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속버스터미널 손님들 끊이지 않던 '물장사 요지'
[주말ON-정은영의 新 다방열전] 36. 한성다방과 중앙로 다방들(1)
시작하면서
각얼음을 띄워주던 다방 냉커피가 생각나는 2024년 여름이다. 해가 갈수록 여름이 더 더워지고 있다고 한다. 봄과 가을은 여름 등쌀에 밀려서 한 달씩 자신의 계절을 단축하고 대신 여름은 3개월에서 5개월로 늘어나게 됐다. 이렇게 가다가는 어느 순간 아예 봄과 가을이 찰나에 지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지난 겨울
2023년 1월, 태화로터리를 중심으로 일대 다방을 돌아봤다. 지난해 겨울 대한민국은 국토 전체가 거대한 냉동창고로 변했다. 강원도지역은 체감 온도가 무려 영하 40도에 도달했다. 울산도 56년 만의 강추위라고 한다. 무지무지 추웠던 날 태화로터리에서 시청 방향, 중앙로 일대 다방을 찾았던 기억이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고 했지만 상상할 수 없는 추위가 몰아치자 오전 10시가 지났는데도 길거리가 한산했다. 맹추위가 사람들의 움직임도 둔하게 만들어버렸다. 태화강 강변 남산 쪽 동굴 폭포에도 겨울 들면서 빙벽이 만들어졌다.
울산은 겨울이라 해도 크게 추운 줄 모르고 지나갔는데 올해는 정초부터 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응달진 곳마다 수도가 얼어 터졌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뉴스에서도 수도계량기가 터졌다는 뉴스들이 화면을 장식했다. 영남알프스도 허옇게 눈을 뒤집어썼다.
이렇게 추운 날은 온몸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따끈한 커피가 필요하다. 따끈한 커피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다방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다방은 거의 없다. 카페에 가도 되지만 이미 거기 커피에는 마음을 데워주는 따뜻한 정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돈 내고 기다리면 커피를 가져가라는 벨이 울리고 벨 소리를 듣고 직접 가서 커피를 가져와야 한다. 다방 레지가 미소와 함께 날라다 주던 커피는 없다. 정이 없는 무뚝뚝한 카페인데도 사람들은 불편해하지 않는다. 참으로 요즘 사람들은 마음씨가 좋다. 자기가 돈 주고 자기가 가서 커피를 가져오는 세상이니 말이다.
옛날식 다방은 추운 날 덜덜 떨면서 찾아가면 레지가 언 몸을 녹이게 보리 오차 즉 엽차를 가져다주었다. 엽차를 마시고 추위에 얼었던 몸이 녹을 즈음에 무슨 차를 마실 것인지 다정하게 물었다. 그리고 자기도 한잔 마실까 물어봤다.
당연히 레지도 한 잔 마시라고 해야지, 안된다고 하면 사내치고 쪼잔한 대접을 받았다. 다음부터는 레지들이 그 양반 근처에는 얼씬하지 않았음은 당연했다. 커피 한잔 아끼려다 다방 외톨이가 된 셈이었다.
추억의 그 시절과 청춘들의 요즘 세태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이야 카페에 가면 종업원들이 젊다. 과거 레지 나이 비슷하다. 젊은 남녀들이 제복을 입고 멋있는 모자를 쓰고 근무하고 있다. 깔끔하게 보이지만 한마디로 정이 넘치는 옛 맛이 없다.
1990년대만 해도 다방 실내 분위기를 보면 홀 가운데 연탄난로가 있었다. 연탄난로 뚜껑 위 양은 주전자에서 보리차가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주전자 뚜껑을 밀어 올리던 풍경은 다방문화의 따뜻함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세상은 비교할 수도 없이 참 많이 변했다. 하기야 AI라는 놈이 식당에서 배달까지 하는 세상인데 말해 무엇하랴.
시청 중앙로 다방들은
태화로터리서 시청 방향 중앙로에는 다방들이 여러 곳 있었다. 신정시장 사거리까지 가지 않아도 태화로터리 옆에 울산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을 때는 영생약국 2층 한성다방을 비롯해 영생약국 가기 전에 가나다방이 있었고 가나다방 뒷골목 제일여관 지하에 제일다방이 있었다. 제일다방은 지금도 다방 간판이 남아서 과거를 추억하게 하고 있다. 영생약국 건너편에도 경남은행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중앙유치원이 있었다. 그 유치원은 울주군 청량읍 망해사 들머리로 옮겨가 운영됐으나 지금은 어찌 됐는지 알 수 없다.
대략 추정해보면 시청 앞으로 가는 중앙로 역시 도로를 따라 새 건물 2층은 다방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만큼 다방은 물장사 중에 같은 규모의 술집보다 수입이 괜찮았다고 한다. 다방들이 늘어나면서 다방 마담들은 레지들에게 가슴이 패인 블라우스와 좀 더 짧은 미니스커트 옷차림을 주문했고 여기에 눈길이 머물렀던 청춘들은 배달 갔다 오는 레지들 꽁무니를 따라 통발 속으로 물고기 들어가듯 다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레지들의 옷차림이 눈길을 끌던 시절 대한민국 울산은 공업단지를 품은 도시로 굴기하던 시절이었다.
태화로터리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에는 숙박업소들이 많았다. 울산에 출장 와서 머무는 사람을 당시는 '울총'이라고 불렀다. 이들 울총들이 머물렀던 공간이 태화로터리 주변 여관들이었다. 업무가 끝난 울총들을 상대하는 술집과 다방 등 유흥업소들이 성업했다. 밤 10시 이후 고속버스에서 내려 여관촌으로 들어서면 일명 게이들이 여자 목소리를 내며 술집을 안내하던 시절 이 글을 쓰는 나도 새파랗게 젊었었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남진의 '님과 함께' 노래가 세상을 들썩이던 시절 울산다방들도 전성기였다.
한성다방을 찾아가던 날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단단히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사라져 버린 다방을 찾아가는 마음이 고드름을 만지듯 시리다. 태화로터리에서 찬 바람이 부는 십리대숲 방향으로 눈을 돌려보니 멀리 가지산과 고헌산 등 영남 알프스 산군에는 산 정상을 중심으로 하얀 눈을 고깔모자처럼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니 춥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 한성다방으로 걸음을 바삐 옮겼다. 따끈한 커피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영생약국 2층 한성다방은 술집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1층 영생약국만 초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년 전만 해도 영업하고 있었는데 그간 세월은 또 한성다방을 문 닫게 변화했다.
1990년대 울산에서 유명했던 약국을 두 군데 꼽으라면 원도심에서는 옥교동 동신약국을, 신정동에서는 영생약국을 꼽았다. 유명했던 영생약국 2층에 있는 다방이라면 찾아오지 못할 사람이 없었기에 한성다방은 고속버스 이용객들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는 다방으로 인기였다. 추억을 더듬어본다.
월평(태화) 로터리는
한성다방을 소개하기에 앞서 다방을 중심으로 태화로터리 주변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1978년 초 필자가 울산에 왔을 때 울산 사람들은 태화로터리를 월평 로터리라고 불렀다. 그래서 처음에는 헷갈렸다. 토박이들은 고속버스 터미널에 갈 때도 월평 고속버스 터미널 가자고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태화로터리로 불리면서 지금까지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하기야 울산에서 태화라는 말보다 더 좋은 지명이 또 있을까 싶다.
태화로터리 주변은 울산 여관집단촌이 생겼다. 지금도 그 시절 여관들이 10여 곳 영업하고 있다.
울산 유흥가 발전 축을 보면 신정동에 시청이 개청하고 신흥상권이 형성되면서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을 중심으로 울산 2세대 유흥업소들이 밀집했다. 1세대는 당연히 구시가지 원도심이다. 그리고 공업탑 주변 익산나이트클럽이 문을 열면서 3세대 유흥업소들은 공업탑 로터리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4세대 유흥업소들은 삼산으로 옮겨가서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태화로터리 일대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울산은 옥교동과 성남동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발전해오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발전 축이 남구로 넘어가면서 월평과 삼산 들 논밭에 도시계획선이 그어졌고 울산시청이 개청하면서 은행을 비롯한 기관들이 시청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바람에 신정동은 송대관의 '쨍하고 해 뜰 날'처럼 울산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태화로터리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도 함께 발전했다. 근방에 있는 영생약국도 유명해졌다.
2천년대 초기만 해도 울산에서 월평 영생약국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들었다. 택시를 타고 방향을 선택할 때도 영생약국 하면 기사들이 알아들었다.
또 태화로터리는 크게 봉월로, 중앙로, 강변로로 나눠진다. 이 도로들을 따라 골목마다 술집 등 유흥접객업소들이 많았고 여관 등 숙박업소들도 즐비했다. 로터리 주변을 따라 강변 쪽으로 지금의 시티파라다이스 자리에 태화호텔이 들어섰고 문을 열자마자 1층 커피숍은 만남의 자리로 인기였다. 그러나 울산고속버스터미널이 1999년 8월 24일 삼산, 지금의 위치로 옮겨가면서 그 터에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그 바람에 과거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었던 주변을 돌본다. “여기쯤에도 다방이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주변 상인들에게 혹시나 싶어서 과거 다방을 물었더니 “이상한 사람 다 봤네"하는 눈치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