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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백년을 넘어 곱게 곰삭아 온 학교에는 그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고목(古木) 한 그루씩은 자라고 있다. 학교 역사의 산증인이자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노거수(老巨樹). 한 세기를 넘긴 울산의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갖가지 고목이 자라고 있다.
 등나무와 팽나무와 느티나무와 회화나무에다 왕버들과 소나무와 곰솔까지 지역의 특성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특이하게도 고목 감나무를 지닌 학교도 있다. 바닷가 학교에는 곰솔이 무리를 짓고 있다. 거의가 학교의 성격에 맞춘 나무를 개교할 때부터 심고 길렀다. 그 긴 세월을 지내온 고목은 이제 학교와 지역의 상징나무가 됐다.

  병영초 노거수 세그루 중 온전한 모습 느티나무 뿐
  기념비 '백년의 얼로 만년의 꿈 펼쳐라' 문구 부끄러워
  학교숲·고목 '살아있는 교과서' 인성교육·정서순화에 유익

그들 고목이 물들인 싱그러운 오월의 교정에서 울려퍼지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노랫소리. 그 '어린이날 노래'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계절은 벌써 바뀌어 겨울 문턱에 들어섰다.
 그래도 교정을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은 고목이 우수수 떨구는 낙엽비를 맞으며 나직나직 입 맞추며 동요를 부른다. <풀섶에 곱게 물든 빨간 아기단풍잎/ 가을 햇살 반가워 방긋이 미소 짓네/ 파란 하늘 보고파서 고개 내밀다/ 가을 햇살 눈 부셔 엄마 뒤에 숨어요/ 솔솔솔 바람 만지고파 고개 내밀다/ 가을바람 간지러워 엄마 뒤에 숨어요>. 그렇게 교정의 고목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면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며 슬퍼하고 아파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내왔기에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고목은 우리 사회의 거센 개발바람에 몸살을 앓았다. 도시숲은 급속하게 사라졌다. 도심의 숲이 사라지는 속도는 전국 평균 삼림 감소율의 35배에 달했다고 한다. 특별시와 광역시의 생활권 도시숲, 즉 공원녹지 면적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최저 기준 1명당 9㎡의 절반에 불과하다. 미국 뉴욕의 1명당 23㎡와 영국 런던의 1명당 27㎡, 그리고 프랑스 파리의 1명당 13㎡에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뒤떨어진다.
 개발바람이 학교에도 휘몰아쳤다. 그 아름답고 풍성한 학교숲이 사라지고, 고목도 잘려나갔다. 환경에 민감한 어린이와 중·고교생의 인성함양 등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큰 효과가 있는데도 말이다. 용케도 상당수 학교숲과 고목이 드문드문 남았다. 뒤늦게 학교숲을 회생시키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해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학교숲이 학생의 인성 및 애교심 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숲이 조성돼 있는 학교의 학생이 호기심과 탐구심, 집중력 등에서 낫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린이의 경우 효과는 매우 컸다. 교가와 교훈 등 17개 항목을 통한 애교심 평가에서도 숲이 조성돼 있는 학교 학생의 점수가 월등히 높았다. 학교숲을 늘리고, 고목을 온전히 지키는 데에 힘써야만 한다.
 조선 때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영의 지휘부, 군영 자리에 있는 중구 병영동 병영초등학교. 일백년 역사를 가진 울산의 초등학교 네 곳 가운데 한 곳이다. 나머지 세 곳은 가장 오래된 언양초등학교와 울산초등학교, 남목초등학교. 옛 군영 자리임을 나타내듯 교문을 오르는 계단 왼쪽 빈터에 토포사 이하의 벼슬아치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토포사이하개하마(討捕使以下皆下馬)'라고 쓰인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학교도 옛 군영 터임을 나타내듯 병영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이다.

 

 

   
 

 지난 2006년 8월에 개교 일백년을 맞은 병영초등학교. 일백사년 역사의 학교인 만큼 노거수 고목 세 그루가 있었다. 온전한 것은 느티나무 한 그루 뿐이다. 한 그루는 수년 전에 없어졌고, 또 한 그루는 몸통만 남아 목숨만 겨우 이어가고 있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걸까. 어처구니가 없다. 학교의 산역사요, 증인이었던 고목에 대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관리를 탓할 수 밖에 없다. 개교 100주년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아이야! 백년의 얼로 만년의 꿈을 펼쳐라'라는 문구의 뜻이 정녕 부끄럽다.
 고목 느티나무는 병영초등학교 운동장의 남쪽에 치우쳐 있다. 느티나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학교의 경계를 이루는 축대가 쌓여 있다. 느티나무의 추정수령은 100-150년. 나무 밑동의 굵기로 미뤄 150년은 훌쩍 넘긴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수고(키)는 20m. 수관폭 13m. 가슴높이 둘레는 3.5m. 뿌리부분 둘레는 4.5m.

 느티나무는 2.5m 높이에서 6개의 큰 줄기로 나뉘었다. 수직으로 곧게 3개가, 동북 방향으로 2개, 그리고 북쪽으로 가장 작은 한 개가 뻗었다. 큰 줄기에서 작은 줄기가 연이어져 나와 전체적으로 열대여섯 개의 줄기가 돋아난 셈이다. 큰 줄기의 직경은 대략 60Cm는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줄기와 가지는 남쪽을 제외한 세 방향으로 많이 뻗었다.
   땅에 드러난 그루터기는 영화나 사진에서 많이 봐온 마치 공룡 발처럼 생겼다. 네 개의 커다란 발 사이에 갈퀴 처럼 생긴 작은 발이 돋아나 전체 갯수는 열서너 개에 달한다. 아무리 밀어도 미동조차 않을 것 같이 땅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다. 그 굳센 모습에서 느티나무가 기나긴 세월을 버터왔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에 운동장 북쪽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낫다. 남쪽의 약한 수세가 가려져 원형을 이룬 원만한 모양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밑동에서부터 2.5m 높이에서 최정상부까지 조금씩 층계를 이루며 솟아난 모습에서 조상들이 정자나무로 느티나무를 골라 심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여름날에 그 푸르렀던 느티나무 잎들은 노랗게 물들어 줄줄이 땅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머잖아 떠날 가을이 아쉬운 듯 휴식시간에 운동장에 나와 샛노란 느티나무 잎을 주우며 마지막 가을볕을 즐기고 있다.
 병영초등학교에는 울산의 노거수 280여 그루 가운데 유일한 가죽나무 노거수가 있었다. 수년 전에 학교시설물을 새로 지으면서 잘라 버렸다. 병영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운동장 서쪽에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가죽나무 순으로 노거수 세 그루가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엄을 이뤘다. 울산생명의숲이 2003년에 펴낸 '울산의 노거수' 책에 그 가죽나무가 소개돼 있다. '추정수령 100-120년. 수고(키) 13.5m. 수관폭 18.4m. 가슴높이 둘레 2.55m. 뿌리부분 둘레 4m'로 기록돼 있다.

 

 

 

 

   
 

 학교시설물의 증축 때마다 옮겨 다닌 노거수 은행나무는 정문 바로 곁 서쪽에 있다. 그 우람하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바뀌어 심하게 망가졌다. 느티나무와 잘려 나간 가죽나무와 비슷하게 개교할 당시에 심어졌거나 심어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나이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년은 넘는다. 키도 13m에 가까웠다. 그 우람한 모습이 지금은 흉하게 변했다. 3m 높이의 몸통만 남아 있다. 정상부에 겨우 몇 가닥의 앙상한 가지만을 매달고 있다.
   학교숲에 고목이 학생의 인성교육과 정서순화에 유익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학교시설물을 늘린다는 이유만으로 마구 베어낸다면 교육현장은 황폐화로 치닫게 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진정한 교육은 학생들에게 교과목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교육환경을 제대로 갖추는 데에서부터 출발함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고목의 참다운 가치를 알고, 살아 있는 교과서로 자리매김될 수 있게 온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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