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입은 여우들에 안절부절 못했던 남정네들

[주말ON-정은영의 新 다방열전] 38.여우다방과 언양 다방들(2) 언양시외버스터미널 주축으로 성행 울산역 개통 이후 자취 감춘 다방들 언양 다방 순례 의미있는 시간 여행 진짜배기 울산 사람으로 에너지 충전

2024-10-31     정은영
삽화. ⓒ왕생이

시장 상인들의 창고로 전락한 여우다방

먼저 이 다방을 들먹이는 이유는 10년 전 왔던 기억이 나서다. 다방은 2층으로 시장건물이다. 들어가면 실내는 탁자가 4개, 한 개는 소파 형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알프스시장 터미널 쪽 첫 골목으로 들어가면 언양 경희한의원과 마주 봤다. 당연히 계단을 같이 이용했다. 

 2023년 3월, 모처럼 여우다방 문 앞에 섰다. 그러나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불빛이 없다. 이미 여우들이 굴을 떠난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아쉽게도 여우들은 굴을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장통 사람들이 팔다 남은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커피포트 등 다양한 식기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것으로 봐서 대략 4~5년 전에 문을 닫은 것 같았다. 허전했다. 언양에서도 다방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음은 슬픈 일이다. 

언젠가는 다방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딱 10년 전 여우다방을 찾았을 때 쓴 글이다. 그때는 백수로 일없이 지내던 시절이라서 시간은 무진장 많았다. 심심하면 곳곳의 장날을 구경삼아 찾았다. 그중 한곳이 언양 알프스시장이다. 

 언양 알프스시장은 장날이 2일과 7일이다. 오후 4시쯤에도 장꾼들이 많았다. 원래 시골 장은 점심때를 지나면 서서히 파장 분위기로 간다. 그런데도 언양 장은 다르다. 해가 져야 파장이 되나 보다.

 10년 전에 이 다방을 만났던 것은 우연이다. 시장에서 호떡을 사 들고 시장 골목을 왔다 갔다 하다가 보니 분홍빛 간판인데 여우다방이 있었다. "여우에 홀린 것은 아니겠지" 눈을 닦고 다시 보았다. 분명 여우다방이다. 들고 있던 호떡을 단숨에 입안으로 구겨 넣고 카메라를 챙겼다. 

 여우다방은 장날인데도 붐비지 않았다. 최소한 '여우'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여우에 홀린 남정네들이 몇 명은 있어야 한다. 또 언양에서 다방이라고 하면 '레지'가 두 명이나 세 명쯤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남정네를 홀릴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착각이었다. 여우가 없고 주인 혼자 장사를 하고 있었다. 마담도 한잔 사줄까 하다가 백수 주제에 싶어서 그냥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왔다.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1980년대 언양지역 다방은 시절이 좋았다. '뒷모습이 희야를 닮아서 실수를 했네'라는 대중 가사처럼 레지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간신히 오토바이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 앞 택시 승강장을 지나칠 때 택시기사나 손님들 모두 아가씨들의 미니, 그 차림에 안절부절못했다.

 지금 언양은 KTX 울산역 개통 이후 큰 발전을 하고 있다. 울산 컨벤션센터도 수년 전 문을 열었다. 도시가 발전할수록 다방은 문을 닫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언양에도 언젠가는 다방이 한 개도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꽃다방 입구. (2023년) 정은영 제공

호시절은 가고 건재하게 살아남은 꽃다방

이름이 참 화려하다. 맞은편 구 언양시외버스터미널이 떠났는데도 여전히 문을 열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여우다방과 지척이었지만 여우다방이 문을 닫고 결국 꽃다방만 살아남았다.

 하루 수백 대 시외버스가 들어오고 나가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이 잘 돌아갈 때가 호시절이었다. 다방문화가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꽃다방이 건재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LED 꼬마전구를 2층 창가에 주렁주렁 매달아서 한낮에도 번쩍번쩍했다. 그래서 멀리서도 이 다방이 영업하는지, 안 하는지 구별이 됐다. 

 커피 전문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다방 나름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비슷하게 했다가는 십중팔구 필패하기가 쉽다. 노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름 영업전략이 필요하다. 꽃다방도 촌스럽지만 불을 휘황찬란하게 밝히고 있다. 그냥 불빛에 이끌려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언양기와집불고기식당 내 커피 서비스 공간

이 다방은 건너편에 울주새마을금고가 있는 등 제법 번화가에 있어서 위치적으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언제였는지 모르는 어느 날 문을 닫았다. "해와 달이라" 이름이 동화적이다. 

 혹시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몰라서 닫힌 셔터를 두드려보다가 포기했다. 맞은편에 울주새마을금고 등 금융기관이 있다. 손님이 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은 더 버티기가 힘들었던지 문을 닫았다. 훗날 해와 달다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름이 동화적이라서 더 오래 잊지 않을 것 같다. 

 천지다방은 해와 달다방에서 상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로 150m 정도 거리에 있다. 언양초등 가기 전 언양기와집불고기 앞 건물 2층이다. 다방건물 뒤쪽 언양기와집불고기집은 대형음식점이라서 건물 내에 다방이란 이름표를 붙이고 자체적으로 커피를 서비스하는 공간이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만나는 사람들은 뜸하게 천지다방을 찾는다. 

 기와집 불고기 길은 읍성 남문길이기도 하다. 언양읍성 가운데 복원이 잘된 곳 중 한 곳이다. 읍성 전체가 남문처럼 복원이 될 때 읍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양 사람들에 따르면 읍성의 무너진 성벽 돌들이 과거 언양초등학교를 지을 때 운동장 매립지에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찾아내서 읍성으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천지다방 주변을 돌면서 기회가 되면 친구들과 언양 와서 밥이라도 먹고 천지다방에 가서 커피 3, 프리머 3, 설탕 3 다방 커피를 마셔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태양다방. (2023년) 정은영 제공

기자시절 찾았던 다방과 이름이 같은 태양다방

태양다방은 익숙한 이름이다. 울산 남구 강남교육청 옆 건물 지하에서 약 30년 영업했던 다방이 태양다방이다. 그때 필자는 울산시교육청 출입 기자였다. 그 다방에서 영화음악 '썬 오버 자메이카'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같은 이름의 다방이 언양읍에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했다. 1층은 열린약국이고 2층에 다방이 있다. 인근에는 경남은행 언양지점이 있고 골목길에는 언양 사우나가 있다. 도로 건너편에는 거의 마주 보는 위치에 행운다방이 있다. 

 다방이 몰려 있다는 것은 도심이라는 뜻도 된다. 행운다방은 인근에 있는 교회 길목이다.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는지 행운다방 앞 도로에는 과일을 파는 노점이 있다. 이 길이 읍성 2길이다. 여기서 읍내 중심가를 향해 바로 진입하면 문화의 길 건너 남천 들머리에 동아서점도 있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그 지역의 사라진 이야기를 따라가다

언양지역 다방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돌았다.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다방을 찾는다는 목적으로 어느 지역을 돌아본다는 것은 훗날 그 지역의 사라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라진 문화유산 중심에 다방이 있다. 

 필자의 고향은 경남 의령이다. 의령 사람이 울산에서 올해로 46년을 살았다. 울산 토박이들은 필자를 객지 사람이라고 할 때가 있다. 서운하지만 애써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배기 울산을 사랑하는 문화예술계 어른들은 다방을 챙기는 필자를 두고 진짜배기 울산 사람이 됐다고 한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울산지역 다방을 찾아 걷고 또 걷는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