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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교육청은 청소년의 꿈을 구체화시키고 방향을 잡아 미래에 대한 꿈을 일깨우기 위해 지난 7월 19명의 진로코디네이터를 구성해, 10일까지 울산지역 61곳의 중학교 1학년 전체 499학급을 순회하는 교육활동을 했다. 사진은 지난 8일 무룡중학교 1학년 한 교실에서 펼쳐진 진로수업. 김정훈기자 idacoya@ulsanpress.net

울산시 중구 무룡중학교의 1학년 교실. 오전에 기말고사를 모두 끝낸 터라 매번 시험 기간이 종료되면 그래왔듯 주위가 산만해질 것이란 걱정은 기우였다. 온몸의 감각을 수업에 집중시킨 듯 미동도 없는 학생들의 눈빛에는 오히려 평소 보다 더 힘이 들어가 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물 빠져나가듯 교실을 비웠던 적이 언제 있었냐는 듯 자리를 지킨다. 그런데 오늘 따라 사뭇 진지해진 아이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는 이는 교사가 아니다. 이들의 인생에서 나침반이 되기 위해 교실로 출동한 '진로코디네이터'(진로코디)다.


# 롤모델을 통한 진로 방향잡기
지난 8일 오후 이 학교 1학년 10개 학급에서는 진로교육이 한창이다. 아이들의 시선이 꽂힌 프로젝션영상에서는 KFC의 창업주 커넬샌더슨이 70세에 이룬 성공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개된다.
 영상 속에서 커넬은 페인트공, 타이어 영업원, 유람선, 주유소 직원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다 중년에 이르러 겨우 레스토랑을 갖게 되지만 경영에 실패하면서 65세의 황혼을 맞게 된다. 파산을 한 후 주머니를 털어 압력솥을 사고 꾸준히 개발해온 독특한 조리법을 팔기위해 나선 그가 1,008번을 거절당한 후 1,009번째에서 계약을 따낸다.


 이 순간 아이들에게 있어 커넬은 '흰색 양복을 입은 거대한 치킨집 주인할아버지'라는 막연한 존재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꿈을 이룬 '롤모델'로 바뀐다.
 이어 등장한 세계적인 축구스타 박지성 역시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158㎝에 불과한 키에 평발이었던 그가 세계 최고 선수들과 어깨를 겨루고 실력을 인정받게 된 비결은 꿈을 향한 투지와 끈기였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잡스, 아시아 최고의 디바로 불리는 보아, 국보급 발레리나 강수진, 미국의 저명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윈프리,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도 마찬가지다. 천재적인 DNA를 가져서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키워내는 노력을 통해 결국 꿈을 이룬 이들의 성공과정을 탐색하면서 아이들은 꿈에 대한 자신감과 동기를 부여받는다.
 아이들은 눈을 내리깔고 각자가 성공 인물로 꼽은 슈퍼스타 K의 허각, 피겨 여왕 김연아 등이 꿈을 이룬 의미에 자신의 현실을 교차시킨다.
 장래에 대해 제법 심도 있는 고민이 뇌리를 붙잡는 찰나, 적성검사가 이어진다. 검사 결과 적성에 따라 현장형, 연구형, 진취형, 사회형 등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된다. 자신의 특성을 파악한 학생들은 이를 꿈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거나 이를 통해 이미 가진 꿈을 확고히 하게 된다.


 바로 이때 '피자와 관련된 직업이 몇 가지냐'는 느닷없는 질문이 던져진다. 요리사, 배달원, 광고기획자 등 단편적인 답을 쏟아내던 아이들 앞에 농부, 그릇 제작자, 건축설계사, 텔레마케터, 도장공, 공인회계사 등에 이르는 무려 2만여 가지에 이르는 설명이 나열된다. 이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항공기 및 우주선개발, 여가서비스, 이동통신, 생명공학 등 피자와는 다른 범주의 직업 정보와도 대면하게 된다.
 뿐만 아니다. 호텔컨시어지, 토피어리디자이너, 쇼콜라티에 등 곳곳에 숨어있는 이색 직업까지 따져보니 각자의 적성을 키워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예상 밖으로 다양하다는 결론 앞에 다다르게 된다.


 수업의 막바지. 꿈이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설계를 하는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수업 시작 때와는 다른 에너지가 감지된다. 또 각자 앞에 놓인 페이퍼에 희망과 각오를 나열하고 이를 접어 '소망화분'을 만드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공존한다.

# 함께 꿈꾸는 강사와 아이들
불과 3시간 만에 학생들의 꿈을 구체화시키고 방향을 잡아 미래에 대한 욕심을 일깨워낸 이들은 울산시교육청이 파견한 '진로코디'다. 이날은 모두 10명이 각 반에서 수업을 이끌었다.
 박미경 대표를 비롯해 모두 19명으로 구성된 진로코디는 교원 자격자이거나 상담전공자 또는 경력자들로, 지난 7월 선발된 이후 이달 10일까지 3개월간 울산지역 61곳의 중학교 1학년 전체 499학급을 순회하는 교육활동을 벌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구체적인 목표 의식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진로설정을 전담하는 장치를 일선 학교에 마련한 것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내려진 특명도 '아이들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생들의 '커리어포트폴리오' 작성을 지도해 단계별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도록 이끈다. 또 직업 적성검사를 실시하고 적합한 직업군에 대한 정보와 취업 준비 등을 위한 맞춤형 안내도 제공한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꿈을 구체화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4반 서정인 학생은 반기문 UN사무총장의 동영상을 보고 '외교관'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고 꿈을 다시한번 확고히 했다. 8반 김기향 학생은 글짓기가 적성에도 맞고, 문화예술분야의 전망도 밝다는 사실을 새삼 피부로 느끼면서 '소설가'가 되기 위해 책을 읽어야겠다는 계획이 생겼다.
 진로코디들의 역할은 단순히 직업과 진학에 대한 자극에 그치지 않고 행복한 삶에 대한 정서를 살찌우기도 한다. 박미애 코디는 최근 이화중 수업시간에 한 청각장애 학생이 청능개선 수술 후 소망화분에 "말을 하고 싶다"라는 글을 남긴 것을 보고 뭉클했다. 또 수업 시간 내내 자신의 입을 뚫어져라 보며 입모양을 따라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무한한 책무감도 느꼈다.


 진로코디 제도는 강사들에게도 인생을 되돌아보게하는 특별한 이벤트가 되고 있다.
 박미경 대표코디는 성인진로코칭에 대해 공부를 하고 정체성을 깨달은 후 고액연봉을 포기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대신 진로코디를 진두지휘한 이후 진취적이고 카운셀링에 능한 그의 적성을 제대로 발휘하면서 '진짜 인생'을 살게 됐다.


 현역 수필가이기도 한 김미경 코디 역시 아이들과 행복을 이야기한 이후 자신의 작가적 소질을 확대하고 싶다는 에너지를 갖게 됐고, 내친김에 한국어 교원자격증에도 도전했다.
 학생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기 때문일까 열성도 남다르다. 이들 진로 코디는 중1학생들과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TV나 영화, 스포츠 스타 등에 대한 정보를 꼬박꼬박 챙기고, 정기모임 또는 카페 활동을 통해 수업 시안을 나누고 성과를 공유한다.
 박미경 대표코디는 "기성세대와 격차가 큰 중1 학생의 인생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때문에 학생들의 감성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포지셔닝하기 위한 갖가지 연구를 한다"며 "3시간에 불과한 수업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완전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동기를 부여해 아이들이 적성을 찾아가는 단초를 마련해 주는 것 자체가 소중한 보람이다"라며 흐뭇해 했다. 

# 시교육청 체계적 운영검토
시교육청은 진로코디가 학생들의 진로설정에 직·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성과를 올리자 당초 예정됐던 1회성 운영에 그치지 않고 지속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진로지도는 곧 학습과도 직결되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의 목표 수행을 돕기 위한 '추수 지도'를 한다고 가정해도 이를 피드백해 줄 상담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장기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과 이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적성은 지속적으로 변화되므로, 여기에 맞춰 인생의 목표도 연속적으로 관리해 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교육청 김용희 장학사는 "진로코디제도는 아이들 꿈과 이를 함께 나누는 강사들의 에너지가 합쳐져 예상보다 높은 상승효과를 불러오고 있다"며 "제도를 최대한 살려 더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주화기자 usjh@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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