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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구 어물동 금천마을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내뻗친 아름드리 모습을 한 110년생 노거수인 '팽나무'. 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새 봄을 예비하는 겨울이다. 엄동설한의 이 계절에 긴 겨울잠을 자며 제 육신과 영혼을 살찌우면서 다음 해의 영화(榮華)를 꿈꾸지 않는 것이 있으랴. 더욱이 잎지는 나무, 낙엽수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엄혹한 이 겨울철이 최상의 계절이 아닐 수가 없으리라. 지난 여름철에 그 어떤 나무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였으므로 더욱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긴 휴지기를 가질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 자연순환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지난 계절의 그 푸르디 푸른 잎을 죄다 떨구고 섰는 낙엽수의 앙상한 외모만을 바라보며 냉대하기가 일쑤다. 하지만 가지와 줄기만 남은 것이 낙엽수의 참모습이 아닐까. 나무 세상의 법칙이 가식과 허울이 판치는 사람 세상에 결코 적용될 수가 없음이다. 그러므로 겨울철에 고목(古木)을 찾는 것이야말로 노거수 기행의 참맛을 깨닫는 일이다.

마른논 배경 풍성한 가지 내뻗어
아름드리 수형 여름철에 환상적
잎사귀 떨군 팽나무 휘감은 송악
회색빛 몸통-파란줄기 묘한대조

우리의 선조들은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마을숲을 만들고 성황당을 짓고 당산나무도 심어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빌었다. 3대 당산나무로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팽나무가 꼽혔다. 그들 나무는 당산나무인 동시에 정자나무였다. 가지와 줄기가 사방으로 고루 뻗어 무성한 잎을 매달고 짙은 그늘을 펼쳐 무더운 여름날에는 최고의 쉼터 역할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아래에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했다.

 그동안 개발바람에 밀려 수많은 마을숲과 당집과 당산나무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살아 남아 우리의 공동체 정신을 나타내는 귀중한 문화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 세 나무는 모두가 잎지는 나무, 낙엽수로 엄동의 이 계절에 꿋꿋이 찬바람에 맞서며 매운 기상을 내보이고 있다. 울산에서는 세 나무 가운데에 팽나무 고목(古木)이 가장 많다.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통상 높이 20m, 지름 1m로 생장한다. 포구나무와 달주나무, 매태나무, 편나무, 자단수, 청단, 박자수, 목수과자로 불릴 정도로 그 이름이 무척 많다. 우리 나라가 원산으로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산기슭이나 계곡에서 잘 자란다. 뿌리가 튼튼하여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디고 내염성도 강해 동해안 부근에서도 생육한다. 옛날부터 방풍림과 녹음을 위해 많이 심었다.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져 주로 둥근 형태를 이룬다. 겉껍질은 회색 또는 흑회색으로 껍질눈이 있으나 갈라지거나 벗겨지지는 않는다. 잎은 길이가 5-8Cm로 어긋나게 달리며, 달걀형 또는 타원형이다. 끝이 길게 뾰족하고 가장자리 윗부분에만 약간 둔한 톱니가 있으며, 두 면에 털이 있다가 나중에 없어진다. 측맥은 3-4쌍이 있고, 표면을 만져보면 느낌이 거칠다.

 꽃은 4-5월에 핀다. 수술이 네 개인 수꽃은 햇가지의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암술이 한 개인 암꽃은 햇가지의 윗부분에 맺힌다. 열매는 10월에 익으며, 지름 7mm로 둥글며 단맛을 낸다. 표면에는 그물 같은 주름이 있다. 맨 처음에는 노란색이다가 붉은색으로 바뀐 뒤 마지막에는 등황색이 된다. 노란팽나무의 열매는 노란색 그대로다. 노란 팽나무는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원주 치악산에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팽나무의 껍질은 한방에서는 '박수피(朴樹皮)', 잎은 '박수엽(朴樹葉)'으로 불리며 약으로 쓰인다. 여름에 채취하는 나무껍질에는 사포닌과 알카로이드 성분이 있어 말려서 달여 먹으면 폐농양이나 만성 두드러기에 효과가 있다. 잎에서 나오는 즙은 종창에 효험이 있다. 잎은 한약으로도 쓰이지만, 절에서는 단풍나무 잎과 함께 감로차를 우려내는 재료로 쓰인다. 신경질, 히스테리에도 껍질이나 열매 12-19g을 1회분으로 달여 5-6회 복용하면 좋다고 한다.

 팽나무 목재는 단단하고 갈라지지 않아 여러 가지의 가구를 만들거나 건물을 짓는 데에 쓰인다. 가구재나 운동기구재, 건축재로 쓴다. 도마의 재료로서는 팽나무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옛날에는 큰 나무를 통째로 파서 통나무배를 만들었다. 고기잡이배보다는 나룻배로 썼다고 한다. 논에 물을 퍼넣을 때에 쓰는 용두레도 팽나무로 가장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울산의 노거수 280여그루 가운데 팽나무 고목은 11.4%인 서른두 그루가 있다. 거의가 울주군에 있다. 스무다섯 그루. 다음으로 북구에 다섯 그루, 중구와 동구에 한 그루씩이 있다. 그들 팽나무 고목 가운데 북구 어물동 금천마을에 있는 노거수 팽나무는 어린 측에 든다. 그렇지만 여름철의 수형(樹形)만은 최고로 꼽힌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내뻗친 아름드리 나무모습은 다른 팽나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모내기철에 모가 심어진 무논을 배경으로 서있는 모습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금천마을 팽나무는 마을 서쪽에서 흘러와 동쪽 바다로 들어가는 금천천 건너 남쪽 논 가운데에 삼각형 형태를 이룬 30여평의 풀밭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당산나무. 북구청이 세운 표지판에는 '노거수 지정번호 6. 지정일자 2000년 10월. 수령 100년. 수고(키) 12m. 나무둘레 422Cm. 관리자 금천마을. 소재지 울산광역시 북구 어물동 152번지'로 적혀 있다. 울산생명의숲은 '추정수령 100-110년. 수고(키) 7m. 가슴높이 둘레 3.32m. 뿌리부분 둘레 3.8m. 수관폭 25m. 용도 당산나무'로 밝히고 있다.

 금천마을의 당산나무 팽나무는 찬바람만 불어대는 휑한 들판에서도 특유의 강건함을 잃지 않고 있다. 더욱이 겨울바람도 아랑곳없이 푸른 잎을 지닌 송악에게 제 몸을 내주는 아량을 보이고 있다. 긴 겨울을 넘기기에도 힘든 터에 모처럼 큰 도량을 보는 것이 그리도 기쁠 수가 없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고목의 생동하는 기운을 느낀다.

 겨울하늘에 까마귀떼가 뒤덮고 있다. 까마귀떼의 음산한 울음소리가 한 차례, 또 한 차례 가슴 속을 헤집는다. 마을 앞 빈터에 차를 대고, 금천천을 건너 논 가운데에 나있는 풀밭을 지나 작은 콘크리트 포장길을 걸어 당집에 닿았다. 당집은 자연석과 블록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당집 곁 남서쪽 1m 높이의 축대 위에 당산나무 팽나무가 서있다.

 팽나무는 1.3m 높이에서 네 가닥의 큰 줄기로 나뉘었다. 서쪽에 두 개, 북쪽에 한 개, 그리고 직립해서 한 개가 솟았다. 직립한 것은 30Cm 위에서 곧 바로 7-11개의 큰 줄기를 내놓았다. 보는 위치에 따라 일곱개 로도, 열한개 로도 셈할 수 있다. 마치 2층 형태로 자리잡은 듯 하다. 위, 아래의 줄기는 굵기가 60-70Cm 쯤으로 차이가 없다.

 큰 줄기는 사방으로 작은 줄기를 내놓은 뒤에 연이어 무수히 많은 가지를 내질렀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아래쪽 논까지 축 처졌다. 지금은 앙상하게 줄기와 가지만 남은 알몸을 내보이고 있지만, 잎들이 무성한 지난 봄날에 찾았을 때에는 그 아름답고 풍만한 몸매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파란 어린 모가 심어진 논을 배경으로 한껏 연둣빛으로 물든 팽나무의 모습이 무한한 행복감에 젖게 했다.

 

 

 

 

   
 

 팽나무 몸통에는 당산나무임을 나타내듯 금줄인 새끼줄이 칭칭 매여 있다. 댓가지와 마른 명태도 꽂혀 있고, 오색천도 휘감겨 있다. 나무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간듯 막걸리병과 과일이 놓여 있다. 신목 팽나무의 영험에 기대려는 민초들의 신심을 엿볼 수가 있다.

 팽나무는 비록 잎은 떨구고 있지만, 육신은 송악에게 내주고 있다. 보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송악이 팽나무의 아랫도리에서부터 줄기와 가지를 차례로 감고 위로 뻗어 올랐다. 팽나무 몸통을 휘감고 솟은 송악의 파란 줄기와 잎들이 회색빛 팽나무 몸통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검은색과 푸른색의 조화가 찬 겨울바람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송악은 팽나무의 북서쪽보다는 볕이 잘 드는 동남쪽 줄기와 가지에 무성하게 휘감고 자랐다. 송악의 생장에서 새삼 자연이치를 깨닫는다.

 팽나무의 음덕에 기대어 사철나무와 곰솔도 자라고 있다. 팽나무 밑동에 바로 붙어 남동쪽에는 가느다란 사철나무가, 북서쪽에는 곰솔이 자라고 있다. 곰솔은 무성한 팽나무에 치여서인지 비비꼬인 앙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키는 4m 가량 되지만, 굵기는 15Cm 쯤으로 가느다랗다. 위쪽 잎은 거의가 말랐고, 몸통은 뒤틀렸다. 그래도 푸르름의 끈은 놓지 않아 삶에 대한 의지만은 왕성한 것 같다.

 우리는 팽나무에 대한 아련한 기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어린 시절 봄날이면 시눗대로 만든 새총에 포구나무로 불리는 팽나무의 파란 열매를 총알로 쓰며 친구들과 뛰놀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리라. 더욱이 선조들로부터 큰 귀염을 받아온 쓰임새 많은 나무이기도 했다. 그런 팽나무였기에 그 어떤 나무가 따를 수 없는 정겨움의 나무가 아니던가. 오늘 우리가 팽나무에 더욱 사랑의 손길을 보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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