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커피로 맛보는 근대문화유산 같은 추억

[주말ON-정은영의 新 다방열전] 37. 중앙다방과 남창 다방들(1)

2024-10-10     정은영
삽화. ⓒ왕생이

딸기밭 미팅 후 찾았던 다방
남창에서는 이유 불문하고 걸어야 편했다. 읍사무소에서 농협을 지나는 길, 옹기종기 시장 들머리 쪽에 중앙다방이 있었다. 건너편 파출소 앞에 돌다방이 보였지만 우리는 중앙다방에 들어갔다. 주인은 60대 초반 정도, 털털거리는 선풍기가 첫눈에 들어왔다. 올드한 맛도 있지만 중앙이란 이름이 주는 뉘앙스에 끌렸다. 

 홀이 썰렁했다. 벽에 매달린 듯 걸려있는 낡은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있던 주인이 반겼다. 우리 말고는 손님이 없었다. 우리는 다방에 왔으니 먼저 다방 커피를 시켰다. 필자만 냉커피였다. 그러나 원재료는 모두 '333 커피' 즉 일명 봉다리 커피였다. 커피가 나오기까지 홀을 둘러봤다. 오래된 물건들이 이곳저곳을 장식했다. 벽지도 언제 발랐는지 모를 정도로 빛바랜 채 과거 냄새를 풍겼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공중전화 부스에는 전화기 대신 광고지가 수북했다. 재떨이는 스마일다방 상호가 찍혀있었고 벽에는 언제 것일지도 모를 빛바랜 소주 회사 달력이 붙어있다. 의자도 난생처음 보는 것만큼 구식이었다. 그러나 주인이 닦고 닦아서 의자는 깨끗했다. 도리어 의자를 덮어씌운 비닐 꽃무늬가 희끄무레했다. 이게 바로 옛 다방의 맛이었다. 

 우리는 다방에 온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조희양 작가는 신기한 듯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주인은 사진 찍는 것이 못마땅했던지 "그걸 찍어 뭐할라꼬" 하며 퉁명스레 한마디를 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우리는 대꾸하지 않고 여러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전국노래자랑이 재방송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송해 선생이 진행했던 과거 전국노래자랑 가운데서 골라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참 무심하고 빠르다. 송해 선생은 지난 2022년 6월 8일 세상과 작별했다. 

 중앙다방에서 봤던 전국노래자랑 재방송에서 참가자가 이수영의 '하얀 면사포'를 불렀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러나 누가 불렀는지 가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중앙다방 메뉴판(21.06 촬영) 정은영 제공

 정리하면 그는 임창제와 함께 포크 듀엣으로 어니언스에서 활동했고 1979년 솔로로 독립하면서 이 노래를 작사했다. 오준영이 작곡했다. 호소력 짙은 아이스크림 창법으로 여성 팬들이 많았다. 낡은 텔레비전에서 이 노래를 듣는 순간 필자는 잠시였지만 냉커피 잔 속 각얼음이 녹는 줄도 모르고 40년 전의 추억에 잠겼다.

 창밖에 낙엽 지고 그대 떠나가면/ 허전한 내 마음을 달랠길 없다오
 웃으며 떠나야 할 당신이기에/ 새하얀 면사포에 얼룩이 질 때 
 남몰래 내 눈에는 눈물 고였다오(중략)

  이 노래는 계절적으로 봄 노래가 아니다. 떠나가는 계절의 썰렁함을 느끼며 낙엽이 우수수 지는 때에 불러야 제맛이 난다. 하지만 꽃피는 봄날에 소개하는 것은 노래에 얽힌 추억이 있어서다. 

 때는 바야흐로 1970년대 후반부터 세상은 정치적으로 극도로 혼란의 시기였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인플레가 극심했다. 자고 나면 물가가 올랐다. 청춘들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불안했다. 직장을 다니는 청춘들도 서로 말이 없었다. 눈치만 보며 살았다. 그 시절 돌파구라도 찾아야 하는 심정으로 휴일이면 친구들과 어울려서 울산 외곽으로 탈출했다. 

 어느 봄날이었다. 재주 좋은 친구가 미팅을 주선했다. 휘파람이라도 불어야 할 만큼 신이 났다. 장소는 남창 딸기밭이었다. 

 이날 딸기밭에 갔다가 남창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홍색 스웨터를 입었던 아가씨가 대뜸 "남창까지 왔는데 커피 한 잔 하고 가입시더."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말이기도 했는데 아무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우리는 대꾸 없이 인근 다방으로 몰려갔다. 이 아가씨 덕분에 커피까지 한잔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바람에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남은 두어 시간, 시시콜콜 어쭙잖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피를 홀짝거렸다. 

 그날의 기억이 오늘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것은 뭘까.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 추억의 다방이 아마 지금의 중앙다방이거나 아니면 근처 돌다방이 아닐까 싶다.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커피 한 잔 마시자던 그 아가씨도 보나 마나 호호백발 할머니가 됐을 것이다. 혹시 이 근방 어느 멋진 아파트에 살고 있을지, 그리고 장날이면 어린 손자를 데리고 옹기종기 시장에 구경 오는지도 모른다. 

 

요즘도 장날이면 북적이는 돌다방

이 다방은 남창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언제 개업했는지는 알쏭달쏭하다. 외고산 옹기마을 옹기 제작 무형문화재인 배영화 선생(시인)은 "내 기억으로 돌다방이 남창에서 3번 이사를 해서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그는 돌다방 이야기를 끄집어내자마자 "남창에서 돌다방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주인이 야무져서 지금의 파출소 건너편에, 당시는 지서라고 불렀지, 그곳에다 터를 잡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고산 옹기골을 떠나 산 것이 군에 간 시절을 빼고는 없었다며 그러니 남창에서 일을 본답시고 다방에서 커피 마시고 했던 때가 어제 일 같다고 했다. 그는 남창 일대 다방 이야기가 나오면 과거 기억들이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토박이들의 이야기를 뭉뚱그려보면 돌다방은 남창에서 다방 경영해서 돈을 번 축에 들어간다. 자본이라는 것이 기초가 돼서 받쳐주고 있으니 현재도 돌다방은 건재하다. 요즘도 장날이면 옛 손님들이 찾아온다. 외지인은 다방이라고 하니 장에 온 김에 추억을 찾아서 오고 지역민들은 그냥 출근하듯 "잘 있나" 한번 들리는 다방이 됐다. 

 이 다방은 남창역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다. 지금이야 장날 말고는 썰렁하지만, 옛날에는 이 골목이 역으로 가는 사람들로 기차 올 시간이 되면 먼지가 폴폴 났다고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다방 맞은편 파출소는 남창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거치는 검문소 같은 역할을 했다.  

정다방 전경. (21년 촬영) 정은영 제공

 

시외버스 매표소 덕에 잘나가던 정다방

정카페라고 큰 간판을 붙여놓고 다방 입구 입 간판에는 여전히 정다방이라고 써놓았다. 그러니 정다방이라 하는 것이 진짜배기 이름이다. 이 다방은 남창을 드나드는 시외버스 매표소가 있는 남창2교 옆에 있다. 읍사무소와는 약간 멀어도 시외버스가 매표소 덕분으로 한때는 잘나갔던 다방임이 분명하다. 

 사각형 도심 지형을 따라 읍사무소에서 부터 차량이 오른쪽으로 돌아야 하는 일방통행으로 영업에 지장이 크다. 정다방뿐만이 아니라 이 골목에 있는 상가들도 같은 입장이다. 울산과 해운대를 오고 가는 직행버스가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릴 때가 이 골목의 전성기였다. 

 기차가 가끔 있는 대신 시외 직행버스는 20분 단위로 있었으니 나오면 탈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이용객이 크게 늘었다. 

 현재는 장날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다. 자가용이 늘면서 장날이면 주차장은 빈 곳이 없는 대신 매표소는 도리어 한가했다. 

 또 최근 동해남부선 전철 개통으로 시외버스 이용객은 엄청나게 줄었다. 덩달아 다방도 손님이 더 줄었다. 과거에는 버스를 기다리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커피 한잔하는 게 기본이었다. 다방에 안 들어가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끌고 들어가는 정 있는 사람에게 못 이기는 척 끌리다시피 들어갔던 그 시절이 다방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곳곳에 커피를 한 잔만 살 수 있는 포장 구매 일명 '테이크 아웃'이라는 커피점들이 우후죽순 거리를 장식하면서 기존 다방들은 순식간에 문을 닫게 됐다. 그나마 남창 다방들이 아직도 읍내에 3곳이나 남아있다는 것은 옛 문화를 찾아다니는 필자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남창옹기종기시장 전경. (23.02 촬영) 정은영 제공

 

그 시절 아이콘으로 재조명

최근 3~4년 동안 남창 장날과 울산권역 오일장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물론 백수라는 만년직업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오일장에 가도 다방에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십수 년 전부터는 다방만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 본다. 마담하고 커피 한 잔 마시는 낭만이 있다. 그리고 한 시절 흘러간 우리들의 흔적이 다방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근 울산시립박물관에서 기획전을 열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이란 타이틀이다. 준비된 전시장 중간에 '정은영의 추억다방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 다방 이야기를 전시한다고 했을 때 의아해했다. 설마 박물관에서 다방 이야기를 ….  하지만 사실이었다. 

 레지와 마담, 약간 불량한 시선으로 봤던 시절의 이야기를 박물관에서 근대문화유산으로 취급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 전국에서 다방을 쓴 작가가 거의 없다. 다방은 한 시절 문화의 중심이었고 삶의 중요한 공간인 것이 분명해도 삐딱한 시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도 분명했다. 

 각설하고 남창 일대 다방을 돌아본 것이 어찌 보면 사라져가는 근대 문화유산을 돌아본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가슴 뿌듯함도 느낀다. 다방들을 돌아보고 이렇게 글을 쓸 기회를 가진 것이 필자에게 주어진 소중한 일이다. 한 시대 삶의 중심에서 이제는 퇴물로 사라져가는 다방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다. 정은 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