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타이거 숲속에서 만난 차탕족과 순록

이상원의 이야기를 담은 풍경 (28)

2024-06-23     이상원
영하 50도에도 얼지 않는 몽골 자르갈란트강의 설경. ⓒ이상원

홉스골호수에서 출발한 이번 몽골 출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목적지, 자르갈란트(Jargalant) 강을 찾아 떠났다. 울창한 침엽수림을 지나 크고 작은 눈 더미를 넘고, 개울과 호수가 얼어붙어 겨울에만 생기는 길을 따라 차는 계속 달렸다. 튼튼한 사륜구동의 랜드크루즈를 운행하는 ‘바트 무흐’라 불리는 베테랑 기사는 그 험한 눈길을 미끄러지거나 큰 흔들림없이 능숙하게 운행했다.  

   160km 거리를 3시간을 달리자 설원에 마을이 나타났고, 휴대폰에 통신이 잡히기 시작했다. 몽골의 행정구역은 우리의 도(道)에 해당하는 21개의 아이막(Aimag)이 있고, 그 아래에 군(郡)에 해당하는 348개의 솜(Sum)이 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홉스골 아이막 아래 렌칭룸베(Renchinlkhumbe) 솜이었다. 이 마을은 몽골 최북부에 위치하며,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32도로 몽골에서 가장 추운 지역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염없이 설원만 달리다가 마을을 만나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영하 50도에도 얼지 않는 자르갈란트(Jargalant) 강

휘돌아감아 흐르는 몽골 자르갈란트강의 아침. ⓒ이상원

   마을 옆에 있는 호수가 얼어 생긴 길을 따라 자르갈란트(Jargalant) 강으로 갔다. 그 강은 영하 50도에도 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방문 당시 그곳의 기온은 영하 15도였는데 그 강은 얼지 않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 강물이 얼지 않는 이유는 멀지 않은 수원지에서 물이 솟아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몽골 현지인들은 한겨울에 그 강에서 목욕을 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그 강물에 몸을 담그기도 한다고 한다. EBS TV의 <세계테마기행>에서도 출연자들이 이 강에서 영하 40도의 날씨에 옷을 벗고 뛰어들었던 장면이 방영되었다. 우리 일행은 입수는 고사하고 손 한번 담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한 컷이라도 더 카메라에 담으려고 그 강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강은 그렇게 길지도 않았고, 건너편의 큰 나무와 주위의 설경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평범한 계곡이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그곳을 떠났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민박 같은 곳이었는데, 거실 겸 주방에 커다란 장작 난로가 있고, 거기서  직접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해야 했다. 가이드가 준비해온 재료로 몽골식 볶음국수를 해서 저녁을 먹었다. 타올과 화장지는 제공되지 않았고, 물이 얼어 생수로 양치질을 하고 물 티슈로 얼굴을 닦는 게 고작이었다. 방안은 전기 난방이 되어 있어 옷을 입은 채로 있으니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영하 50도에도 얼지 않는 몽골 자르갈란트강의 아침 풍경. ⓒ이상원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거실에 놓아둔 생수는 꽁꽁 얼어 있었다. 밖엔 눈발이 날리는데 하늘엔 별이 보였다. 변소는 난방 시설은 물론 없고, 문짝이 떨어져 있어 더 춥고 불편했다. 어둠 속에서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던 재래식 변기는 이번에도 난제였다. 

    달걀과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해 뜨기 전에 모든 짐을 챙겨 다시 자르갈란트강으로 갔다. 물 위엔 안개가 옅게 끼었고, 나뭇가지엔 상고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해가 나오면서 하늘은 화창하게 개었다. 계곡 밖으로 나오니 어제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강이 둥글게 휘돌아 감기며 흐르고 있었고, 주위의 설경은 햇살을 받아 빛났다. 이러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 

 

차탕족(Tsaatan People)의 순록 마을

이동 중인 순록의 무리. ⓒ이상원

   우리는 다시 더 북쪽의 타이거 숲 속에서 순록과 함께 생활하는 차탕족을 만나러 떠났다. 다시 끝없는 설원을 달렸다. 겨울엔 기존의 길이 눈 속에 묻혀 그저 지나간 차량이 남긴 바퀴 자국을 따라 달리는 것이었다.

   겨울철에 얼음이 얼어 차강 호수(Tsagan nuur)에 만들어진 지름길을 따라 차강호수 마을에 도착했다. 차탕족 마을은 러시아 국경지역에 있어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사전에 국경경비대에 여권 사본을 제출해야 하고, 이곳 검문소에서 출입허가를 받았다.

   현지 식당에서 몽골의 국민음식이라 할 만한 호쇼르(몽골식 군만두)와 보츠(몽골식 찐만두), 야채 샐러드로 점심을 먹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갓 빚은 만두여서 맛이 있었다. 몽골 여행 중에 현지 음식을 모를 때는 호쇼르를 주문하면 될 것 같았다. 우유와 녹차, 소금을 끓여 만든 수태차도 마셨다. 

   우리를 태운 차는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을 지나 타이거 숲 속으로 차는 달렸다. 타이거 숲은 북반구의 냉대 기후 지역에 나타나는 침엽수림이다. 러시아 국경이 가까워지면서 울창한 나무들이 점점 많아졌다. 65km의 거리를 3시간이나 걸려 드디어 차탕족 마을에 도착했다.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 마을은 몇 가구가 모여 순록을 키우고 있었다. 

순록과 함께 걸어오는 차탕족 노인. ⓒ이상원
차탕족 전통주택 '오르츠'와 땔감, 빨래. ⓒ이상원

   ‘차탕’은 몽골어로 ‘순록을 기르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들은 이름 그대로 순록과 함께 살아가고있었다. 원목으로 만든 나무집과 차탕족의 전통가옥인 오르츠(Orts)가 눈에 들어왔다.

   오르츠 뒤에는 빨래를 해서 널어 놓았고, 노인과 젊은 여성, 아이들도 보였다. 순록은 주변에 많이 있었고, 그 모습은 다양했다. 땅을 파고 끊임없이 먹이를 찾는 녀석, 숲 속을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녀석, 눈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녀석, 옆의 친구와 뿔싸움을 하는 녀석…등등. 그 중에서 덩치가 큰 수놈 순록의 뿔은 정교한 조각 작품처럼 아름답고 웅장했다. 새끼 순록은 무척 귀여웠다. 

순록을 능숙하게 타고 달리는 차탕족 아이들. ⓒ이상원
자전거를 타는 차탕족 아이와 순록, 강아지. ⓒ이상원

   우리 일행이 갔을 때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막 돌아와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기 위해 순록 타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을 부탁했고, 그들은 기꺼이 순록을 타고 달려 주었다. 모두가 능숙했다.

   유목민 아이들이 걸음마를 할때부터 말 타는 법을 배우듯이 차탕족 아이들 순록 타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순록과 하나가 되어 달려오던 그 아이들의 밝은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현재 남아 있는 차탕족은 약 200명 정도인데 세계에서 가장 인구수가 적은 소수민족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흡스골호수 근처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차탕족을 제외하고, 산 속에서 순록을 키우며 타이거 숲에서 살아가는 차탕족은 점차 줄고 있다.

   족내혼(族內婚) 전통으로 인한 유전병도 한 원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으나 요즘에는 학교에서 현대식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 아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부모의 삶을 이어받아 험준하고 열악한 숲 속에서 살아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차탕족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지켜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순록에게 소금을 주는 모습! 소금으로 사슴과의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순록을 가축화했다. ⓒ이상원

   초식동물인 순록의 겨울철 먹이는 ‘숄랑((Shulan)’이라는 이끼이다. 순록은 예민한 코로 냄새를 맡고, 앞발로 눈을 파헤쳐 먹이를 찾는다. 이 이끼를 순록이 뜯어먹고 지나가면 그곳은 초토화 되기 때문에 그 이끼의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수시로 이동을 해야 한다.

   순록을 가족처럼 여기는 차탕족은 각각 이름을 붙여준다고 한다. 그들이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순록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흡혈 곤충(모기나 파리 등)이 순록의 코 주위에 알을 낳으면 호흡기에 기생충이 생겨 죽을 수도 있어서 이러한 곤충이 적은 추운 지역에서 살아간다.

   차탕족은 소금으로 순록을 길들인다. 야생의 먹이에서는 염분이 부족해서 순록이 차탕족이 주는 소금을 얻어 먹기 위해 그 주변에 머무르게 된다. 그로 인해 순록은 사슴과 동물 중 유일하게 가축화된 종이 되었다. 순록은 유명한 ‘루돌프 사슴’이자,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에 나오는 스벤의 모델이기도 하다.  

눈 위에서 휴식하고 있는 순록의 무리. ⓒ이상원

   차탕족은 ‘오르츠(Orts)’라는 원뿔 형으로 된 천막 집에서 생활한다. 오르츠는 6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여러 식구가 최소한의 생활도구를 넣고 함께 지낸다. 그들이 끊임없이 순록과 함께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오르츠는 설치와 철거가 쉽도록 만들어졌다. 

   우리 일행의 숙소도 오르츠였다. 나무를 세워 천을 둘러 바람을 막고, 가운데 난로를 놓고, 연통이 하늘로 뻥 뚫려 있는 지붕으로 나와 난로 속의 장작이 탈 때 나오는 불티가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었다.

   바닥은 냉기를 막기 위해 나무를 깔고, 크지 않은 간이침대가 4개 놓여 있고, 그 위에 청결하지 않은 이불이 놓여 있었다. 출입문에는 나무 막대가 걸쳐져 있어 그 막대를 잡고 문을 열도록 되어 있었다. 고대의 주거 형태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였다. 물과 타올 등 어떠한 물품도 제공되지 않았다. 그들은 눈을 녹여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중년의 남자가 어린 아들과 함께 와서 태양열로 충전한 무거운 축전지를 가져와 실내에 전등을 밝혀 주었다. 3월초인데도 바깥의 밤 기온은 영하 20도였다.

   히말라야 산속 롯지에서 쓰던 두꺼운 구스다운 침낭이 그 추운 밤을 견디게 해주었다. 놀라운 것은 이 깊은 산골 오지에 통신이 되는 것이었다. 로밍을 한 덕에 문자와 카카오톡을 마음대로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광활한 몽골 땅에 유선통신망을 모두 갖출 수 없으니 정책적으로 사람이 사는 지역에 광범위하게 무선통신망을 구축해놓은 것 같았다. 

몽골 차탕족 오르츠와 별 궤적. ⓒ이상원

   오르츠 밖으로 나가니 나무 숲 위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래 전 여름, 몽골의 사막지역을 여행할 때 게르 위에 빛나던 별을 보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겨울 밤에 러시아와 가까운 깊은 숲 속에서 이런 별을 보다니…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 별을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마음이 바빠져 온기가 있는 오르츠 안에서 별 궤적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카메라를 조작하고 삼각대에 카메라를 장착해 밖으로 나갔다.

   먼저 북두칠성을 보고 북극성을 찾아 그 방향으로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그래야 북극성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도는 별 궤적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셔터 속도, 조리개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감도(ISO0)로 노출 테스트를 하고 연속 촬영이 되도록 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찬란한 별 무리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으나 추위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다시 오르츠 안으로 들어와 침낭 속에서 잠을 청했다.

   해발 2,300m의 고도에 따른 산소 부족으로 호흡이 약간 가빠지는 걸 느꼈다. 밖에서는 순록이 밤에도 돌아다니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2 시간이 지나 카메라를 확인하기 위해 침낭에서 나와 밖으로 나가니 몸이 으스스 떨렸다. 늦게 뜬 달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별 궤적 사진을 찍을 때에는 달빛이 있는 시간대를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번엔 상당히 밝은 하현달이었음에도 별의 영롱함을 바래게 하지 않으면서 오르츠와 침엽수 숲, 바닥의 눈을 더욱 선명하게 보이게 하는 조명등 역할을 해줘서 더 좋았다. 카메라의 배터리를 갈고 다시 별 궤적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카메라를 조작해서 삼각대에 얹고 오르츠 안으로 들어갔다. 

차탕족의 좁은 오르츠 안에서 영하 20도의 밤을 함께 보낸 룸메이트와 기념촬영. ⓒ이상원

   눈이 떠질 때마다 난로에 장작을 넣었으나 영하 20도의 추위에 허술한 천막의 실내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얼굴을 닦으려고 두었던 물 티슈는 물론 생수 병의 물, 수분이 있는 것은 모두 꽁꽁 얼어 버렸다. 

   차탕족 마을에는 제대로 된 변소가 없었다. 집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사람이 디딜 수 있는 나무로 발판을 만들어 얹고 그 뒤에 거적을 두른 게 전부였다. 굳이 그곳에 가지 않고 숲 속의 적당한 곳에 볼일을 보고 눈 속에 묻어 버리면 자연의 거름으로 거듭 날 것이었다.

   눈 위에 소변을 봤더니 순록 몇 마리가 냄새를 맡고 쏜살같이 달려와 다투다가 힘이 센 놈이 눈까지 삼켜 버렸다. 염분이 부족한 순록에게는 사람의 오줌은 오물이 아니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분이었다.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새벽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다시 차량에 싣고, 그곳의 아침 풍경을 촬영했다. 해가 떠오르자 산 속은 온기가 돌았다. 아침 햇살에 순록도 빛났다. 차탕족이 그들만의 터전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기를 빌며,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서 무릉으로 향해 떠났다.

   몽골의 최북부, 러시아 인근 숲 속의 원시 움막, 오르츠에서 보낸 밤은 다른 오지의 여행지에서 보낸 것과 똑같은 하룻밤은 아니었다. 내겐 5성급 호텔에서 숙박한 것보다 더 소중했다. 한없이 춥고 불편했던 그 천막 숙소는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살면서도 탐욕을 부리는 나를 계속 일깨워줄 것이다.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