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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바람을 뚫고 도덕산 정상에 오른 가지산 산악회원들이 밝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동장군이 한반도 이남까지 내려와 맹위를 떨치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사람들은 저 마다 집안에 꼭꼭 숨어 있는지 도로는 차량이나 사람의 발길이 한산하였고 겨울 아침의 공기는 몹시 차가왔다. 이날 산행은 9시 10분경 울산 신복로터리를 출발 10시 20분에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위치한 독락당 앞 주차장에 도착하여 맨손체조로 몸을 풀고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이 지은 독락당을 1차로 답사했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1491∼1553)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이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건립된 이 독락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온돌방(1칸× 2칸)과 대청(3칸× 2칸)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짜임새는 오량(五樑)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쇠서 하나를 둔 초익공(初翼工)의 공포(拱包)로 꾸몄다.
 대청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고 종도리를 받친 대공(臺工)의 모양이 특이하다. 독락당 옆쪽 담장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살창을 통하여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특출한 공간구성이며, 독락당 뒤쪽의 계정(溪亭)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 도덕산 산행의 들머리 정해사지 13층 석탑.

 


 독락당 뒤쪽의 정자 앞은 시냇물이 흐르고 고목과 숲이 어울려서 무척이나 운치가 있었다.
 독일의 어느 건축가는 "독락당의 운치에 탄복을 하여 독일에서 독락당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본 따서 집을 지었는데 현존하고 있다"고 하였단다. 아무튼 ,옥산서원, 독락당,양동마을은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록되어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토록 잘 보존된 으뜸가는 한옥 마을이다. 독락당을 약10분 동안 답사를 하고 도덕산 산행의 들머리 정해사지 13층 석탑으로 향하는데 겨울바람이 유난히도 거세게 일행의 얼굴과 귀를 차갑게 때린다.

 정해사지 13층 석탑에서 인원점검과 함께 10시 45분경 정상을 향해 도덕산의 겨울바람을 가르면서 올랐다 .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로 군락을 이루어 일행을 맞이하는 숲은 그나마 산을 오르느라 땀을 흘려서인지 따뜻했고 머루나무와 다래나무를 보면서 내년 봄에는 두릅도 따고 머루와 다래도 따먹으러 다시 한 번 오자고 옆에 오는 회원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그는 깜짝 놀라며" 머루다래가 어딨어? " 라고 하면서 기뻐한다. 저기 저 나무가 국산 키위(다래)인데 시간이 되면 내년에 한 번 오자고 하였다. 어래산을 등 뒤로 하고 도덕산 능선을 향해 오르는 산길은 양지바르고 바람도 없고 따뜻하였다, 등짝에는 어느새 땀이 맺혀있었고 도덕산의 동장군도 우리회원들에게는 기가 약해 힘을 못 쓰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회원들을 바라보니 저마다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능선에서는 동장군이 기다렸다는 듯이 찬바람을 날리며 유세를 부렸지만 정상을 향한 우리일행의 의지앞에 혀를 내두르며 줄행랑을 쳐버렸고, 12시 10분에 정상을 약 10분 남겨두고 따뜻하고 양지바른 능선에서 마른 나뭇잎을 자리삼아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잠시 후 뒤돌아보니 어느새 일찍 식사를 일찍 마친 회원들은 모자를 눌러쓰고 귀를 막고 덜덜 떨고 있다. 다른 일행들이 떨고 있으니 너무 오래 떨면 특히 초보자는 몸이 굳어서 마음 먹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비탈길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일단 출발 신호를 보내고 출발하였다. 겨울철 안전사고는 살짝만 넘어져도 심한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산악회는 다행히도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다.

 

 

 

 

   
▲ 자연과 하나가 된 공간구성과 멋진 운치로 일행의 마음을 사로잡은 독락당에서 산행 전 인원점검을 하고 있다.

 


 정상을 향해서 완만한 능선길을 5분~10분 쯤 오르자 드디어 정상 도덕산이다. 정상은 영천과 포항 경주 시내가 한 눈에 보였고 기념사진을 찍고 정상식을 간단히 치른 후에 1시 20분쯤에 도덕암 길로 하산하였다. 하산길은 조금 비탈졌지만 얼음과 눈이 없어서 모두 빨리 내려올 수 있었다.
 1시 50분에 천년고찰 도덕암에 도착했다. 도덕암은 통일신라 35대 경덕왕(742~765)때 세운 천년고찰로 절의 세월을 쓰다듬어보면서 절 마당에서 절 아래를 바라보는 것도 명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산행시간이 짧아 하산 후 양동마을을 둘러보았다.

 옥산리 옆 양동마을은 여강 이씨와 손씨의 집성촌인데 이 마을 역시 300년에서 500년 된 고택이 현재까지 잘 보전이 되어있는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유산이다. 회제 이언적 선생의 본가(중종이 지어 하사한 집)를 비롯한 유서 깊은 한옥마을에 와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랑채. 본채 , 그리고 조상을 모시는 제실 과 언덕아래의 초가집들 모두 옛 모습 그대로 인 듯했다. 오늘 산악회 회장님과 모든 회원님들이 가족과의 황금연휴를 버리고 참여한 도덕산 산행은 고택처럼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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