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여론조사기관이 40대 이상 중년남성들을 대상으로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60% 이상이 사극(史劇)이라고 응답했다. 이유는 남성 본연에 잠재된 에너지를 발동시켜, 현재의 절망적인 상태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톱니바퀴처럼 얽히고설킨 조직사회에서 무엇이고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현실에서 사극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무엇이고 제 뜻대로 한다는 데 매료되는 남성들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서릿발처럼 살아있는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요즘 유행하는 멜로드라마들은 숫제 채널을 끄고 산다. 어쩌다 아내가 이를 보고 있으면, "뭐 그런 걸 보고 있냐"고 나무라기 십상이다. 좋은 집에 좋은 차, 우아한 가구들과 값비싼 명품들을 즐겨 쓰는 부유층의 이야기가 태반이라 '못해 주는 미안함'이 앞서 울컥 화부터 낸다. 게다가 장모 등 처갓집 식구들이 백년지객인 사위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무슨 흥밋거리인 냥 아무런 걸림 장치도 없이 방영하는 연속극이다. 사위가 처갓집 식구들에게 욕을 먹거나, 아내가 이들 앞에서 역성을 들지는 못할 망정 한 술 더 떠 면박을 주는 경우까지 자주 등장한다.
 오직 물질만능에 우리 전래의 가부장적 가족윤리는 찾아볼 수 없다. 사위도 남편도, 아버지도 드라마 속에서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TV에 등장하는 광고까지 남자들 속을 뒤집어놓고 있다. 최근의 푸르덴샬생명 광고는 잔잔한 음악과 평화로운 흑백 영상 위로 "10억을 받았습니다"라는 미망인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원주택에서 세차를 하고 있는 이 여성에게 찾아온 한 양복 입은 신사는 다름 아닌 사망한 남편의 보험설계사다. "모든 것이 남편과의 약속이라고 했던 이 사람, 이젠 우리 가족의 라이프플레이너입니다"라는 내레이션에 이어 어린 딸과 밝은 표정으로 함께 비누풍선을 부는 여인의 모습은 많은 남편들의 심기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하다. 이를 본 어느 40대 남성은 "너무 노골적이라 섬뜩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모 아파트 분양광고에는 옛 연인이었던 두 남녀가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한 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이 되는 것으로, 묘한 기대감을 일으키게 하는 수법을 이용한다. 정상적인 가족관계에 금이 갈 수 있는 자극적 내용마저 무방비로 광고 시장에 노출되어 있다. 남성들의 어개가 겨울추위만큼이나 웅크려들게 하는 세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