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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한듯 지켜온 2,000만년전의 시간위로 한 낚시꾼이 조과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낯선 이름이다. 우가포. 마을 뒷산이 우가산이다. 우가산을 낀 포구라 해서 우가포다. 예전에는 우리말로 소집골이라 불리던 곳이다. 우가포는 작은 포구다. 절벽에 작은 방파제를 연결해 파도를 막아 마련한 포구엔 배 열척 대기도 빠듯한 크기다. 위에서 내려다본 포구는 아기자기하다. 물질을 나가지 않은 몇 척의 배와 물새, 그리고 수리를 위한 작은 크레인 한대가 전부다. 왼쪽으로 소나무가 울창한 절벽과 갯바위가 연결되고 오른쪽으로 평평한 해안선이 완만한 포물선으로 이어진다.
 
   
▲ 절벽밑으로 단애가 펼쳐진 우가포 언덕위로 소나무가 푸르다.

#용암이 만들고 바람과 파도가 빚다

우가포의 바위들은 검고 얇은 물결들을 지녔다. 눕거나 선 형대로 어우러져 수많은 책을 연상시킨다. 변산반도의 단애가 가지런히 책을 쌓아놓은 형태라면 우가포의 이것은 가로나 세로, 혹은  엇비슷하게 누웠다. 우가포의 바위들이 이런 형태를 지닌 것은 지질학적 요인과 파도와 바람의 직접적인 흔적이다. 우가포 단애 주성분은 규소와 철이다. 이것을 토대로 추정한 시간은 대략 2천만년 전이다. 이것이 우가포 단애의 나이다. 그 오래된 시간 앞에서 바위들에게 새겨진 유려한 결들은 아름답다. 물밑에서 분출한 용암이 차가운 바닷물과 접촉하면서 냉각속도에 따라 층리가 생긴다. 절리와 생성 원인은 비슷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그 바위들이 땅이 되면서 오랫동안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씻겨 절벽으로 남았다. 노출된 부분은 닳고 닳아 둥글고 완만해 부드러운 곡선을 지녔다.

 그 장엄한 시간의 무늬 앞에 서면 단애를 이룬 바위들처럼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침묵은 시선을 가까운 곳으로만 오래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포구 왼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단애들이 정렬해 있다. 절벽 위에서는 보기 힘들다. 멀리 그 단애 끝에서 낚시꾼이 서서 조과에 열심이다. 거친 길이지만 바위는 넘어 들어서면 바위와 바위 사이 수로가 열리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난 펼쳐진다. 위로는 절벽 위 바다로 손짓하는 소나무가 위태하고, 앞으로는 비스듬한 책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히 절경이다. 몇 군데 절경의 단애위에 예전 군부대의 시멘트 초소가 상처처럼 남아 볼썽사납다. 이데올로기는 때로 풍경이나 지질학적 가치 그 이상에 존재하기도 했다.
 
   
▲ 누운 것과 선 것의 대조가 선명한 바위 위로 물길이 선명하다.

#채석강과 고래아구리

이태백은 강물에 어린 달빛을 좇아 강으로 들어가 영영 나오지 않았다. 중국의 그 강이 채석강인데, 부안의 그것과 닮았다. 그래서 변산반도의 단애가 쌓아놓은 책의 형태로 채석강이란 이름을 얻었다. 바다 절벽을 부르는 이름에 강이 붙었다.
 부안의 채석강이 바다에서 강의 이름을 가졌다면 우가포의 바위들은 토속적인 이름을 가졌다. 질무섬, 고래아구리, 돈바우, 시할매돌 등 정겨운 이름의 섬들을 휘 둘러보면 우가포는 결코 작은 포구만은 아니다. 다만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사람의 눈으로 직접보긴 만만찮다.

 소나무가 바다로 넘어가려는 아찔한 절벽 아래에  '아그락할머니'가 산다. 어물, 금천, 당사의 경계쯤에 거센 풍랑에 깎인 앙상한 바위 틈에 길이 약 5m, 높이 2m쯤 되는 용동굴이다. 옛날 천국에서 내려온 아그락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해안의 큰 뱀이 그 남쪽 해안의 거북이보다 착하다고 여겨 옥황상제에게 추천해 용이 되게 했다. 승천하는 날, 일진풍우가 몰아치고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나더니 바위산 하나가 둘로 갈라졌다. 그러자 용은 무룡산 위에서 춤을 춘 후에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바위하나에, 굴 하나에 얘기를 담은 옛사람들의 정취가 새롭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가포의 단애에는 얘기가 깃들여있지 않다. 너무 아름다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해서 일지 모른다.

 포구에서의 오후는 물새들의 날갯짓을 훔쳐보거나 단애의 깊은 소리를 듣는 것으로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단애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들이 쉼 없이 들려왔고, 절벽 위 소나무 숲을 만지며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들은 내면 깊숙한 곳으로 흘러왔다. 눈을 감으면 바람과 파도의 포구였고, 눈을 들어 보면 바다와 바위결의 포구였다.
 
   
▲ 뒤엉킨 바위속에서도 결들은 선명해 오래된 시간을 짐작케한다.

#살가운 고단한 삶의 풍경

우가포는 10여명의 해녀와 40여명의 어부들이 자연산 어패류와 미역 채취로 생활한다. 대여섯 곳의 횟집은 그래서 주인이 직접 잡아 파는 곳이란 간판을 달았다. 싱싱하고 맛이 뛰어나다. 우가포 마을엔 250년된 곰솔의 위용이 대단하다. 밑둥치가 한아름이 넘을만큼 굵고 크다. 높이가 22m고 둘레가 1.38m다. 가지는 처져 이젠 받침대를 놓고 펼쳐졌다. 우가포 마을을 굽어보고 선 마을의 수호신이다. 2000년 12월 보호수로 지정됐다.

 173.5m 우가산 정상엔 유포봉수대가 있다. 남으로 주전봉수대와 북으로 하서봉수대를 연결했다.
 해가 질 때 빛은 온 바다를 붉게 만들고, 바다의 붉은 빛은 다시 바위로 옮겨간다. 조금 더 지나면 바위는 색을 버리고 형태를 가진다. 그 검은 형태위로 파도가 오르내린다.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사람들의 삶은 고단하지만 가라앉은 우가포의 풍경은 단애 이쪽에서 살갑게 피어난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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