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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매암동 주민들이 이주해 정착한 남구 야음장생포동 신화마을. 낡고 남루한 건물에 벽화가 생기고 예술인촌으로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울산시 남구 야음장생포동 174번지 일대. 울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이자 도심의 슬럼가다.
 1960년대 공업단지로 지정되면서 매암동 주민들의 이주단지로 지정돼 울며겨자먹기로 정착한 곳이었다. 그들의 옛 터전은 비료공장의 굴뚝이 점령군처럼 들어섰으나, 고래 포경으로 삶을 영위하던 그들의 뿌리는 바다와 먼 육지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포경마저 금지되고 하나 둘씩 떠나간 마을은 사람도 집도 골목도 오래된 시간위에 낡고 남루해졌다.

 지금은 180여가구 38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나 대부분 60세 이상의 고령에다 홀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끊어진지 오래다.
 한때 이곳에도 재개발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마을부지 80%이상이 국유지인 탓에, 주민들 사이 반목과 갈등만 남겨두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마을은 그저 마지못해 사는 거주공간이상의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빈집은 늘어만 갔다.
 
   
▲ 송주웅 화백이 신화마을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1차 벽화작업은 올해말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숨은그림찾기 재미 솔솔

개보수는 마음으로만 가능했던 이곳이 달라졌다. 회색빛으로 우중충했던 골목들이 산뜻한 페인트로 칠해졌고, 알록달록 그림들이 그려졌다. 고래가 대양으로 나아가는 조형물들이 지붕에 세워졌다. 지붕도, 처마도 하수 파이프조차 캔버스가 되고 조형물의 하나로 활용됐다.
 낙후된 동네를 문화의 중심으로 바꾼 것은 '2010 마을미술 프로젝트'다. 문화관광부에서 선정한 안동대 마을미술프로젝트팀과 남구청 공공근로 형태의 울산공공미술연구소등 지역작가들이 그려낸 작품들이 조화를 이뤄 새 마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신화마을은 야트막한 언덕의 한 등성이를 차지한 경사진 마을이다. 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집들이 앉은 긴 형태로 곳곳에 조형물과 벽화들이 숨어있다.
 마을 어귀 자동차 정비소에서 시작해 마을 꼭대기까지 약 300m 정도 오르막이다. 경사는 급하지 않고 완만해 숨이 찰 정도는 아니다. 더욱이 중간 중간 골목마다 숨겨진 그림들을 찾는 재미가 솔솔해 지칠 틈이 없다.
 마을 입구 주택 지붕위에 귀신고래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형상이 이곳이 신화마을임을 알려준다. 맞은편으로 최근 장생포를 배경으로 한 영화 '고래를 찾는 자전거'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자전거를 탄 남매와 고래의 이미지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만 아직도 벽화조성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그런지 아직 그럴듯한 이정표나 골목지도 등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수요일 오후 안동대 팀의 고래조형물 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지붕에 고래를 설치하는 작업중에 마을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 광경을 지켜보며 농담처럼 주고받았다.

 "먹지도 못하는 고래는 말라꼬 자꾸 세우노? 차라리 먹는 고등어 한 마리나 주지"
 쿡하고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어쩌면 당장 필요한 것은 고래 모형이 아니라 고등어 한 마리가 저들에게 더 체감되는 것일지 몰랐다. 그러나 저 생명 없는 고래 모형이 하늘로 날아올라 생명력을 가지고 이 마을을 풍요롭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 처마끝에 매달린 강아지 조형물.


#마을 전체가 하나의 예술공간

골목의 벽화들은 하나의 테마를 가진다.
 어느 골목은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모퉁이 돌아서면 음악이 흘러나오고,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들이 꼴라쥬형식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아득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옮겨진 골목이 있는가하면, 민화 한 폭이 벽면에 자리 잡은 곳도 있다.
 또 구석진 곳에서 뜻하지 않게 마주치는 작은 개와 고양이의 그림은 앙증맞아, 찾는 즐거움을 준다. 마을 가운데 사거리의 낡은 슈퍼 슬레이트 지붕위에 올려진 토끼와 거북이 형상이나, 주택의 일부분을 이용해 포경선을 만들고 설치된 고래 조형물들은 조명까지 더해져 밤에도 또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30여점의 벽화들을 훑어보면 느릿느릿한 걸음이라도 1시간이내 마을 정상에 도착한다. 뒤돌아보면 아래로 지나쳐온 골목이 제법 길다. 정상에는 2010년 울산전국환경미술제에 출품된 최평곤 작가의 신화마을지킴이 조형물이 마을을 굽어보고 섰다.
 경기도 파주 평화누리공원에도 서있는 이 대나무 설치미술품들은 울산공공미술연구소 회원들이 거의 강제로 뺏다시피(?) 가져와 설치한 작품이다. 다만 주변에 정리가 안돼 다소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 신화마을 지킴이로 우뚝선 대나무 설치미술.


#또 다른 상생 예술인촌 조성

디카에 담겨 인터넷으로 전파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에 신화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통영 동피랑마을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아기자기한 벽화로 유명세를 탔다면, 청주 수암골은 벽화와 함께 드라마 세트장으로 유명해졌다. 제빵왕 김탁구의 세트장으로 이용되면서, 그 명성은 아직도 유효해 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며 빵을 산다. 벽화와 함께 시너지 효과가 대단한 셈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마을주민들이 '밤 9시 이후에는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까지 세웠다.

 사실 벽화와 드라마의 영향이 전부는 아니었다. 주민들은 벽화로 재생한 마을을 위해 수수한 나무 문패를 새로 만들어 달았고, 넉넉지 않은 삶을 내보인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마음을 열고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았다.
 동피랑이나 수암골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신화마을은 또 다른 방향으로 주민과 예술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울산공공미술연구소는 10일부터 마을의 빈집을 활용한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국의 작가 작품 30여점을 빈집 3곳에 나누어 걸고 자연스럽게 마을벽화와 어우러지게 유도하는 이색적인 행사로 관심을 끌고 있다. 26일까지 계속되는 '지붕없는 미술관-야음동 신화마을 174번지展'은 전시 기간 중 어린이 미술체험 부스도 운영한다.

 또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주민-예술인 상생 생활문화공동체마을'조성사업이다. 한마디로 이곳에 '울산 예술인촌'을 만들자는 얘기다. 빈집을 예술인들에게 작업실로 임대해 창작의 산실로 만들어보자는 의도다. 나아가 완성된 작품들을 상시 전시, 공연 등의 행사를 통해 알리고 마을 전체를 예술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더욱이 신화마을만의 문화상품 개발판매 등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용창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문화소외지역서 중심지역으로

쇠락한 마을에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힘은 예술이었다. 예술이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함께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가장 보편적인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울산에서 많은 예술이 꽃필 때 사람 냄새나는 문화도시가 될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햇살 따뜻한 신화마을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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