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근대 포경사 자료로 활용방안 연구해야"
장생포 일제'신명신사' 방치
2012-12-11 김주영
| ▲ 방치된 신명신사터 |
1927년 일제 강점기 때 포경업하던 일본인들이 건립
전국서 손꼽히는 보존상태 사료적 활용 가치 충분해
치욕의 현장이라도 역사적 맥락 잇는 단초될 수 있어
고래문화마을 조성사업에도 포함되지 않아 아쉬워
일제강점기 울산 지역에서 이뤄진 포경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료이자,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보존상태를 가진 장생포의 일제 '신명신사(神明神祠)'가 여전히 방치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어 이를 2014년 조성되는 남구 고래마을에서 일제시기 생활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하자는 지적이다.
남구 장생포동 212-2번지. 장생포에서 가장 지표가 높아 '천지먼당'이라 불리기도 한 이곳에는 지난 1927년 장생포 일대에서 포경업 등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신명신사가 위치해 있다. 현재는 건립연대와 목적, 당시 일본인과 장생포민 간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새겨진 건립비와 기단, 축대 일부만이 남아 있지만 이정도의 유물상태만으로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보존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울산시와 남구는 지난 2008년 처음 이 신사를 역사자료로 활용하자는 지적이 나온 이후 표지판 등은 세웠지만 여전히 이를 울산 근대 포경 역사를 다루는 유물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 ▲ 신사 계단에 새겨진 당시 기록 |
신사는 1900년대 전후 전국의 각 면마다 하나씩 조성돼 그 갯수만 1,400~2,000여개로 추정되지만, 광복 이후 국민들의 반 정서로 훼손되거나 개발로 그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됐다. 6개의 신사가 있었던 울산 역시 현재 신명신사와 북정동 울산신사만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결국 장생포와 같이 개발이 덜 된 군산이나 소록도 등에만 남아있게 됐으며, 최근엔 아픈 역사도 역사라는 인식이 차츰 퍼지면서 일제시기 유적이라 해도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근대유산자료로 활용하는 지자체가 많다.
김진곤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은 "일제시대 일본이 세운 신사들 중 이정도 형태나마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다"며 "좋든 싫든 신명신사는 식민지배라는 치욕스러운 역사의 한 증거이니만큼 그 같은 내용을 기억하고 이를 활용하는 역사공간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남구가 200억원을 들여 내년에 조성예정인 고래문화마을에는 1960년대 이후 마을 모습만 담아 신사를 비롯해 한국 근현대 포경이 시작된 일제시기 상을 조명하는 자료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을 예정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작은 전시관과 같은 공간이라도 만들어 이들 자료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생포 포경사를 주제로 활발한 연구를 해온 허영란 울산대 교수는 "신명신사를 소록도의 사례처럼 복원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남은 부분을 객관적 역사자료로 활용한다면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특수한 양상으로 나타난 장생포를 이해하는 한 자료가 된다"며 "특히 당시 일본에서 유입된 포경자본이 이 지역의 포경업을 어떻게 전개시키고 사람들의 생활상을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는 단초로서, 울산을 너머 한국 근대포경사의 단면을 이해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2014년 조성되는 고래마을이 사람들이 가볼만한 곳이 되려면 하드웨어 인프라 뿐 아니라 이를 채우는 소프트웨어 역시 알차야 하는데 신명신사를 비롯한 일제의 잔재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은 이곳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의 말처럼 장생포 내에서 밝혀진 일제 관련 자료들은 신명신사 뿐 아니라 본점이 일본에 있던 동양포경주식회사 등 굵직한 포경회사와 해산물을 취급했던 모리노 상회나 오카다형제상회, 소간시치마츠 어장 등의 여러 어장, 유곽업을 했던 동양관까지 다양한 자료가 있다.
| ▲ 이정표 |
이들 자료는 비록 일제와 관련된 내용이지만 최근 역사와 문화에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야기를 입히는 문화콘텐츠 작업이 각광받는 만큼 이를 객관적인 사료로 삼아 가상마을과 같은 전시유물을 만들어 고래문화마을 내에 전시하면 당시 생활상을 이해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래문화재단 고정구 사무국장은 "사료를 활용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업에는 시초와 결말 등의 흐름이 있어야 하는데 1960년대라는 근현대 고래마을의 측면만 살린다면 그 토대를 만든 역사적 맥락은 끊긴 채 한 시대상밖에 담을 수 없다"며 "고래문화마을의 시초이자 한국 포경업의 전개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일제시기의 자료를 활용한 작은 공간이라도 만든다면 포경 근현대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구 관계자는 "조성예정인 남구고래마을의 경우 장생포 포경업이 절정에 이르던 1960년대의 장생포 모습을 복원할 계획이어서 일제시기 등 그 이전 시기는 다뤄지지 않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김주영기자 usk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