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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울산을 출발해 경부고속도로와 88올림픽고속도로에서 거창IC로 빠져나와 1089변 지방도와 37번 국도를 이용해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덕유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설원인 덕유산 등반은 이번이 두 번째다. 10여 년 전 흑단 같은 밤길을 걸으며 정상까지 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예전의 감흥과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덕(德)으로 가득한 모산은 나그네를 포근히 감싼다.

 이곳 '무주구천동'이란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 이 지명은 라제통문을 지나 36㎞에 이르는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까지 일컫는 말이다. 또 구천동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심이 쏠린다. 이는 9,000 명의 승려가 도를 닦았던 장소라는 말이 있고, 구씨와 천시가 많이 살아서라는 말과 9,000 명의 후국무사가 수련했던 장소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무주리조트-설천봉-설천레스토랑-향적봉 코스

 덕유산은 오래전부터 영ㆍ호남 지방의 대표적인 산으로 북쪽으로는 금강, 동쪽으로는 낙동강의 수원이다. 구역상 전북 무주군에 위치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전북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의 2개도와 4개 군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이 산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하다. 서해의 습한 대기가 덕유산의 높은 벽에 부딪히며 눈을 뿌려댄다. 아랫동네는 쨍하게 맑아도 산 정상부는 폭설이 내리고 마는 이유이기도 하다.

 덕유산 겨울산행은 다른 계절에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눈 쌓인 완만한 능선 길을 올라 정상인 향적봉까지 눈옷을 입은 철쭉군락과 주목, 구상나무 숲의 설화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이 산의 가장 큰 매력은 일종의 서리꽃인 상고대다. 산 아래 금강에서 피어 오른 습기가 안개가 되고 산자락으로 올라와 추위와 맞서다 나무에 얼어붙고만 서리꽃이다. 설천봉에서 향적봉 사이에 가장 많이 피어 있는 상고대로 인해 산은 빛을 발한다. 특히 주목과 구상나무는 태백산, 한라산, 지리산 등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나무다. 이러한 나무에 상고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겨울이 준 선물이 아닐까.

   
 
눈 많기로 유명…서리꽃 '상고대'에 감탄 절로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이용해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문명의 이기 곤돌라에 몸을 싣고  쉽게 산을 오르며 아름다운 설경 속에 파묻힌다. 곤돌라에서 내려다보는 순백의 세상은 감동이다. 때 묻은 감정의 찌꺼기마저 하얗게 변한 느낌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곤돌라는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m) 아래 설천봉(1522m)에 데려다 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뽀드득' 설천봉 일대에 내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내지르는 유혹의 소리에 사람들은 굴복하고 만다. 누가 어른인지 누가 아이인지도 모를 만큼 눈밭 위를 뛰놀기 시작한다. 눈밭 위를 구르고 눈을 뭉쳐 던지며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가 설원의 절경을 만끽한다. 눈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설천봉에는 그림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설천봉레스토랑이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사진가들이 이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 레스토랑 안에는 장작을 태워 온기를 전하는 난로가 있어 몸을 녹이는데 그저 그만이다.
 레스토랑에서 덕유산 왼쪽 50m구역에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는 나무계단이 이어져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다. 비록 정상까지 오래 걷지는 않지만 영하 10도를 넘는 추위를 견디려면 두둑한 옷과 아이젠을 준비해야 안심하고 오를 수 있다. 향적봉 정상까지 빠른 걸음으로 20분 정도, 천천히 걸으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화려한 눈꽃터널과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사는 주목나무가 발목을 붙든다. 아무리 춥다해도 이 아름다운 절경을 어찌 놓칠 수 있을까. 눈꽃송이가 포도송이처럼 몽들몽들하고 철쭉에 내린 눈꽃은 사슴뿔처럼 툭 불거져 있다. 아름다운 눈꽃세상에서만이 볼 수 있는 진풍경을 담기 위해 언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눈밟는 소리와 펼쳐진 절경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덧 정상인 향적봉에 이른다. 덕유산은 한라산·지리산·설악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향적봉 정상은 공간이 넓고 주변 산봉우리들이 발아래 펼쳐질 정도로 시야가 탁 트였다.

 백두대간의 첩첩 산릉이 파도마냥 일렁이고,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 가야봉, 적성산, 속리산, 마이산이 마치 손끝에 닿을 듯하다.예기치 않게 눈이 한 차례 뿌려졌다. 눈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도구도 없을 것이다. 마음에도 눈이 내려 하얗게 정화시킨다. 선명한 발자국도 눈은 뒤덮고 말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마술을 부리는 눈이지만, 내 발자국 보다 더 큰 자국을 남기고 싶어진다. 순백의 설국에 내 마음 한 자락을 떨군다.  글·사진=최재필기자 us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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