 있는 느릅나무의 껍질을 벗겨 죽게 만들었다. 숲길을 가다 껍질이 벗겨져 처참하게 죽어있는 나무를 보면 십중팔구 느릅나무라고 한다. 노거수 느릅나무를 찾아보기가 힘든 이유다. 전국의 노거수 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릅나무는 한 그루에 불과하다. 천연기념물 제272호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에 있는 느릅나무다.
 울산의 노거수 280여 그루 가운데에도 느릅나무 노거수는 한 그루뿐이다. 9년 전에 병들어 절반이 잘려나갔다. 그래도 다행히 반토막은 살아 남아 지난 여름엔 짙은 그늘을 드리웠고, 요즘 만추엔 샛노란 잎을 폴폴 날리고 있다. 그 나무를 만나려면 중구 동동 산전마을을 찾으면 된다. 지난 85년에 만들어진 병영교 옆 동천강 둑길 아래 산전마을회관 곁에 있다.
 나무 앞 서쪽을 향해 중구청이 세운 노거수 표지판이 있다. '지정번호 3. 지정일자 2000년 7월 4일. 수령 약 350년. 수고(키) 13m. 나무둘레 2.8m'로 돼있다. 울산생명의숲은 '추정수령 150-200년. 수고(키) 9.5m. 수관폭 15m. 가슴높이 둘레 2.25m. 뿌리부분 둘레 2.97m. 용도는 정자나무'로 밝히고 있다.

 

   

▲ 팽나무

 

나무의 남쪽 부분이 뭉툭 잘려나가고, 북쪽 부분만 남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99년에 이미 중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남쪽 겉껍질이 완전히 벗겨진 채 방치되고 있었다는 것. 누군가의 불장난으로 심하게 데인 흔적과 함께 가지가 바람에 부러지면서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고 한다. 중구청이 2001년에야 상처를 입은 껍질을 벗겨내고 인공재료로 덮고 썩은 가지를 잘라내는 등 외과수술을 했다. 그런 치료과정을 거친 뒤 다행히 남아 있던 북쪽 부분이 2003년부터 새로운 싹을 내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무는 1.5m 높이에서 30도 가량 북쪽으로 기울었다. 남쪽 부분은 온통 인공재료로 땜질한 모습이다. 땜질한 윗 부분에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듯 직경이 1Cm도 되지 않는 20여개의 가느다란 가지가 촘촘히 돋아나 있다.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1.5m 높이에서 큰 줄기가 세 가닥으로 나뉘었다. 서쪽 것의 직경이 60Cm로 가장 굵고, 북쪽 것이 가장 가늘다.
 서쪽 줄기는 곧 바로 2개의 가지로 나뉜 뒤에 1m 쯤에서 네, 다섯 개의 잔가지를 내놓았다. 가지에서 가지가 연이어 나왔다. 가장 높이 치솟았다. 꼭대기에는 까치집도 매달고 있다. 맨 처음 가지가 나눠지는 곳에 철재 받침대가 세워져 있다. 가지가 부러지는 막기 위해 그 위쪽의 가지와 동쪽에서 뻗어나간 가지에다 철사 로프로 연결하여 놓았다. 동쪽 줄기는 역시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가지에서 가지가 이어져 뻗었다. 북쪽 줄기는 수평으로 3m 가량 뻗은 뒤에 끝 부분에서 수직으로 두 개의 가지를 솟구쳤다.
 느릅나무 곁에는 산전마을의 당산나무 팽나무 노거수가 서로 친구하며 서있다. 표지판에는 '수령 약 400년. 수고(키) 15m. 나무둘레 4.1m.'로 돼있다. 반면 울산생명의숲은 '추정수령 150-200년. 수고(키) 12m. 수관폭 16m. 가슴높이 둘레 9.34m. 뿌리부분 둘레 4.93m'로 밝히고 있다. 팽나무의 밑동과 땅에 드러난 뿌리 부분으로 봐서 나이는 적게 잡아도 400년은 너끈할 것 같다. 팽나무 바로 앞에는 기와지붕의 제당이 있다.

울산 유일의 느릅나무 노거수와 산전마을 당산나무 팽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둑길에 비스듬히 이어진 경사지인데다 콘크리트 바닥으로 이뤄져 있어서 생육환경이 좋지 않은 편이다. 특히 느릅나무의 경우 울산에서는 느릅나무 노거수로서는 유일하므로 보호수로 지정할만한 가치가 충분한데도 아직 지정을 하지 않고 있다. 강조하건대 고목(古木)도 문화재임을 인식했으면 한다. 역사유적과 유물에 버금가는 사람과 함께 살아 숨쉬는 문화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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