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산적'…[14] 태화산(74)
정축년에 순흥이 폐부가 된 후 고치령과 마구령을 넘어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장꾼들이 넘어 다니던 길은 토끼나 고라니가 다니는 길로 변했다. 정축년에 목숨을 걸고 소백산을 넘어와 영월에 자리 잡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순흥은 역모의 고장으로 낙인찍혀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렸다.
정축년으로부터 십일 년이 지난 무자년 9월이었다. 영월에는 때 아닌 손님이 들이닥쳤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의금부도사가 식솔들을 거느리고 영월을 방문했다. 식솔이라 봐야 젊은 새댁과 똘똘한 아이들 셋이었다. 큰 아이 하나는 사내아이고 아래로 둘은 계집아이였다.
의금부도사는 다름 아닌 태화산 자락 각동 마을 출신의 임영복이었다. 그렇게도 사대문 안에서 갓을 쓰고 싶어 했던 꿈을 이루었다. 정축년 시월에 영월에서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임영복은 한양에 올라와 결혼을 했다. 신부는 당연히 윤미였다. 윤미는 이미 한 대감의 아이를 가져 배가 불러오려던 참이었다.
임영복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아이를 낳아 잘 키웠다. 아이의 얼굴도 친 아버지인 한 대감을 빼다 박았다. 한 대감도 윤미가 낳은 아들이 자기 자식인 줄 알고 있었다. 어쩌다 아이를 만나면 친자식처럼 살갑게 대했다. 신기하게도 어린아이는 제 친부를 알아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 대감을 만나면 방긋방긋 웃었다. 임영복은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아이가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라고 생각했다.
임영복은 영월 관아에 들어서자 곧장 관아 마당 한구석에 있는 바윗덩이로 다가갔다. 바로 이십 년 전에 자신이 각동강변 돌밭에서 메고 온 것이었다. 쌀 두 가마 무게는 족히 나갈 바윗돌에 선명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뾰족한 뼝대바우가 늘어서 있고 그 위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바위그림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동안에 영월 군수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관아 마당의 바윗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영월 군수는 자신의 인사도 받지 않고 마당 구석에 있는 바윗돌을 쓰다듬고 있는 의금부도사를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리. 그림이 참 묘하게도 생겼습지요?"
군수가 임영복 곁으로 다가가 아양을 떨었다. 그때서야 임영복은 군수를 돌아보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 바윗돌을 치우지 않고 잘 보관하고 계셨군요."
"그럼요. 전임 군수님이 한양으로 옮겨 가려는 걸 소인이 말렸습지요."
"잘하시었습니다."
"혹시 나리께서 한양으로 가져가시렵니까?"
"아니요. 이 무거운 걸 왜 한양으로 가져가겠소. 여기 이 자리에 오래도록 놓아두시구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제 안으로 드시지요."
임영복은 영월 군수와 마주 앉아 특별지시를 내렸다. 영월 군수는 자신의 출셋길과 연결된 일이라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그날 저녁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진수성찬을 차린 군수는 관사 안방에 비단 금침을 깔아 잠자리를 준비했다.
임영복은 가족들을 관사 안방에 들게 한 뒤 자신은 관사 문간에 딸린 골방으로 들었다. 이십 년 전에 자신이 며칠 동안 묵었던 방이었다. 자리에 누우니 예전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정축년의 변란이 끝나고 마구령의 산적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개중에는 남쪽으로 내려가 안동이나 예천으로 나가 남의 집 머슴으로 들어간 자도 있었고 남한강에서 떼꾼으로 자리 잡은 자도 있었다. 더러는 소백산을 누비며 약초를 캐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전에 산삼을 캐서 남대 주막거리에서 신나게 놀았던 산 사람은 그 후에도 해마다 좋은 산삼을 캤다. 그 덕분에 영춘에 땅마지기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남대 주막거리의 색시와 살림을 차린 것은 물론이었다.
남대리 주막집들은 장꾼들의 걸음이 끊어지자 모두 장사를 걷어치우고 뿔뿔이 흩어져 갔다. 털보는 영춘에 조그마한 한의원을 차렸다. 소백산에서 약초를 채취하기도 하고 몸에 좋은 약을 조제해 내다 팔았다. 특히 뼈가 부러진 환자를 잘 고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멀리 한양에서 털보를 모셔가기도 했다. 털보는 과부 장가를 들었는데 상대는 바로 마구령 초입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풍기 댁이었다. 풍기 댁은 주막에서 죽을 고비를 용케 넘기고 산으로 도망쳤었다. 며칠 동안 산에서 헤매다가 기진하여 쓰러졌을 때 천우신조로 털보를 만날 수 있었다.
정축년의 변란이 끝나고 몇 개월 후에 태화산 자락의 동네에 절름발이 사내가 나타났다. 오른쪽 무릎이 굽혀지지 않는 뻗정다리였다. 절름발이는 동네 사람에게 소백정이 사는 집이 어딘가 물었다. 그 후로 절름발이는 소백정네 골방에서 함께 살았다. 낮에는 소백정이 짐승을 잡는 곳에 따라다니며 일을 거들었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항상 각동 돌밭에 가서 밤늦도록 지내다 돌아와 잠을 잤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가 밤마다 돌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더러 한 번씩 돌밭에서 딱딱 소리가 나는 걸 들은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십 년 세월이 흐르자 절름발이 사내도 소를 잡는 게 백정 못지않았다. 쇠망치로 소의 머리를 치는 것은 죽어라하고 기피했지만 쓰러진 소에게 달려들어 살을 발라내는 솜씨는 백정보다 나았다. 일곱 치쯤 되는 무쇠 칼을 잡고 살 속에 숨어 있는 뼈를 발라내는데 보는 사람도 탄복할 정도였다. 작업할 때는 완전히 몰입되어 해치웠는데 한 번도 실수로 칼날이 뼈를 건드리는 법이 없었다. 김태환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