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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맑아 아찔한 동해의 속살을 파고드는 블루로드 B코스. 푸른 해송숲과 갯바위, 백사장으로 연결되는 구간으로 오랜시간 사람의 발길이 없던 곳이라 자연그대로의 길맛을 선사한다.

블루로드는 전체구간이 17km다. 하루에 다 걷기는 무리다. 그래서 3코스로 나뉘었다. 그렇다고 딱히 완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자동차를 타고 스쳐도 충분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A코스는 대게의 집산지 강구에서 출발해 고불봉(235m)~풍력발전단지~해맞이공원에 이르는 17.5㎞(6시간 소요)다. 블루로드의 백미는 B코스다. B코스는 해맞이공원~석리~대게원조마을~축산항 죽도산까지의 15㎞ 구간이다. 5시간 정도 걸린다. 거친 갯바위길과 해송숲길의 묘미가 으뜸이다. 죽도산~대소산 봉수대~목은 이색 산책로~괴시리 전통마을을 거쳐 종착지인 고래불해수욕장까지 17.5㎞의 길이 C코스다. 약 6시간 걸린다.

 요즘처럼 한파가 몰아치는 와중에도 적잖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전까지 주중에는 하루 평균 200여명, 주말에는 400여명이 전국에서 찾았다고 한다. 이 길은 지난해 6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시범사업지로 선정됐다.
 전 구간에는 도로 바닥에 노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거나 방향표시판과 안내판 등이 설치돼 있어 찾기가 쉽도록 했다. 길 중간 중간에 지정된 식당 등 5곳에 안내 팸플릿과 길을 걸었다는 확인 도장을 찍어줘 작은 재미를 준다.
 영덕군은 내년까지 모두 40억원을 들여 아스팔트 구간은 줄이고 갯바위 길을 확대해 더욱 운치있고 안전하게 다듬을 계획이다.
 
   
▲ 갯바위와 백사장 그리고 해송길을 걸을 수 있는 블루로드의 백미가 B코스다.


#대게원조마을 차유

오늘 걷는 길은 B코스다. 해맞이공원에서 30여분 걸으면 어촌체험마을인 석리다. 음식점과 민박집이 눈에 들어온다. 석리를 벗어나면 경정리다. 경정리는 대게 원조마을로 알려진 차유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정3리에 가면 오매 향나무를 만날 수 있다. 원래 경정3리는 오두산(烏頭山)과 매화산(梅花山)에 둘러싸여 '오매'라고 불렸고, 뒷산 모습이 까마귀가 춤추는 것 같다해서 '오무'(烏舞)라 불리기도 했다. 마을 아래 야트막한 언덕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향나무가 언덕 전체를 뒤덮고 있다. 처음 마을을 개척할 때 대나무, 향나무, 소나무를 심었는데,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다른 나무는 쓰러졌고 향나무만 남았다.

 차유마을은 대게원조마을이다. 고려 때부터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대나무 마디를 닮았다해 대게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젠 원조는 너무 흔해 원조의 원조까지 생겨난지 오래다.
 차유마을은 고려 충목왕 2년(1345)에 초대 영해부사 정방필이 대게가 많이 잡힌다는 소문에 이곳을 순시하다가 마을 형상이 마치 소의 등에 얹는 안장과 같이 생겼다고 해, 우차의 차(車)자와 지나갈 유(넘을 踰)자를 따서 차유(車逾)마을로 이름지었다. 마을 내력을 따라 영덕대게원조마을로 명명됐다. 지금은 작고 한적한 마을이지만 원조의 자부심은 여전하다. 마을입구에 선 대게탑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잡히는 대게는 알이 차고 맛도 더 좋아 다른곳 보다 더 비싼 값에 팔린다.
 
   
▲ 죽도산 등대로 오르는 길옆으로 시누대가 무성하다. 정상에 서면 걸어온 길과 가야할 길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길

경정에서 축산항까지 이길은 '블루로드'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까지 숨겨진 길이었다. 군사작전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다. 문민정부 들어 출입이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일부 낚시꾼이나 알고 찾아들던 어렵고 험한 길이었다.
 해송 숲 사이로 끊어질듯 가는 길들이 연결된다. 그 너머로 옥빛 바다가 출렁인다. 바람이 세다. 허연 배를 뒤집으며 달려드는 파도의 기운이 산을 흔든다. 길은 숲과 해변을 오락가락한다. 험한 갯바위에는 어김없이 나무데크가 놓여 걸음을 쉽게 한다.

 도로와는 이미 멀어져 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다. 해송 숲을 가로지르는 바람과 파도 소리만이 공간을 넘나든다. 가끔씩 바람도 자고 파도도 끊어지는 순간이면 문득 정적에 휩싸인다. 별안간 바다 내음과 솔향기가 어울린다. 자박자박 걷는 걸음에 향기가 따라오고 바람이 따르고 파도가 기웃댄다. 조용하고 절경인 자연그대로의 모습이다.

 아직 잔재가 남은 군 초소들이 드문드문하다. 낡고 오래된 이젠 빈약한 벽돌 블록안에서 바다를 뚫어지게 경계하던 청춘들은 지금쯤 어디로 갔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일기도 했다.
 세월은 흐르고 기억은 그 순간에서 멈춘다. 그 청춘들이 먼 후일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많이도 변했으리라. 
 축산항에 들어서기 직전, 작은 해변엔 반달모양의 작은 백사장 세 개가 연속이다. 크지 않고 아담하다. 험한 바위들 속에서 용케 자리잡은 모래밭엔 사람의 흔적이란 없다. 차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고 산 아래 절벽을 등지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힘들다. 동해의 속살이 보여주는 절경이다.
 
#오랜 시간은 섬을 산으로 만들고

숲길이 끝나면서 별안간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다. 곱게 파도가 쓸고 가 곱디 곱다. 백사장은 파도를 닮아 바람무늬를 만들었다. 눈앞에 우뚝 선 산과 등대가 보인다. 축산항과 죽도산이다.
 축산항은 1924년 조성된 영덕의 대표적인 어항이다. 가자미, 문어, 오징어를 비롯해 근처의 강구항과 마찬가지로 대게로도 유명하다. 대게 위판이 열리는 전국 5개항 중 한 곳이다. 와우산이 북풍을 막고, 대소산이 서풍을, 죽도산이 남풍을 막아 예전부터 최고의 피항지로 이름 높았다. 축산이라는 이름은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다.

 와우산에 발원한 축산천이 축산항 왼쪽으로 흐른다. 그 맞은편에 죽도라는 섬이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민물과 바다가 만나면서 모래가 퇴적되고 섬은 육지와 연결됐다. 그렇게 시간은 섬을 산으로 만들었다. 죽도산이다.
 죽도산은 이름처럼 대나무가 많은 산이다. 이곳의 시누대는 수백동안 화살로 쓰였다. 영해부에서 나라에 진상도 했다.

 축산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좁고 긴 현수교가 놓였다. 건너면 바로 죽도산과 연결된다. 가파른 길이지만 나무데크가 놓여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중간 중간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많아 스스럼없이 쉴 수 있다. 포항에서 왔다는 송대경씨(38) 걷는 재미가 있는 길이라고 했다. "갯바위와 숲, 그리고 바다가 함께해 지루하지않고 늘 새롭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중 틈을 내 두 번째로 이 길을 걷는다는 그는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진 활기찬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아직 등대가 공사 중이라 출입을 가끔 통제하기도 한다. 인근에 아직 철수하지 않은 군 레이더기지가 있다. 등대에서 보면 지나온 길들이 아련하게 펼져진다. 숲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숨는 길 위로 사람들이 움직인다. 북으로 보면 축산을 지나 대소산과 괴시리 전통마을로 이어지는 길들이 희미하다. 아직 가지 않은 길은 멀고 아득하다. 해안가를 따라 굽굽이 도로가 펼쳐져있다. 차를 위한 길은 겸손하지 못하지만 이곳은 예외다. 막히면 돌아가고 높으면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절경을 보기위해 감수해야 하는 구불길이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 축산천과 동해가 만나는 곳에 좁고 긴 현수교가 놓였다. 다리위에서 보면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바다가 일품이다.


맛과 전통의 이중주 탐방길

#A코스와 C코스는?
A코스는 강구항에서 곧장 비탈길을 올라 고불봉까지 구불구불 산길이다. 고불봉 길은 비교적 평탄하지만 숲과 잡목에 가려 바다 조망이 좀 답답하다. 하지만 고불봉 정상(235m)에 서면 천혜의 전망대가 따로 없다. 서쪽으로 영덕읍내와 오십천 물길, 동쪽으로 망망한 동해바다와 풍력발전단지가 한눈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풍력발전단지까지도 만만치않은 길이다.

 비탈진 산길을 거쳐 찻길을 건너고, 다시 비탈길을 한동안 걸어야 풍력발전단지에 들어선다. 산불로 황폐해진 산등성이에 영덕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섰다. 까마득한 높이의 발전기가 24기다. 이곳에서는 연간 9만여MW의 전력이 생산된다. 영덕군민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태양, 바람, 물, 지열,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신재생에너지의 생산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관과 캡슐형 오토캠핑장, 비행기 전시장등 있어 볼거리도 다양하다.

 풍력발전단지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면 해맞이공원에 당도한다. 이곳 역시 산불이 나 황무지로 변한 산비탈이었다가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공원 한켠에 대게 집게발이 등대를 물고 있는 듯한  창포말 등대가 우뚝 서 있고, 공원 곳곳에는 야생화 꽃밭과 루미나리에가 설치돼 밤엔 한 폭의 동화 같은 풍광을 선사한다.

 C코스는 산을 넘어 다시 바다와 만나는 길이다. 대소산 봉수대를 지난 고려말 학자인 목은 이색의 출생지로, 200여년 된 전통가옥이 밀집해 있는 괴시리 전통마을을 지난다. 다시 산을 내려가 대진리를 거쳐 고래불 해수욕장까지 이어진다. 대소산(278m)은 높지 않지만 정상에 있는 봉수대까지 내내 오르막이 이어지다보니 제법 숨이 가쁘다. 이 길은 축산과 영해를 잇는 옛길이었다.

 고려 말 문신이자 유학자인 목은 이색은 괴시마을에서 태어났다. 괴시마을은 고려 말에 함창 김씨가 처음 터를 잡으면서 생겼다. 함창 김씨는 이색의 외가이며 선생의 외조모가 지금 괴시마을 이루고 사는 영양 남씨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목은 이색 기념관과 생가 터가 있다. 목은이 원나라에 유학할 당시 대학자였던 구양현의 고향마을인 괴시처럼 시야가 넓고 풍광이 아름답다해서 괴시(槐市)로 개명했다. 고가옥 30여 채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소나무 숲과 백사장이 이어지는 '고래불'은 목은 이색이 고래들이 하얀 분수를 뿜으며 노는 것을 보고 '고래가 노는 펄'이란 뜻으로 '고래불'이란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했다. 해수욕장 북쪽 끝엔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고래조형물과 음악분수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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