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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에 심은 5,000여그루의 편백나무가 20여년의 시간 동안 굵고 높게 자라 치유의 숲으로 거듭났다.

우리나라의 산은 4,440개다. 산림청의 조사결과 200m이상의 산만 그렇다. 전국의 산중에서 가장 많은 이름은 봉화산이다. 47곳이나 같은 이름을 쓴다. 천마산도 3곳이나 된다. 제일 유명한 것이 스키장으로 이름난 경기도에 있는 천마산이다. 울산에도 천마산이 2곳이나 된다. 상북면과 북구에 있다.
 북구 천마산은 지역에선 드물게 편백나무가 빽빽하고 소나무 숲이 울창해 최근 생태문화탐방로로 조성됐다. 천마산은 천곡과 달천을 옆에 끼고 뒤로는 척과를 두고 앉은 303m의 얕은 산이다. 9부능선을 따라 관문성이 순금산까지 이어져 있다.
 생태문화탐방로는 달천 만석골 저수지를 통해 올라가는 것이 편하다. 예전 만석꾼의 논이 있는 골짜기라 만석골이 불렸다. 지금은 산 초입에 몇마지기의 논이 있을 뿐이다. 
 

#가을을 추억하는 수변길
달천마을회관 옆 골목길로 들어서 계속 직진하면 온통 금빛으로 치장한 천만사가 나온다. 크지 않은 절이지만 그 휘황찬란하고 알록달록한 색에 금세 눈에 띈다.

 천만사를 지나면 산불감시초소가 나오고 길은 나눠진다. 왼쪽으로는 울산울트라랠리로 이용되고 있는 MTB코스다. 오른쪽으로 길머리를 잡아 300m정도 가다보면 만석골 저수지가 나온다. 농촌진흥공사에 만든 농업용 소류지다. 물은 깊지도 얕지도 않지만, 그 찬란한 가을 색의 향연을 기억하는 듯 고요하다. 둑 위로 낚시꾼이 앉아 채비에 열심이다.

 저수지를 돌아 산의 초입에 들어서면 나무데크가 가장자리 연결돼 생태문화탐방로로 연결된다. 북구청이 3억여원을 들여 최근 조성한 이 길은 총 길이가 3.4km다. 길은 편백삼림욕장과 솔숲 산책길, 옛성터길 등으로 연결된다.

 나무데크 옆으로 창포 등 수생식물을 심었다. 꽃의 계절엔 아름다운 반영을 피울 것이다. 저수지 옆으로 뿌리를 반쯤 담근 소나무 한그루가 위태롭다. 
 저수지를 벗어나 산길에 들어서면 잘 정돈된 느낌을 준다. 가뭄으로 작은 계곡엔 물의 흔적이 없고 낙엽만 수북히 쌓여있다.

 길 가장자리를 따라 1m정도의 어린 편백나무 200여그루를 새로 심었다. 아직 여리고 가늘지만  수십 년 후 이 나무들은 큰 나무가 되고, 작은 숲은 더욱 짙은 녹색을 더해가며 큰 숲으로 변할 것이다.

 
#피톤치드 넘쳐나는 길
   
▲ 소나무숲이 우거진 솔숲길. 수천그루가 어울려 기운이 충만하다.
오르다보면 군데군데 새집을 달아 놨다. 새 것들이 자연에 녹아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비와 바람에 닳아 낯설지 않고 이질적이지 않을 때 새들은 둥지를 틀 것이다. 새집에 눈이 뺏겨 나무들을 보다보면,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들 사이로 별안간 높게 하늘을 찌른 편백나무들이 나타난다.

 삼림욕장이다. 이곳은 1990년에 심은 5,000그루가 1만여평에 자라고 있다.  20년간 묵묵히 땅의 기운을 받은 편백들은 이제 둘레가 15~20cm정도로 굵어져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듬직해졌다. 적당한 가지치기로 올곧게 쭉 뻗어 키가 15m정도로 컸다. 저물어가는 가을에도 푸른 잎들은 싱싱하게 하늘을 가린다. 울창하다.

 전남 장성의 축령산 편백나무들이 크고 장대하다면 천마산의 것들은 아직 작고 아담하다. 하지만 울산에선 보기 드문 수종이라 정감이 간다.
 숲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나무가 곰팡이, 세균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이다. 활엽수보다는 침엽수에서 많이 발산되고, 그중에서도 편백나무가 월등하다고 알려져 있다.

    소나무의 3.9배, 잣나무의 2.2배다. 피톤치드는 항균, 살균, 이완 및 진정 효과가 있어 숲이 인간에게 선물한 최고의 건강치유 물질로 인정받고 있다. 조용한 편백나무 숲은 몸만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곳은 아니다. 명상에 들어도 좋고, 책 한 권 들고 들어가 편안한 마음으로 독서에 빠져도 좋다. 숲에는 벤치와 피크닉 테이블들이 곳곳에 있어 쉴 수 있다.

 
#천년 전의 성곽 위로 걷는 길
울창한 편백림을 지나면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숨이 찰 무렵 남북으로 길게 연결된 돌무더기가 엿보인다. 오래된 세월 앞에 무너지고 쓰러진 관문성이다. 관문성은 경주 모화에서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치술령 망부석)까지 12㎞에 달하는 신라의 성이었다.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다. 기록에는 연인원 3만9,000여명이 동원돼 길이 40~50㎝의 다듬은 돌과 평평한 자연석을 함께 사용해, 4~5m 높이로 쌓았다고 전해진다. 원래 이름은 모벌군성, 모벌관문이었는데, 조선시대에 관문성으로 부르게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문성은 산과 산을 연결하며 길게 쌓은 특수한 방식의 산성으로, 그 길이가 6,792보 5척이나 돼 신라의 만리장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300여년의 단단한 시간 속에서 성은 쇠락했고, 나무들은 석성의 돌들 사이로 깊이 뿌리를 내렸다. 성은 군데군데 무너져 제형체를 알 수 없으나 두툼한 언덕을 형성해 성터옛길로 조성됐다.
 

#소나무숲 오솔길
   
▲ 오래된 시간 앞에 형체를 잃어가는 관문성. 그 시간 위로 나무들이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성터옛길을 따라 150여m 정도 오르면 천마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나무데크로 만든 전망대와 망원경이 설치돼있다. 전망대에서면 멀리 무룡산과 남구의 주상복합건물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발밑으론 만석골 저수지와 달천의 마을들이 펼쳐진다. 넓어진 시야만큼 바람도 시원하다. 이마의 땀방울이 흔적도 없이 씻긴다.

 바람은 완연한 가을 속으로 내달리고 발걸음은 이제 하산을 재촉한다. 성터옛길에서 편백삼림욕장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솔숲 산책길로 들어선다. 길은 연신 내리막이다. 고요한 오솔길 사이로 새들의 무리가 떼지어 움직인다. 가파른 길을 벗어나자 금세 어둑해진 소나무숲으로 들어선다.

 나무들은 곧거나 굽어져 지난 시간들을 견뎌왔다. 우리 소나무가 주류인 가운데 일본에서 건너온 리기다 소나무가 곳곳에 보인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나무마다 수종과 특징을 새긴 안내판을 붙여놓아 누구나도 쉽게 알 수 있다. 소나무숲은 제법 깊다. 그 어둑한 숲 사이로 길이 있다. 오랫동안 새긴 사람의 흔적위로 솔잎이 곱게도 내려앉았다.

 소나무숲을 벗어나면 머리위로 하늘이 열리고 이내 저수지에 이른다. 1시간여의 짧은 산행이지만 길은 고요했다. 편백나무들은 하늘 가까이 자랐고 성벽은 폐허로 남아 말이 없었다. 솔숲은 깊고 그윽했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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