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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한복판의 주전앞바다. 차고 맑은 날 속에 새들의 움직임마저 잔잔해 한 해가 가는 끝자락에 그 쓸쓸함을 더하고 있다.

절망 속에서 무엇인가 찾고 싶은 사람들이,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하루 만이라도 꿈꾸며 즐겁고 싶은 사람들이 바다로 온다.
 주전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구불구불하다. 한눈에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는 둘러가는 느린 시간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반듯해져가는 세상은 빨리 도달할 수 있지만 정겹진 않다. 대부분 파헤쳐져 늘 공사 중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남목을 관통해 주전으로 가는 길도 예외는 아니다. 곳곳에 포크레인과 덤프트럭들이 들고난다. 주전가는 길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겨울 한복판에 선 나무들은 홀가분하다. 한때 연분홍의 찬란한 봄빛을 자랑하던 벚나무들은 아직 서로 손잡을 듯 터널을 유지하고 있다.
 방어진수질개선사업소를 지나면 느닷없이 바다가 한눈에 꽉 찬다. 바다에 온 것이다. 군부대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몽돌의 해변에서 유일한 작은 백사장을 만난다. 소나무 몇 그루 단출한 해변에 시멘트 벤치만 쓸쓸하다. 겨울의 풍경은 늘 같다. 쓸쓸하거나 황량하거나.
 
#누구나 소원하나씩은 안고

해변을 따라서 난 길을 중심으로 바다와 집들이 나뉜다. 애초엔 새들의 땅이었다. 사람들이 집을 짓고, 길을 내고, 공장을 건설을 하는 바람에 밀려났다. 갯바위마다 갈매기들이 따개비처럼 앉아있다. 바람은 거칠고 파도는 높다. 그 한가운데 새들은 가끔 버거운 날갯짓으로 허공을 가르다 돌아온다.
 물새들 너머로 바다 한가운데 외로운 이득등대가 굳건하다. 너무 멀어 그 형체조차 아련한 등대는 정물처럼 서서 여행객들은 반긴다.

 수중여가 발달해 자주 배가 좌초되곤 했다. 그래서 세운 것이 이득등대다. 이득등대가 전형적인 등대 모양이라면 주전마을 방파제 등대는 탑모양이다. 방파제 끝에 홀로 선 탑등대는 무슨 구원을 위한 것일까. 붉은 색으로 단장한 등대의 몸엔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정식♡수연" "올해는 꼭 합격을" "홀로 와서 홀로 간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바다에 왔다. 어떤 이는 외롭고 어떤 이는 가슴 벅찬 감동이다. 또 누군가에겐 성찰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땅과 바다의 경계에 서서 다른 무엇인가를 꿈꾸고 느끼고 돌아간다.
 
   
▲ 수석을 찾아 움직이듯 정지하듯 천천히 걷는 사내의 눈빛은 밝았다. 몽돌해변은 전국에서도 이름난 수석 산지다.


#그 바다에 서면 풍경이 된다

온통 둥글다. 돌들도 둥글고, 해안도 둥글고, 사람들도 둥글다.
 아직 더 둥글어져야 한다고, 쉼 없이 파도에 몸을 내맡긴 조약돌은 이제 쪼개지고 쪼개져 발가락 사이에 낄 만큼 작아져 버렸다. 모난 곳 하나 없이 모조리 닮은꼴로 이루어진 몽돌의 바다.
 "그저 바다를 보러왔다"는 대구 젊은 처녀의 말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녀에게 이 바다는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는 열린 공간이자 세상의 끝이었다. 그 끝에서 그녀는 무엇을 보고 간 것일까. 그녀는 꽤 오랫동안 서성이다 썰물처럼 사라졌다.

 "너무 좋았요. 이만큼 잔 몽돌이 깔려있는 곳은 첨이에요" "물색도 너무 좋아요" 맞장구 치는 젊은 커플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찍고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종종걸음치는 연인들의 웃음은 바다를 배경으로 반짝거렸다.
 그 바닷가에 서면 누구나 풍경이 된다. 온통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상념에 잠기고 즐거워하고 희망을 품는다.

 시간 날 때 마다 수석을 찾아 이곳에 온다는 김기열씨는 벌써 수십년째다. "멀리 갈 수 없는 형편이라면 이곳이 제일이지요. 파도가 크게 뒤집어지면 가끔 좋은 놈이 눈에 보입니다" 눈 밝은 사람들의 취미생활도 베푼다. 이곳은 전국에서도 이름난 수석 산지다. 외지에서도 찾아올만큼 질 좋은 돌이 많다는 증거다. 몇시간이나 바닷가를 움직이듯 움직이지 않는 중년의 사내 너머로 흰 배를 뒤집고 덮쳐오는 파도만 여전하다.
 
   
▲ 보통의 등대와는 다른 탑형식으로 제작된 주전항의 등대. 붉은색으로 칠해진 몸에는 갖가지 바다를 찾은 사연들로 빽빽하다.


#더 나아갈 수 없는 끝에서의 간절함

간절히 원한다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땅과 바다의 경계. 바다의 시작이고 땅의 끝이다. 더 나아갈 수 없음에 끝에 서면 간절함이 커지고 간절함이 커지면 이뤄질지도 모른다. 끝과 마주치면 시작의 희망이 보이는 걸까.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상징에 지나지 않는 그 끝을 보러 온다. 누구는 즐거워하고 누구는 갈구하고 누구는 소리치는 그곳.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그들은 희망을 건져냈을까?
 시간은 분절적이지 않고 연속적인데도 사람들은 한 해의 끝과 시작 사이에서 일종의 의식을 찾는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꾼다. 하루가 저문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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