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닮은…보이지 않는 분단의 철벽에 마음이 아려오다
[주말ON-감마르조바, 조지아] 6. 아름다움의 끝에서 만나는 국경
'쳇바퀴 같은 일상 하루쯤 벗어 놓고 / 가랑잎 묻힌 골을 한나절 올라가면 / 억새꽃 구름을 흩는 하늘 아래 산성리 // 산보다 가난이 싫어 모두들 떠났는가 / 빛바랜 분교 한 채 우두커니 남은 고원 유자 빛 물든 노을은 저렇게도 고운데 // 방 한 칸 부엌 한 칸 그만하면 넉넉하리 / 버려진 산밭에는 더덕 씨나 뿌려두고 / 너와 나 이름 없이 묻혀 살고지고 한세상'(조동화 - 산성리에서)
하행길 작년에 돌아섰던 험한 길로 다시 들어서다
늘 외우던 시다. 경주에서 산내로 가다가 산 어디쯤에서 우편으로 올라가면 있는 산성리, 학창 시절 늦가을 녘에 선생님과 이곳에 함께 갔었다. 그때는 몰랐다. 선생님의 이런 소망을, 아마 오늘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코카서스산맥 너머로 겨우내 차가운 눈발이 들이치면 통신도 전기도 끊기지만, 그 불편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동무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꿈에도 나올 법한 아름다운 카즈베기를 뒤로 하고 다시 하행 길에 나선다. 이 나라의 국가명이 조지아(Georgia)인데, 조지아가 바로 가톨릭 성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는 로마 황제로부터 순교를 당한 '성 조지아'로 지금도 이곳에서는 "조지아!"라고 부르면 열에 일곱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돌아본다고 할 만큼 이름이 흔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카즈베기를 떠나는데 왠지 자꾸 누군가 부르는 듯한 착각을 한다. 이 타국에서 나의 이름을 부를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저 산정 교회로부터의 살가운 울림이 아닌가 싶었다.
마음을 다잡고 약 10여㎞쯤 오다가 우측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작년에도 반쯤 못 가서 길이 험해 돌아섰는데 다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꼬부랑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설마 이곳에도 사람이 살까, 싶은데도 집들이 마치 동화처럼 두어 채씩 나타나곤 한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푸른 초원이 몽골의 평원처럼 펼쳐진다. 그곳에서 양치는 어르신을 만났다. 하얀 양들이 무리 지어 풀을 뜯고 있다. 혼자 저만치 바윗돌에 앉아 있다. "감마르조바" 인사를 했다. 그도 환하게 "감마르조바"라며 "감"에 큰 엑센트를 주며 손을 흔들었다. 수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같기도 해서 금방 다가가 손을 잡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남한이냐, 북한이냐며 묻는다. 남한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어르신의 자녀들도 다 시내로 나가고 홀로 양치기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손끝으로 가리키는 언덕 위에 작은 마을이 보였다. 담장은 무너지고, 유리창은 깨어지고 우리네 시골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마당 한쪽에 지천으로 피어 있다. 이곳이 바로 트루소밸리(Truso Valley) 초입이다. 얼굴은 봄볕에 그을려 검었지만 참 순박해 보였다. 그의 집에 가고 싶었지만 이쯤에서 손을 흔들었다.
두어 시간 후 다다른 국경…주인 없이 버려진 성터
계곡을 따라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을 계속해서 달렸다. 걷는 이도 있고 말을 타고 가는 이도 있다. 강 건너 성채 같은 웅장한 집도 반쯤 허물어져 있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집은 금방 저렇게 늑골이 주저앉기 마련이다.
초원을 달리면 길이 따로 없다. 어떤 이는 이쪽으로, 또 어떤 이는 저쪽으로 간다. 뽀얀 먼지를 연기처럼 내뿜으면서 달리다 보면 목교를 만나 아슬아슬하게 건너기도 하고, 또 물이 넘쳐흐르는 무너진 다리를 위태롭게 지나기도 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 후 마침내 더는 갈 수 없는 국경에 이른다. 이 국경은 조지아와 남오세티야와의 분쟁지역이기도 하다. 외교부에서는 적색경보를 발령한 곳으로 접근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더는 갈 수 없다는 국경수비대의 말에 자카고리(Gakagori Fortress) 요새에 올랐다. 주인 없이 버려져 있는 게 너무 안타까워 오랫동안 성터에 앉아 푸른 하늘만 바라보았다. 우리 삶은 유한한 것이지만, 이 성채의 풀꽃들은 무한한 듯 피었다. 서성이며 돌에 향기를 맡는다. 얼마나 많은 이가 이곳에서 거주했을까. 칸마다 수백 년을 버티고 있었던 돌조각들이 아직도 하늘 한쪽을 거뜬히 받들고 있다. 여기서 더 무너지면 나라가 휘청일 것임을 아는 것일까. 유유히 흐르는 강 건너 국경이 아프게 눈에 밟힌다. 저 강을 건너면 남오세티야. 지금은 바로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어 조지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같은 민족이면서 또 다른 이질성은 곳곳에 존재
성 뒷벽에 앉아 오랫동안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UN에서는 남오세티야를 조지아 영토로 인정하지만, 러시아, 베네수엘라, 시리아 등은 독립국으로 보고 있으니 참으로 오묘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란계 민족인 오세트인들은 소련 시절 스탈린의 민족분열정책에 의해서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 현재, 러시아 쪽에는 북오세티야, 조지아 쪽은 남오세티야로 분단이 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네 남북 관계와 이리도 같을까 싶어 마음이 더 복잡했는지 몰랐다. 한 나라로 통일이 되는 것 또한 국제관계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으니, 서로 같은 민족이면서도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없는 처지다. 남오세티야인은 조지아를 향해 분리독립 선언을 하면서 현재 미승인국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저 강과 산만 넘으면, 쉽게 서로 평화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인데 보이지 않는 분단의 철벽이 아프다.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있을지라도, 같은 민족이면서 또 다른 이질성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국민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국가 간의 질서라는 명목과 야욕이 빚어낸 참사임을!
성채를 내려와 아바노 마을의 수도원(Abano Monastery) 앞에 섰다. 마을이라고 해야 할 만한 동네는 보이지 않고 그저 집 두어 채가 전부다. 카페로 들어서니 손님도 없고, 수도원에 온 학생들이 평화롭게 앉아 놀고 있다. 이 깊은 골짜기의 수도원에서 학생들은 무슨 수련을 하고 있을까 싶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공터에 앉으니, 십자가 위로 흰 구름이 너무나도 평화롭게 보인다. 굽이굽이 구절양장으로 흐르는 물줄기와 야트막한 산의 초록 융단, 이 일탈 속에 선 내가 누군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강가에 서서 돌멩이 하나를 쥐고 힘껏 물수제비를 떴다. 통, 통, 통, 저만치 튀어가다 데구르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여행길 반갑게 맞아주는 현지인들의 정에 또 감사
조지아는 정말 강이 많다. 산이 높아 겨우내 내린 눈이 녹아내려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이리라. 한 시간쯤 달렸을까. 이곳은 므트크라비강과 아르그비강이 만나는 곳이다. 두 강의 물은 암석질과 수온이 서로 달라 이곳에서는 신기하게도 강물이 섞이지 않는다. 하여, 흑강과 백강(Black and White Aragvi)이라고 하기도 한다. 강을 따라 계속 달리다가 우측으로 키가 큰 미루나무 숲을 만났다. 어린 시절 신작로에 뻗어 있던 그 모습의 생각으로 방향을 틀어 마을로 들어섰다. 이제 막 태어난 병아리처럼 이름 모를 노란 꽃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언덕 건너 나무 울타리 안에는 아기돼지들이 옹기종기 놀고 있다.
작은 샛강을 건너자, 할머니 한 분이 저만치 서 있기에 반갑게 인사를 하니 흔쾌히 집으로 들어오란다. 2층으로 지어진 큰 벽돌집에 아들 내외와 같이 사는 듯했다. 마침 어린 손주 셋과 마당에서 해바라기하는 모양이었다. 젊은 며느리는 막 구워낸 우리나라의 호떡과 비슷한 빵과 커피, 토마토 등을 금방 차려 내었다. 할머니와 나란히 포도 넝쿨로 지붕을 두른 마당에 앉았다. 마침 갖고 간 즉석카메라로 손주와 사진을 찍어드리니 정말 환하게 웃었다.
대화와 글씨도 서로 주고받기가 어려웠지만, 손만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진실로 전하는 마음의 깊은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 하늘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는 건 버릇인지, 아니면 본인만의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 마침 일을 마친 아들이 건너 텃밭의 오이를 깎아 내놓았다. 어디를 가나 환대와 융숭한 대접은 이 나라만이 가진 인정과 따스한 마음이었음을 알기에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과자 몇 봉지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성의를 표하기엔 턱없이 부족함을 알지만, 여행객이라 어쩔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