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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회나무가 꽃을 피운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회화나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있는 때 아닌 겨울철에 꽃 이야기를 하는 뜻은 자연순환의 법칙을 재음미하기 위함이다. 회화나무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겨울철은 사철 늘 푸른 상록수와는 달리 잎 지는 낙엽수에게 있어서는 가장 처참한 계절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화려함에 감춰진 본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제 삶을 어찌 정의할 수가 있으랴. 사람 세상에서나 나무 세상에서나 통용되는 이치가 아닌가.

입신출세 상징 이자 행복수
늠름한 풍모에 기품 느껴져
병충해에 강해 가로수 적합

벌거벗은 겨울 나목(裸木)을 찾는 이유다. 나목에서 문리를 깨친다.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밤이면 메마른 손 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이야/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알고 있을까/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 안고/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신경림 시 '나목(裸木)'> 모를 리가 있으랴.

 회화나무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우리 나라에는 2000년 전 쯤에 들어왔다. 이름도 한자에서 유래됐다. 회화나무의 꽃을 괴화(槐花)라고 부르는데, '괴'의 중국 발음이 '회'이므로 '회화나무'로 부르게 됐다. 회나무와 홰나무, 회화목(懷花木)과 괴화(槐花)나무, 괴목, 괴수 등으로도 불린다.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를 입신출세의 상징처럼 여겨 선비들이 벼슬에 오르게 된 기념으로 집에 심었다고 한다. 회화나무를 '출세목(出世木)'으로도 부른 연유다. 집에 심고 가꾸면 행복을 가져온다고 하여 '행복수(幸福樹)'라고도 불렀다.

 또 '선비나무' 혹은 '학자수(學者樹)'로도 불렸다. 독창적이면서도 주위의 풍경에 거슬리지 않고 조화롭게 자라는 모습이 창조적인 학문의 길을 닮았다고 여긴 것이다. 영어로는 학자수를 딴 '스칼러 트리(Scholar Tree)'라고 한다. 학자수라는 이름의 유래는 중국 주나라 때의 '주례(周禮)'라는 책에 기록이 나온다. 궁궐의 바깥 문을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조정, 즉 외조(外朝) 가운데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그 아래가 최고 벼슬아치인 삼공(三公)이 앉는 자리. 회화나무는 삼공을 뜻하게 됐으며, 바로 조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로 받아들여졌다.

 

 

   
 

 주나라의 궁궐 예법을 따른 우리 나라에서도 궁궐 입구에 회화나무를 심고,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상징으로 여겼다. 창덕궁 돈화문 앞의 회화나무가 그런 예법에 따라 심어진 나무다. 우리 나라에서 회화나무 꽃을 가을 과거시험의 징표로 받아들이는 등 회화나무는 학자나 벼슬을 나타냈다. 옛 선비들이 이사할 때는 회화나무 종자는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도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어두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게 된다는 이야기까지 전할 정도다.

 회화나무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몸집이 크게 자라는데, 키가 30m가 훌쩍 넘고 가슴높이 둘레도 10m가 넘는 것이 많다. 달걀꼴 잎은 길이 2-6Cm, 넓이 1.5-2.5Cm로 7-17장이 어긋나게 달린다. 추위에 강하고 비옥한 땅에서는 생장이 매우 빠르지만, 척박한 곳에서도 잘 견뎌 이식이 쉽다. 공해와 병충해에도 강하여 도심의 공원수나 가로수와 풍치수로 적합하다. 전통적으로 정자나무로 많이 쓰였다. 자유분방하게 뻗어 나가는 가지가 대담할 뿐 아니라 호연지기의 기품까지 갖췄다고 하여 정자나무 가운데에서 최고급으로 꼽았다. 얼핏 보면 잎이 아까시나무를 닮아서 혼동하지만, 늠름하게 퍼지는 가지와 미끈한 줄기에서 풍기는 기품이 아까시나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8월에 새로 자란 가지 끝에서 조롱조롱 모여서 피는 유백색 꽃은 노란색 가운데에서 가장 기품 있는 색으로 쳤다. 황색 염료로 쓰였다. 색소 배당체인 루틴(rutin)을 함유하고 있어 의약품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한방에서는 고혈압과 지혈, 소염 등의 약재로 썼다. 꽃에는 꿀이 많아 벌들이 많이 모여 들고, 갖가지 꿀 가운데에서 제일 약효가 높다. 회화나무 꿀은 특히 항암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열매는 10월에 염주처럼 생긴 노란색 꼬투리가 특이하다. 이 꼬투리는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까지 나무에 달려 있으며 새들의 먹이로 이용된다.목재는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워 건축재로 쓰이거나 전통가구의 골재나 판목재로 쓰인다. 

망성리 망성마을 당산나무 자리
둘로나뉜 줄기 외과수술 흔적도
콘크리트 바닥 보호대책 아쉬워

 

 

  망성리(望星里). '별을 바라보는 마을'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마을. 울산 도심에서 20여리 떨어진 태화강 중류의 강촌.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 놓았는지요/망성리, 별을 바라보는 마을/별이 뜨는 동쪽을 향해 따뜻하게 열린 마을/순한 황소의 눈처럼 착한 창문이 있는 작은 집들/저물 무렵 조용한 기다림의 등불이 켜질 때/이 마을로 오는 별들 앞다투어 불을 밝히고/하늘 가득 메밀꽃 피어 저 숨막히는 별밭/별을 바라보는 아주 작은 마을 망성리/망성리 아주 착한 마을 망성리 (정일근 시 '망성리')>. 그 망성마을에 당산나무 '회화나무'가 겨울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서있다.

 망성마을의 당산나무 회화나무는 마을회관 서쪽에 있다. 앞쪽인 남쪽에는 작은 제당이 있고, 바로 뒤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 서쪽은 대숲이다. 울주군이 세워 놓은 노거수 안내판에는 '고유번호 2000-63. 지정일자 2000년 5월 3일. 수령(나이) 150-200년. 수고(키) 20m. 나무둘레 0.8m. 소재지 울주군 범서읍 망성리 78-1. 관리자 망성마을'이라고 적혀 있다.
 울산생명의숲은 '추정수령 200-250년. 수고(키) 13m. 수관폭 20.2m. 가슴높이 둘레 2.46m, 1.9m. 뿌리부분 둘레 3.7m'로 밝히고 있다.

 

 

   
 

 그루터기로부터 70Cm 높이에서 몸통이 남동쪽과 북서쪽 두 가닥으로 나뉘었다. 남동쪽 것은 15도 가량 기울어 솟았다. 2.5m 쯤에서 두 개의 큰 줄기로 나눠졌다. 외과수술한 흔적도 남아 있다. 큰 줄기 두 개 가운데에 한 개는 70도 가량 남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뻗었고, 다른 것은 직립했다. 남쪽 것은 2m 쯤에서 남서로 한 개, 그리고 남동쪽으로 한 개의 줄기를 내질렀다. 그 다음에 수많은 가지를 내뻗었다.

   직립한 큰 줄기는 2.5m 쯤에서 곧게 뻗은 것과 북서쪽 것, 그리고 남동쪽 것을 각각 한 개씩 내놓았다. 곧게 뻗은 것이 가장 많은 가지를 내뻗었다. 가지 맨 위쪽에 까치집 네 개가 매달려 있다. 까치들이 분주히 들락날락거리고 있다. 북서쪽 것은 또 곧 바로 직립한 것과 북동향한 것 두 개의 줄기로 나뉘었다. 나뉘자마자 한 개의 작은 줄기는 곧게 뻗었고, 한 개는 북동향했다. 곧은 것은 1m 쯤에서 또 다시 두 개로 나뉘었다. 직립한 것은 1.5m 쯤에서 많은 가지를 내놓았다. 북동쪽 것은 70도 가량 굽어져 뻗다가 1.7m 쯤에서 큰 줄기는 남향하고 다른 것은 북으로 휘어져 솟았다.

 마을회관 바로 앞에서 보면 나무가 마을길보다 1m 아래 지점에 있기 때문에 마치 세 그루의 회화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것 같다. 맨 아래에 세 개의 몸통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각각 두 개씩 모두 여섯 개의 큰 줄기가 또 한층을 만들고 있다. 상하 두 층이 제법 조화를 이루고 있다.
 회화나무 근처에는 고목(古木) 팽나무도 자라고 있다. 망성교를 건너자마자 마주치는 막국수집과 그 뒤쪽에 있는 정자 완계정(玩溪亭) 입구에 모두 11그루가 있다. 울주군이 세워 놓은 노거수 안내판에는 '수령 100-300년. 수고(키) 15-20m. 나무둘레 1.2-1.5m'라고 적혀 있다. 하나 같이 오랜 연륜을 지닌 나무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럼에도 보호대책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음식점에 붙어 있는 서너 그루의 나무는 음식점의 필요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큰 줄기가 잘려 나갔다. 당산나무 회화나무의 상태는 팽나무보다는 낫지만, 결코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그 터가 비좁은데다 주변이 콘크리트로 돼있기 때문이다.

 고목(古木)이라고 하여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랴/불어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랴/잎들 더러 썩고 떨어지는 어둠 속에서/가지들 휘고 꺾기는 비바람 속에서/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손을 타고 흐르는 숨죽인 흐느낌이/어둠과 비바람까지도 삭여서/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키운다면/너희 왜 모르랴 밝은 날 어깨와 가슴에/더 많은 꽃과 열매를 매달게 되리라는 걸/산바람 바닷바람 보다도 짓궂은 이웃들의/비웃음과 발길질이 더 아프고 서러워/산비알과 바위너설에서 목 움추린 나무들아/다시 고개들고 절로 터져나올 잎과 꽃으로/숲과 들판에 떼지어 설 나무들아 (신경림 시 '나무를 위하여')>. 우리가 그 고목들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이랴? 각별한 정성으로 보듬어야 할 일이 아니고 정녕 무엇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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